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순둥이다. 큰 아이를 키울 때, “우리 딸 아이 같으면 열 명이라도 낳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었다. 먹기도 잘 먹었고, 잘 울지도 않았다. 뭐든 까탈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항상 안아달라고 조르기는 했어도 둘째가 생긴 후로는 그마저도 스스로 타협을 본 기특한 아이였다. 요즘은 날이 갈수록 부쩍 기럭지가 길어져 동갑내기 친구처럼 어깨동무하며 엄마 키를 앞질러감을 자랑스러워 하는 귀여운 아이, 워낙 그 마음이 솜사탕같아 폭신폭신하고 달콤한 걸 좋아하는 아이여서 엄하고 융통성 없는 이 어미 때문에 맘 고생이 많았을텐데도 제 딴에는 좀 컸다고 엄마를 살뜰히 챙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는 사춘기다. 어미의 갖은 노력(노력보다는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춰줌에 가까움)에도 부딪히는 날은 종종있다.
“내가 하지 말랬잖아. 나는 싫다고. 창피하다고.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면서”
얼마 전, 친정에 갔다가 키가 껑충 큰 손녀를 보자 아버지가 큰 딸에게 대체 얼마나 크려고 그러냐고 우스게 소리를 하시자 나는 딸의 키에 대한 자부심에 으스대며 딸의 발 사이즈를 얘기했고 딸은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결국, 집에 오는 차 안에서 폭발한 딸은 짜증을 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 아이의 발 크기가 265mm를 넘었다. 분명, 3월에 중학교 입학한다고 아울렛 나이키 팩토리에서 하나는 에어맥스를 다른 하나는 분위기 바꿔 번갈아 신으라고 밑창이 고무로 된 캔버스화를 사주었다. 물론, 그때도 260mm이었던 터라 여자 신발 사이즈에서는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어 남자 신발 코너에서 남편이랑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여성스러운 디자인을 찾았었다. 그때만해도 나는 딸 아이의 발 사이즈가 자랑스러웠다. 키도 발 사이즈에 맞추어 더 클 거라고 믿으니 동네방네 주책맞게 자랑하고 싶었다.
남편의 발 사이즈는 300mm이다. 여간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신발을 국내에서는 찾을 수 없다. 사이즈가 있는 신발 중에 그나마 욕구와 타협할 수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늘 남편은 “한국에서는 마음에 드는 신발을 신을 수가 없어.”라고 푸념을 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딸이 그러고 있다.
며칠 전, 양말을 벗은 딸의 발가락에 물집이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신발이 작아졌다고 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세 또 발이 큰 것이다. 그 날 밤 걱정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 발 사이즈가 270mm가 있을까 싶어 네이버에 물었더니 아주 드물게 나와 같은 걱정을 하는 몇이 있어 위안이 되었다. 딸 아이도 커지고 있는 발에 대해 창피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여 말을 하지 못해 커진 발을 작은 신발에 구겨 넣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걱정하지마! 어제 엄마가 네이버 찾아보니까 그런 얘들 많진 않아도 있기는 있어. 괜찮대. 그렇게 크다가 멈추었다고 하더라. 유전은 유전인가봐. 그런 사연 가진 아이들의 아빠들이 180cm는 다 넘더라. 어떤 얘는 아빠가 192cm, 엄마가 174cm래. 아유! 발 크면 키도 크고 키 크면 청바지 입어도 안 끌리고 멋있잖아. 괜찮아. 오늘 신발 사러 가자!”
수심이 가득했던 딸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만만한 아울렛 나이키 할인매장으로 향하는 차 안 조수석에 앉은 딸 아이는 자기 발을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보니 안 커 보이는데.... 엄마! 하나님께서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면 발 좀 작게 해달라고 할 거야.”
'그 많은 소원 중에 발을 작게 해달라고?'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나이키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여성 코너를 먼저 훑어 보았다. 보통 250mm(us 8)까지 나오는 디자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한 두 개 잘 팔리지 않은 투박한 디자인들은 큰 사이즈들도 있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딸 아이는 벌써 표정이 어둡다. 남자 신발 쪽으로 이동하였다. 투박하지 않은 패션화 위주로 운동화를 찾으니 조금 괜찮은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딸 아이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나도 덩달아 허둥지둥 큰 아이 눈치를 보며 신발을 한창 찾다보니 땀이 줄줄 흘렀고,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남편처럼 신고 싶은 신발을 신지 못하고 사이즈에 맞추어 있는 것 중에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니 이제 겨우 14살인데 앞으로 얼마나 많이 예쁜 신발을 신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딱해 보였다. 점점 딸 아이는 포기를 하는 눈치였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신발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사이즈를 찾아보더니 30분 정도 지나자 자포자기한 표정이었다.
“발만 편하면 되지.”
속이 상했다. 나는 딸 아이 발이 크니까 키도 클거라면서 여기저기 엄청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곤 했는데 딸은 그때마다 나를 엄청 싫어했다. 오늘 땀을 흘리면서 신발을 찾느라고 고생하는 소녀를 보니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렸다. 예쁜 구두도 신고 싶을텐데....
1시간을 헤맨 끝에 남자 신발 코너에서 여성스러운 색을 띄는 하늘색의 에어맥스 265mm를 샀다.
“엄마! 이거 발 커 보여?”
“아니! 하나도 안 커 보여. 아주 예쁘다.”
딸 아이는 머쓱해하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에게는 내가 길잡이라 생각이 들었다. 앞장서서 졸래졸래 따라오는 아이들을 보는 게 인생의 낙이자 행복이었다. 내 멋대로 어디든 가도 잘 따라오는 아이들을 말 잘 듣는 아이들이라 자부하며 자가당착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낙과 행복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은 내 뒤를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옆에 서 있기도 하고 지나가기도 했고 앞서 가기도 했다. 제 키가 엄마를 따라 잡고 있음에 엄마가 친구가 되어주길 바랐다. 처음엔 알량한 자존심에 아이들에게 질 줄 몰라 어른인척 으르렁댔다. 그럴 때마다 삐걱댐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난 알았다.
'나는 왜 저 어린 소녀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 못 하고 있었을까?'
속이 상했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눈치를 주었건만 그토록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면서..."라고 말했건만. 이제야 .... 이제야.... 저 소녀의 마음이 보이다니....
난, 더 이상 딸 아이의 발 크기를 자랑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