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짓기
꿩이 날았다. 야트막한 언덕 밑에 자리 잡은 밭에는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생태계의 생명들이 존재한다. 이름 모를 연둣빛의 잡초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청개구리, 잠이 덜 깬 점박이 참개구리, 바쁘신 새 하얀 나비와 주황 호랑나비, 땅 속에 꿈틀대는 지렁이, 꽃 냄새에 정신 못 차리는 벌들과 그 외에 알 수 없는 등딱지가 노랗고 남색인 벌레들, 먹이를 나르느라 바쁜 개미들까지 반나절 일하고 나면 곤충 박물관에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따뜻한 듯 선선한 듯 아직은 선물 같은 바람결에 농부의 땀을 말리고 있으면 구름같이 뭉개뭉개한 뻐꾸기 소리와 그의 다양한 친구들의 대화 소리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도심에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자연의 교향악은 그 어떤 악기소리보다도 풍성하고 그 어떤 연주자들의 현란함보다 다채로와 귀도 눈도 호사를 누리게 한다.
3,4월에 청아한 초록빛 산마늘 수학 시기가 끝나면 산마늘 꽃대가 올라온다. 두 세 고랑 심었지만, 그 씨가 제법 퍼졌다. 올해는 꽃대에 있는 씨앗을 거두어 잡초매트를 덮어 놓은 땅에 골을 내어 더 심어 보려고 한다. 농부의 마음에 생명의 번식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 정보화시대에 진실로 생산을 하는 산업은 1차 산업뿐이다. 농업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1+1이 아니라 1+ 2, 1+3이 되는 배가 되는 생산을 하는 유일한 산업이라 숭고하고 매력적이다. 생산량이 늘어나고 저 밭에 고랑의 빈 곳 없이 촘촘히 박힌 청록빛 산마늘의 물결을 상상하니 벅차오름에 순간 흠뻑 젖어 함박웃음을 지었다.
5년 차 된 땅두릅은 이제 제법 뿌리가 굵어졌고, 튼실한 두릅 순의 향기는 시중에 파는 참두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하고 줄기는 싱싱하여 어디다 내놓아도 상품가치가 뛰어난 녀석이 되었다. 약이다 생각하고 살짝 데쳐 물에 잠시 담가두어 한 입 베어 물면 치약과 맞먹을 정도의 화한 두릅향이 입 전체에 퍼진다. 그 향만으로도 이 녀석의 약효를 증명할 수 있을 정도다. 겨울에 바짝 가지치기를 하고 나면 4월이 땅에서 움이 트는 두릅의 수확시기이고 그때가 지나면 거침없이 자라기 시작한다. 지금은 내 허리춤이 넘게 자랐고, 사이사이 새로 나오는 줄기와 어린잎들을 먹으면 된다. 덕분에 밥상에 끊이지 않고 여름까지 올라오는 약초덕에 춘곤증도 없어지고 피도 맑아지는 느낌이지만, 아이들은 인상을 쓰곤 한다.
밭에서 일하는 반나절은 도심에서 한두 시간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일을 하느라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잠시 쉬려고 땀을 말리려고 콸콸 쏟아져 나오는 지하수 곁에 잠시 앉아 있으면 꼬락서니가 말도 못 하다. 여기저기 풀이 붙은 옷가지 하며 흙이 묻은 것도 모르는 벌건 얼굴과 쉰 내를 풀풀 풍기는 땀에 절은 모자까지.... 아주 잠시 앉아 얼음짱 같은 물 한 사발 들이켜고 뭐가 또 바쁜지 엉덩이를 털고 또 재촉한다. 그런데 밭에선 우리만 바쁜 것이 아니다. 생산을 하기 위한 농부의 삽질과 낫질에 덩달아 바빠진 녀석들이 있다. 따뜻한 봄내음과 꽃들이 사람만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벌레들도 이 시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짝짓기 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잡초를 뽑느라 갈아엎는 땅 속에서도 넓은 머위 잎 위에서도 담쟁이덩굴 사이에서도 정신들이 없다. 생육과 번식은 주님이 만드신 만물의 질서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저들의 부지런한 질서에 순응함이 내일의 벌을 만들고 꽃가루를 나르고 푸르름이 더욱 커지게 한다. 우리 사람들이 모르는 그들의 질서와 사명은 하나님께서 판단하라고 주신 사람의 이성과 다른 무조건적 복종이므로 100%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대변한다. 하나님의 질서는 생육과 번성이다.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1절-22절)"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 기뻐하셨고 흡족해하셨다. 가끔 타임머신을 타면 어느 때로 가고 싶냐고 아이들이 물을 때가 있다.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사람들이 번성하기 전, 공룡들이 살던 원시적이었을 그때로 가고 싶다."
