“네. 검진팀입니다.”
“검진 예약 좀 해주세요.”
“네. 고객님! 주민번호 말씀해주세요.”
“그런데 다른 선생님 안계시나요?”
“네?”
“내가 간호사였거든요. 목소리가 나를 태웠던 수간호사랑 똑같네. 다른 사람 없어?”
이런 장르는 예삿일도 아니다.
“담당자 나오라고해!”
“고객님 진정하시고요. 무슨 일이신가요?”
“내가 검진 결과 받으러 몇 번을 온 줄 알아? 내 마누라까지 오게 하고. 일을 뭐 이따위로 하는 거야?”
이런 하찮은 대우는 매일 있는 일이었다.
“나 국회의원인데 예약 좀 바꿔주겠나?”
“아! 잠시만요.”
갑질도 허다했고,
“야! 우리 엄마가 검진 받고 나오다가 쓰러졌다고! 너네 어쩔거야? 내가 다 소송 할 거야”
“고객님! 공복 상태가 지속되다가 당이 떨어져 그럴 수 있습니다.”
“뭐야? 너네가 어디 잘못 건드린 거 아니야?”
협박도 가지가지였고,
“거기 탈의실에 있을텐데... 내 목걸이! 검진 때 갈아입었던 옷들 다 뒤져보면 안돼요?”
“고객님! 확인은 해보겠습니다만, 이 시간엔 검진 때 갈아입었던 옷들은 세탁 전문업체에서 수거한 후라 확인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요. 엉엉엉”
탄식과 한숨도 하루에 수도 없었다.
어떤 날은
“저기 선생님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어요.”
“네? 무슨 부탁.....”
“나 검진 왔다는 거 내 아내한테 절대 말하지 마세요.”
“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유선 상으로 검진 예약을 해 놓고 더더욱 본 적 없는 제 아내한테 검진 예약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어처구니 없는 부탁을 받은 며칠 뒤,
“문선생님! 검진실 난리났어.”
“왜? 무슨 난리.”
“그 사람 있잖아. 아내한테 말하지 말라고 한 아저씨 생각나?”
“응. 무슨 일 있어?”
“불륜이었잖아. 마누라가 탈의실에 매복해 있다가 현장을 잡았잖아.”
“진짜? 뭐야?”
“아이고! 별의 별 일이다.”
사랑과 전쟁도 찍어 보았고,
“어르신 대장내시경 용종 떼신 게 징후가 안좋습니다. 소화기내과에 예약해 드릴테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긴급으로 예약해야 하신다고...”
“아, 그렇구나.”
“어르신 예약해 드리겠습니다.”
“아니네. 그럴 필요 없네. 괜찮아.”
여든 넘으신 어르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무슨 슬픈 드라마의 한 장면인지 내 눈에서도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었다.
네번째 직업은 온갖 일이 다 있던 대학병원 검진팀의 계약직 직원. 또 없던 보직이 새로 생겨 난, 그러니까 없던 길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고생 고생 개고생 총알받이 였다고 보면 된다. 교육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이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대학병원 검진팀 예약 및 상담과 기록관리까지. 처음 6개월은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빵빵 터져주시면서 백신이 안전하니 마니 의구심이 들어 주저할 때, 직원들은 예외없이 모두 접종 의무대상자였다. 그러면 무엇하리.
코로나 초기에 코로나가 검진팀 직원을 휩쓸었다. 거의 3교대씩 하면서 직원들의 공백을 메꾸었고, 거의 마지막에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온 나는 실신 직전이었다. 온 몸을 멍석말이 당한 느낌이었던 그 때. 나로 인해 아이들도 전부 코로나가 걸렸었다.
로맨스만 없었지, 액션, 공포, 불륜, 직장내 괴롭힘, 새드 엔딩 등 장르도 상당히 다양했다. 매일 100명씩. 8시에 문을 염과 동시에 밀려드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병원 검진실은 북새통이었다. 오죽하면 검진팀이 병원 직원들에게 유배지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 유배지에서 난 또 살아 남았다. 정직원 제안은 없었지만, 팀장과 파트장이 사직서를 고사하고 매달렸었다. 나와 같이 일했던, 정직원 남자직원은 영상팀에서 2년동안 계약직으로 있었다고 했다. 2년동안 월차를 단, 한번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월차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라고 했는데 그 말이 수긍이 가는 게 영상팀을 지날 때 대기번호를 보면 보통이 800을 넘었고 어떤 날은 900도 넘었다. 그 직원한테 정말 800명이 오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사실이란다. 그래서 월차를 낼 수 없다고. 그 덕에 정직원 티오가 났을 때, 추천을 받아 들어 온 격이라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병원에서 살아 남는 놈들은 독한 놈들인데 난 독하지 못해 매일 휘청거리는 멘탈을 겨우 붙잡았다.
"선생님! 저 사직서 냈어요."
"진짜? 육아휴직 끝나고 온 지 얼마 안됐잖아."
"아이들 옆에 있고 싶어요."
"나는 응원해!"
"다들 후회할 거라고 하는데 전 정말 괜찮아요. 이 일이 저랑 안 맞았어요."
"그랬구나."
육아휴직에서 돌아 온 정직원 이선생은 정말 사직서를 냈다. 정직원이라 견딜만하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이 비쩍 말라서 처음에는 저 선생님 어떻게 일을 하나 싶었다. 그 빈자리 나한테 제안 좀 해주면 검은 머리 이미 파뿌리지만 파뿌리 할아버지 될 때까지라도 열의를 다 해볼 의향이 충만한데...아무튼 정직원도 마다했던 그 일에서 난 살아 남았다. 그런데 계약 기간은 정말 빨리 끝이 보였다.
중년 아줌마에게는 희망보다는 냉정한 현실이 늘 더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