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준비
연일 캄보디아에 관한 소식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계 범죄 조직이 당국 수사 강화를 피해 대체적으로 감시가 느슨한 국가로 이동하면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중국계 범죄 조직은 처음엔 필리핀으로 근거지를 옮겼고, 그다음이 캄보디아, 미얀마 순이다. 처음에 이들은 검은돈으로 부동산을 사들인다. 경제 활성화처럼 보이고 당국의 감시가 호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렇게 해서 찬즈라는 사람이 대표로 있는 프린스그룹이 급성장했다. 재벌로 급부상한 프린스그룹은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기업인으로 자리 잡아 국가의 신뢰까지 받았다.
그러나 온라인 사기도박등의 문제가 잦아지자 당국의 의심을 받게 되었고, 그들은 이에 또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그때마다 이윤을 남긴 집단, 빚이 더 커진 이들이 발생하고 근거지를 옮길 만큼 재력을 갖추지 못할 경우 떠나지 못하고 계속 남아 수사감시망을 피해 납치, 인신매매를 일삼는다고 한다. 한국인의 몸값이 동양인 중에 비싸다고 하니 돌아오지 못한 많은 한국인들의 행방이 큰 우려로 남는다.
캄보디아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도 캄보디아행 티켓을 끊고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 대학생이 친구를 만나러 간다면서 캄보디아행 티켓팅을 하려고 하자 항공사 직원은 의심했다. 재차 연유를 물어 만류하고자 했고, 그 대학생은 어머니께서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했다고 직원을 안심시키려고 했으나 그 직원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출국을 막았다고 한다. 그런 실랑이 와중에 그 대학생의 카톡을 확인하니 출국을 종용하는 강압적인 시도가 있었고 이에 경찰은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젊은 대학생들이 왜 그렇게 고액소득에 현혹이 되었을까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시계의 인플레이션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각 국가들은 부채를 갚는 방식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채 탕감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각 국의 개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혹 금융위기가 닥치더라도 중산층에게 계층을 뛰어넘을 수 기회는 희박하다. 중산층의 감소는 이 후, 더 큰 빈부의 격차로 이어질 것이다.
누구나 다 내다보는 이러한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젊은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역사의 흐름을 보면 전례 없었던 호황기, 전례 없었던 침체기는 늘 있었다. 화평한 때가 있었고, 전쟁할 때가 있었다. 언제나 역사는 반복되었다. 역사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의 흐름에는 우리가 웃고 우는 돈의 흐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를 기회를 삼는 이들이 있고, 태평천하 중에도 망하는 이는 존재했다.
개인적으로 젊은 친구들이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대해 낙담하여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때면 한편으로 이해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이 어려운 상황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상대적 빈곤감이 아니라 모두에게 평등한 상황. 그러니 더욱 낙담할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말이다. 살기 좋다고 말하는 북유럽의 물가는 살벌하고, 동성애의 만연화로 이혼율은 더 높아졌으며, 노령화로 인해 국가의 노동력은 부족하고 세금은 올라간다고 말이다.
물론, 경제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이 꼭 돈일 필요는 없다. 그 찰나의 아름다운 시기에 삶의 목적이 고액소득일 필요는 없다. 성경에도 젊은 시절 목적이 돈뿐인 녀석이 있었다. 교회를 다니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목사님 설교에서 들었을 법한 '돌아온 탕자'라고.
탕자는 정말 말 그대로 탕자였다. 아버지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계심에도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였다. 어차피 유산으로 남겨 주실 것을 미리 당겨 달라는 것이다. 요즘은 부동산 보유세가 높아질 것을 우려하여 미리 상속을 한다고 하지만 그러한 세금 폭탄으로 자산의 가치에 손해가 나는 상황도 아니었을 텐데 이 아들의 목적은 아비의 재산으로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속셈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아버지는 이러한 위도 아래도 없는 막돼먹은 자식 놈을 사랑하여 재산을 내어주신다. 탕자는 자신의 손이 수고하여 얻은 재산이 아니니 아깝지도 않을 터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허비하고 만다.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었을 때, 탕자의 주머니는 이미 비어있어 보릿고개를 견딜 방법이 없었다. 타국의 어느 백성 중 하나의 집에 빌어 붙어살며 돼지를 치게 되었는데 오죽 사정이 안 좋고 대우가 시원찮았으면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에게 짐승의 먹이마저도 주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인격을 짐작해 보기 어렵지 않다.