인류는 현명해졌다. 더욱 고도화된 기술로 매일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인류는 매 순간 진화하고 있다. 그것이 선한 필요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악한 변질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날아다니는 택시를 타고 다니는 시대가 도래하였고, AI의 지능이 사람의 두뇌의 탁월함과 유연함까지 초월하였고, 각 가정의 로봇의 상용화가 가까워졌다. 그런데 인류의 최고 번성기는 역사의 반복됨에 늘 등장하는 마지막 때다. 고대 제국의 번성과 멸망이 그러했고, 유럽의 제국주의의 흥망성쇠와 패권의 이동이 그러했다. 윤리와 도덕이 타락하고,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감정의 메마름, 심각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동성애로 인한 가정의 파괴.
가정의 파괴는 국가의 멸망을 초래한다. 로마제국에도 동성애가 왕성하게 퍼졌다. 심지어 로마가 쇠퇴하던 시대 엘라가발루스는 여장을 즐겼다. 로마가 흥왕 할 때, 동성애를 엄히 다스렸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전쟁을 해야 했던 제국의 국력은 국민의 수의 많음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생산력을 저해하고 국가 이익에 위법한 동성애를 화형으로 다스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법과 인간의 질서를 거스름은 예나 지금이나 잡초같이 물을 주는 이가 없어도 번성하는 위험을 초래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멸망길로 들어선다.
국가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젊은 장수의 화살통의 화살이 자식인 것처럼 국가의 힘은 국민의 수로부터 나온다. 단순히 국민의 힘과 의지와 생각에서 국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많은 국민, 국가의 생산력에 힘을 싣는 국민의 숫자로부터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인도, 중국을 보면 알 수 있다. 대국은 많은 국민의 힘으로부터 자부심을 갖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물방울이 모여 호수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듯이 한낱 개인의 주머니는 결국 국가의 곳간을 결정한다. 개인의 경제는 곧 국가의 경제다. 개인의 애국심은 곧 국가의 국방력이다.
동성애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는 가정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가정이 없이는 생육과 번성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가정의 파괴는 국가의 파괴를 초래한다. 일을 할 수 없는 인구를 생산치 못하게 하고, 나라를 지키는 인력을 더 이상 충원할 수 없다는 것은 국가의 위협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장 26절-27절)"
로마서에 기록된 말씀대로 동성애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들한테 내려진 형벌이다. 그 마음을 상실한 대로 내어버려 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형벌이다. 들판의 미물인 먼지만한 벌레들도 암수가 있고, 말 못 하는 꽃들도 암수가 있거늘 어찌하여 남자라 여자라 하나님께서 칭하신 창세기 1장의 말씀을 거역하여 본분을 모르고 그릇된 길을 걷는 것인가
1600년간 40명의 저자를 통해 기록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그 첫 장의 말씀이거늘 이도 지키지 않는 자들이 어찌 그 뒤에 나오는 말씀들을 지킬 수 있겠는가
5월의 짙은 초록의 물결이 오기 전, 그 아름다운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곳엔 생명의 탄생이 있다. 하나님의 질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질서의 순리에 따라 생명들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하나님이 지으셨고 연약한 육체에 이성을 주셔서 날짐승보다 들짐승보다 뛰어나게 하셨으니 그 지혜와 현명함에 따라 판단할진대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 분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