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by MAMA

얼마 전,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회사의 오너이신 큰 대표님이 참석하셨고, 회의 안건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경기가 상당히 좋지 않다 내년에도 좋아 질 계기가 없지만 다들 분발해서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내보자였고, 둘째는 직원들의 근태 관리가 불량하니 지각 세 번은 1회 결근 처리 하겠다는 것이었다. 출근 시간에 지각이 예상되는 급작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미리 고지를 해주고 연차는 적어도 일주일 전, 긴급한 일 발생 시에도 전날에는 연락을 하라는 말씀이셨다.


어쩌면 정말 당연한 예의이고 질서인데 연차가 쌓여 서로 친근한 관계로 접어 들면 질서나 규칙에 융통성이 밥 먹듯 생겨 어느 날은 깍듯했던 선들의 자국이 지워져 너도 나도 불편을 감수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상이 되버린다. 대표님은 아무리 가족 같아도 가족이 아니며 아무리 친구 같아도 직장동료라는 그리고 여기는 위계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 회사라는 조직임을 상기시켜 주셨다.


나 같이 감정도 공감도 잘 못하는 객관과 팩폭을 일삼는 T들은 대표님이 주시는 긴장감에 박수를 쳤다. 나야 3층 자재실에 혼자 일하다 보니 협업하거나 내 일을 누군가 대신 맡아서 해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각을 해도 연차를 써도 밀린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러나 이 얘기는 아마도 박차장의 입에서 불만을 통해 나온 듯 했다. 며칠 전, 입사동기 박대리를 두고 고양이 엄마 박차장과 김과장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출근 한 지, 30여분이 지났을 때였으니 아마도 아홉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박대리님 어디 가셨나요?"


발주 건에 대해 물어 보려고 2층에 내려갔는데 박대리가 자리에 없어 박차장에게 물어 보았다.


"아니, 아직 출근 안했어."

"네? 무슨 일 있어요?"

"그러게. 아니, 이쯤 되면 전화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니?"

"그러게요. 시간이 몇 신데...."


박대리는 꽤나 자주 이렇게 지각을 하고 사정 이야기도 없이 쭈볏쭈볏 들어와 자리에 앉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업무를 보곤 했다. 적게는 일 이십분이지만 많게는 한 시간을 지각해도 박대리의 행동은 똑같았다. 적어도 죄송하다는 인사 정도는 했으면 했는데 그 조차도 없었으니 14년차 박차장도 4년차 김과장도 같은 구매부에 있는 입사 1년차 박대리의 그런 처리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입사동기로 충고 해 줄까도 생각해봤는데 괜히 껄끄러워질까 말을 아꼈다. 대표님의 귀에 들어갔으니 차라리 잘 됐다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는 직원들의 점심식사. 점심 식사가 문제가 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지만 입맛 까탈스러운 2층 자재실 언니들과 박차장이 점심 식사를 하던 한식 뷔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네들끼리 점심을 해결하겠으니 회사에서 내주던 밥 값을 영수증 처리하면 돈으로 달라는 요지였다. 물론, 건의를 할 때는 저들끼리 작당 모의를 한 것을 빼고는 직원 전체의 의견인 듯 말씀드려서 대표님은 점심 식사에 대한 불만이 직원 전체 의견으로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대표님은 영수증 처리를 하면 돈으로 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굳이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든 직원들에 대해 감정이 좋지만은 않으신 듯 했다.


그리하여 나와 입사동기 박대리, 그리고 남자 직원들은 원래 먹던 식당에서 계속 먹기로 했고, 고양이 엄마 박차장을 포함하여 2층 자재실 언니들과 김과장은 도시락을 싸 오기로 했다. 남이 해주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 좋은 걸 버리고 굳이 에너지를 써 가면서 밥을 해결하는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짬밥이라 불리는 한식 뷔페 식당 밥이 미슐랭일 것 까지는 기대하지 않아도 동네 맛 집 언저리 수준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언니들과 박차장은 맨날 불만이었다.


"이런 쓰레기를 돈 주고 먹으라는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요즘 사람이 많은 거야? 이런 밥을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거냐고!"

"어우! 돼지 잡내!"


난 그들의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퇴사한 박대리가 영업하면서 온 동네 한식뷔페를 다 다녀봤지만 이 집 만큼 가성비 좋은 곳은 없다고 칭찬이 일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 6500원이었는데 반찬 열가지에 국도 냉국과 뜨거운 국까지 준비하고 빠지지 않는 과일 디저트까지 있으면 그래도 아깝지 않은 돈이다. 박대리의 말대로라면 이 한식 뷔페가 입소문이 난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급기야 줄서서 먹는 맛집에 등극하고야 말았다. 12시 땡하고 달려와도 인산인해였고, 점심 시간이 반이 지난 12시 반정도가 되면 더욱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는 소문난 맛집에서 점심을 먹는 자랑거리 하나가 생긴 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들은


"처음에 문 열었을 때는 반찬이 이렇지 않았어. 음식들도 뜨끈하고 얼마나 신선했는데....변했어."


