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KE UP2

맏아들이 몰랐던 것 그리고 ....

by MAMA

지난 글에 이어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더 해 볼까 한다. 아비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라 말했던 지난 글에서 나는 좀 더 깊이 상고해 보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우리의 초점은 온통 흥청망청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못난 놈에게 맞추어져 있다.그러나 이 세상 정욕과 물질이 주는 쾌락만 바라본 목적 없는 삶을 살았던 아들을 여전히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아비의 품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지만 기다렸고 품어주고 새 신을 신기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껴서 아비의 아들이라 만방에 선포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이러한 탕자를 받아준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끝이 없다. 언제나 오래참고 온유하다.



그런데 이 탕자의 형을 살펴보자. 이 형 또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할 못난 자식이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몇 구절에서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탕자의 형은 동생이 떠나있었던 동생을 걱정은 했지만 몹쓸 녀석이라 여기고 기다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탕자가 아버지의 품군들이라 일컬었던 것으로 보아 아버지에게 재산이 상당했고 당시의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건 땅과 목축으로 일궈낸 많은 양, 염소등이기에 논밭일과 목축까지 많은 일을 형이 감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었던 그 날도 형은 밭에 있다가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15장27절) 집이 씨끄럽기에 종에게 물어보니 당신의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하니 그 말에 화가 났고 동생을 보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자리에 함께 하자고 권하자 그는 이렇게 말을 한다.


"아버지를 위해 명을 어겨본 적도 없이 아버지를 섬겼는데 내게 염소새끼라도 내어 주어 내 벗과 즐기게 한 적이 있었나요? 어떻게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창기와 놀아난 자식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실 수 있나요?"

(누가복음 15장 29절)



나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형이 느끼는 이 감정은 동생을 향한 분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더 밑바닥엔 본질 적으로 시기심이라는 감정이 있다. 이 엄청나게 못난 녀석은 인간의 원초적인 악한 감정으로 천지가 창조 되어 아담과 이브를 만드셨을 그 때 원죄의 발단이 된 녀석이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뱀의 유혹에 현혹된 이브가 느꼈던 그 감정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넘어섰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다는 걸 인간이 지켜보면서 거기서부터 오는 미묘하지만 짜릿한 오만함이 발단이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시기심을 갖는다. 이미 시기심을 갖는 순간, 상대가 나보다 낫다고 인정하는 지지리도 못난 놈임을 밝히는 자각 인정임에도 불구하고 이 감정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이 시기심의 결말은 상대가 파멸되어야 정리가 된다. 그리하여 사탄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지음받은 인간을 모두 파멸로 이끄는 사투에 열심을 다해 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맏아들은 동생이 돌아 왔을 때 아버지가 다그치고 혼쭐을 내어 내쫓아 버렸어야 속이 시원했을 것이다. 그게 세상의 이치인데 아버지의 탕자를 맞는 태도는 맏아들의 예상을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인과응보가 아니라 아닌 밤 중에 홍두깨 격이니 맏아들의 분노는 여느 인간들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

아버지 대신 동생에게 악설을 퍼붓고 싶어 화가 난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대꾸하신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이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란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 났잖아. 내가 잃었다가 얻었는데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니?”



아마도 소식이 끊겨 아들 녀석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비의 재산은 전부 여전히 성실하게 옆에서 수고하고 있는 큰 아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맏아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겠지만 동생이 돌아오는 순간, 아마도 여러 생각이 교차했을 것이다. 한 길 물 속은 알아도 열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집으로 돌아 왔을 때 맏아들의 마음은 열 길의 갑절은 되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 맏아들이 놓친 것이 있다. 아비의 집에서 누렸던 호의호식, 상속자로서의 믿음, 재산에 대한 관리등의 물질에서 오는 풍족함보다도 더 큰 ‘평안함’이 그것이다. 원래 진짜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매일 보는 푸르른 하늘, 때때로 불어 오는 바람, 따사한 햇볕, 짙은 녹음과 형형색색의 단풍, 맑은 물, 포근한 이부자리, 가득 찬 쌀,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상, 머리에 새둥지를 한 아이들이 오늘 아침도 식탁에 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음과 출근 길에 흘러 나오는 찬송 등 우리가 감사하다고 여기지 못한 허다한 많은 것들이 주는 ‘평안’이라는 협업에 오늘도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만다.



맏아들은 평안했다. 그 삶이 고요했다. 단조로웠지만 세 끼 밥 굶지 않았을 것이고 수고롭게 일을 했지만 심고 추수하면서 기쁨을 만끽했을 것이다. 늙은 아버지 대신 종들을 부렸고, 재산을 관리했고, 섬김을 받았을 것이다. 그 풍족하고 평안했던 삶은 탕자의 유랑했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는 아비의 유일한 상속자로서 평안하고 충성스러운 믿음직한 삶을 살았다. 그 정도면 장자권을 빼앗아 외삼촌 집으로 달아난 야곱을 반갑게 맞으러 간 에서보다 더 큰 아량으로 품어 줄 수도 있었을텐데 …….



어찌되었던 이 탕자 이야기는 탕자도 맏아들도 주인공이 아니다. 진짜 주인공은 이 두 못난 녀석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아버지다. 아비의 돈을 들고 집을 나가버린 자식도 시기심에 뿔이 나서 죽었다 살아온 동생을 미워하는 자식도 다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아버지.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들이 다 예쁜 짓만 하는 것도 아니고, 미운 짓을 한다고 해도 미워할 수도 없는 게 부모 마음이었다. 어느 때다 다 똑 같은 마음으로 품어주고 사랑하고 보듬고 싶은 마음 그게 부모 마음이었다. 인간이 악하여 형제들은 저들끼리 다투고 시기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되라고 만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부모라는 존재를 주심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버.지.


그 석자에 부모 속 썩였던 탕자라서 찔림이 있는 것인지 맏아들의 시기심처럼 형제의 잘됨에 배가 아픈 찔림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보다도 더 큰 뭉클함이 울컥대고 넘어온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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