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투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음행'이란 음탕하고 난잡한 짓의 사전적 의미를 지닌 단어로 일상생활에서 보통 바른 성생활을 하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도덕과 윤리를 지키지 않는 행위에 쓰인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말, 행동에는 지켜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 반드시 존재한다. 성과 관련하여 그 선은 특히 더 엄격하다. 이 선을 넘어서 상대에 대한 정결치 못하고 윤리적이지 못한 태도를 일컬어 음(淫:음란할 음) 이라 칭하고 간음, 음란, 음행, 음탕 등의 단어는 올바르지 못한 성적 행위나 관계 또는 생각 등을 가리켜 사용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행'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성적 생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무를 때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 하기를 시작하였다. (민수기 25장 1절)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여 백성이 먹고 그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다. (민수기 25장 1절-3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음행'이란 다른 신을 섬기는 것,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시한 '우상숭배'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왜 우상숭배를 '음행'이라고 말씀하셨냐는 아가서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건 바로 우리를 가리켜 '신부'라 칭하신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신부와 신랑으로 비유하셨다. 신랑이 신부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과 신뢰를 담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신랑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 마음을 업신여기고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를 '음행'이라 하셨다.
아는 지인은 십여 년 전, 이혼을 했다. 부부와의 관계는 부부 밖에 모르는 것이지만 이혼 소송과 4년에 걸친 재산분할 소송까지 하게 된 그 지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사춘기시절 상처받은 두 아이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우울증 밖에 없었다. 그 이혼의 사유는 간통을 포함한 여러 가지 원인이 오랜 시간 중첩되어 있었다. 간통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남자로 인해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녀는 이혼의 그림자 밖으로 간신히 벗어난 듯 보였다. 이제야 아이들과 살아야겠다고 하는 걸 보니 부부 관계가 깨지는 극단적인 상황은 충격이나 스트레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내면 속 아주 깊은 좌절과 환멸 그리고 자해와 비하, 후회와 원망으로 얼룩진 그림자에 자아를 가둬두는 상처로 남는 것 같다.
이렇듯 인간관계에서 믿었던 배우자가 간통죄를 범한 경우, 지금은 그 괘씸한 죄를 법적으로 묻지 않지만 그 죄로 인한 파장은 실로 엄청나다. 배우자의 배신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자녀들 양육 문제는 물러설 수 없는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 죄를 법적으로 묻지 않아 전에 피의자라 칭하던 자들이 사회에서 공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변하는 사회 통념상 법적 잣대를 갖다 댈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배신에 진노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선한 양심을 주셨기에 신뢰에 대한 멸시 행위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압 여자들을 따라 다른 신을 섬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니라 (민수기 25장 4절)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진노로 두령들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적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나왔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장막에 들어가 그 남자와 미디안 여인의 배를 꿰뚫어 죽였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는데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 명이나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가리켜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누군가가 억울함을 토로할 때, 같이 그 상황을 공감하고 화를 내어 주는 'F' 형 인간에게 아군이었음에 안도감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질투와 분노를 같이 느낀 비느하스때문에 진노를 삼키셨다. 바람 난 남편을 또는 나를 업신 여긴 누군가를 실컷 두들겨 주었더니 속이 시원한 뭐 그런 인간사의 다반사에 비유를 하자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자그마치 2만 4천 명이 죽었다. 음행 한 자들로 두령들이 목을 매달았다.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을 배반한 자들이 받은 벌이다. 하나님께서 진멸이라 말씀하셨던 것처럼 당시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그대로 받았더라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를 했던 비느하스가 있었던 것이 이스라엘이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질투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업신 여기고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며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참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전지전능한 창조주로 신랑의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바라보신다. 그런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배반하고 거스르는 일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신랑되신 주님은 사랑하는 이에게 절대 등을 돌리시지 않는다. 그 사랑을 안다면 그 변하지 않는 마음을 안다면 그 얼굴을 바라보고 그 손을 잡고 매일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는 선택을 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