언니들은 이 가게 주인장이 초심을 잃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언니들이 오지 않는다고 망할 일은 없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까지 우리 가족이 잘 가던 콩나물 국밥 집이 생각났다. 인천 남동구 어딘가에 있는 콩나물 국밥 집인데 오픈을 한 날부터 맛에 반하고 인심에 반해서 가족들이 매주 즐겨 찾았었다. 강황을 넣어 지은 밥을 무한 리필해서 먹을 수 있었고, 서비스로 부침개 인심도 후했다. 심지어 아이들이 귀엽다면서 음료수를 무료로 주기까지 했으니 그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가 코로나 후반부 즈음이었는데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식당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었다. 그러나 그 국밥집은 배민 맛집에 등극을 하더니 급기야는 홀에 사람을 받지 않기 시작했다.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찾아 온 손님들은 예약까지 해야했다. 어쩌다 가게문을 빼꼼히 열면 사장님은 예전의 반가운 얼굴을 하고 손님을 맞기는 커녕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가게 안은 배달에 필요한 플라스틱 그릇으로 한 켠은 가득 차 있었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배달 주문 띵똥 거림에 시끄러웠다. 사장님은 전에 볼 수 없었던 금목걸이와 팔찌를 두르고 있었다. 요즘 금 시세로 치면 몇 백만원은 되어 보이는 꽤나 두꺼운 금 붙이들이었다. 사장님의 얼굴에 피던 살랑대던 웃음 꽃 대신에 거추장스러운 금 붙이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어서 그런지 사장님은 손님들의 주문에도 반갑지 않아 했고, 홀 서빙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초심을 잃었음을 아이들도 직감했다. 일부러 가게를 찾아 먹으려 했던 수고는 즐겁지 않았고 밥을 먹고 나와도 마음이 불편했다. 발길을 끊었다. 이를 알 리 없는 배달의 민족 애용자들은 여전히 그 집을 맛집으로 알고 있겠지만 이미 사장의 마음이 바뀌어 버렸음을 아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했다.


초심!

처음처럼이라 했던가.

처음의 그 설렘과 열심과 열정. 그 어느 누구라도 무엇이든지 처음처럼은 도달 할 수 없다.

처음은 그 만큼 매력적인 두근거림을 갖고 있다. 시간이 지나 과거가 되어버린 처음으로의 마음으로 가는 길은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겨두고 싶은 그 때지만 회복이라는 말로 그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애를 쓰기도 하고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그 만큼의 시간을 달려와 어제보다 늙은 오늘을 살고 있다.


늘 말했지만 듣도 보도 못한 부품 회사에 입사한 지, 다음 달이면 1년이다. 벌써 1년.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10년 묵은 먼지를 털어 낸 자재창고에서 근무한 지 벌써 1년이라니 내 자리에서 보이는 저만큼의 창문 한 쪽의 풍경이 4계절을 보여줬다니 말도 안된다. 그 말도 안되는 시간에 기가 차지만 창문 밖 언제나 서있던 아름드리 나무는 입사 했었을 그 때 가을의 갈색 빛깔로 다시 물들고 있다.


어제 대표님께서 내게 물었다.


"문주임! 구매부 갈 것을 후회하지 않았어? 여기 이렇게 혼자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잖아."

"어쩔 수 없지만 후회 안해요."

"그럴 줄 알았어. 문주임! 아주 잘 하고 있어. 내가 맨날 칭찬해."


난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해도 매일의 출근 길에 설렘이 있다. 퇴근 길에 콧노래가 있다. 월급 날에는 기쁨이 있다. 온전히 혼자 였을 청춘 때에도, 둘이 되어 사랑을 할 때에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울 때에도, 경력단절 여성으로 사회에 발을 다시 들였을 때에도 내 삶을 향한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과정 속에 그 마음이 오르막을 걷기도 내리막을 뛰기도 지루한 평지를 걸을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최선 중에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내게 있던 부족함과 결핍은 힘의 원천이었다. 항상 간절했고, 항상 소중했다.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맺음을 위해 성실한 오늘을!

나에게 초심이란 지치더라도 멈추지 않고 그 마음의 결과를 향해 성실히 걸어가는 것이기에 오늘도 홀로 있는 자재창고에서 바라보는 가을로 향한 저 나무의 빛깔에 뿌듯하다.



초심보다 중요한 건 현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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