여하튼 누구도 그를 찾지 않는 때에 배가 곯아 누워 생각나는 사람이 그래도 아버지였던 모양이다. 주려 죽는 마음에 죄스럽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재산이 많고 아버지께서 후덕하여 품꾼들조차 양식이 풍족하였으니 돌아가면 그 품꾼 중 하나가 되어 살면 되겠구나 결심하고 돌아간다. 아버지는 거리가 꽤 멀지만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는 자식을 단번에 알아본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긴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지위와 명성, 능력, 재산을 일구어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돈에만 목적을 두어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랐던 탕자의 삶은 행복했는가? 신기루처럼 쫓았던 물질이 사라지자그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으로서 가치 있게 그려나가야 할 신념조차 없어 육신의 정욕에 쫓아 살게 되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수고와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로지 돈이 목적인 삶은 탕자가 살고자 했던 삶이랑 다를 것이 없다.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부유함 딱 그뿐인 삶. 그러나 인류 역사상 흥망성쇠를 결정했던 그놈의 돈은 말이다 도박으로 얻어질 일확천금의 행운이 아니다. 열심히 손이 수고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다. 내가 고작이라 말하는 월급 이백만 원은 하루 팔천 보를 3층과 2층, 1층을 오고 가며 발에 땀이 나도록 일해야 고용주를 만족시키고 그 만족으로 아깝지 않게 주어지는 노력의 산물이고, 그 노력의 산물 안에 나의 신뢰도가 쌓인다.
내 남편이 버는 월급은 나의 월급에 갑절이 넘는데 야근에 특근에 출장까지 같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 평일이나 주말이나 자는 모습만 보게 되는 결과로 얻어지는 눈물 젖은 피땀이다. 재벌을 누가 돈 쓰는 사람이라 했는가. 재벌은 돈을 모으는 사람이다. 여든에 가까운 어머님은 아직도 경제활동을 하시고 자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방앗간이라도 하시겠다고 궁리를 하신다. 금 스무 돈을 목에 주렁주렁 걸고 돈 자랑하러 동문회에 나온 몇 백억 자산가인 어느 지인의 회사 CEO도 지인의 말에 의하면 허구한 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돈 벌 궁리만 한다니 결국 부지런함이 부유함을 만드는 거라는 사실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돈은 수단이다. 목적이 될 수 없다. 열심히 수고하여 가족들과 배불리 먹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조금씩 전진하고자 하는데 필요한 재료일 뿐이다. 그러나 그 재료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얻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훌륭한 재료로 삶을 누리고 마지막 목적지까지 잘 도달해야만 한다. 목적지는 아비의 품이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탕자를 기다리는 아비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뜻한 아비의 품. 아버지께 갈 때 아버지를 기쁘게 할 선물 꾸러미를 가득 안고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수고하여 살아야 한다. 아비를 기쁘게 하기 위해 정직하게 능력껏 사는 것.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절대 평등한 관문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불평등으로 치부될 수 있는 그토록 많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절대라는 단어와 유일하게 부합하는 죽음이라는 건 그리스도인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자 아버지에게 갈 수 있는 새로운 통로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삶'이라는 시간동안 아버지에게 칭찬받을 선물을 많이 준비해 놓아야 하겠다. 이 땅의 부귀영화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나의 수고, 나의 성실, 나의 정직, 나의 도움, 나의 사랑, 나의 베품으로 기뻐하신다.
적어도 자식된 도리로
아버지를 뵈 올 날이 가까와 오는데,
아버지가 뛸 뜻이 기뻐하시는 선물을 준비해야 할 시간에
갖고 가지도 못할 돈만 쫓다가 빈털터리 거지꼴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