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
지난주 마늘과 양파를 수확했다. 애초에 돈을 아낀다고 타공비닐을 사지 않고 일반 비닐을 써서 듬성듬성 구멍을 낸 것이 첫 번째 마늘 농사 실패의 원인이었고, 두 번째 실패 요인은 마늘을 너무 깊이 심었기 때문이다. 저 세상 끝의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려주는 유선생님을 따라 보고 배우고 갔는데도 돈 좀 아껴 보고자 한 마음에 본전 치기에도 못 미치는 수확을 하고 말았다. 사실, 본전 치기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게 간이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주고, 잡초를 뽑는 수고를 생각하면 말도 못 한 손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실패작이었다. 제초제나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잡초들이 무성한지 절반은 잡초가 연한 마늘을 먹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게 곡식을 심으면 그 옆에 자라는 잡초들은 심긴 곡식과 꼭 닮아 비슷해서 구분이 되지를 않는다. 작약이 심긴 밭에도, 산마늘이 심긴 밭에도, 마늘과 양파가 심긴 밭에도 각각 다른 잡초들이지만 밭에 심긴 작물과 닮은 잡초가 난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장 24절-32절
구분하기 어려워 뽑히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누가 와서 그런 것들을 꼭꼭 심어 놓고 가는 것 같다. 마늘의 여린 잎 바로 옆에 기생하는 잡초들을 뽑아 놓고 그다음 주에 가면 또 자라 있고, 또 자라 있었다. 그 사이 비라도 오면 얼마나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지는지 작물이 자라는 속도의 두 배 이상으로 잘 자란다. 그러다 보니 어린 마늘을 지키려고 커버린 잡초를 뽑다가 뽑아버린 마늘이 얼마인지 모른다. 땡볕에 땀이 범벅이 돼서 결국 마늘을 뽑아 버리면 얼마나 아까운지 속이 상함은 말도 못 한다.
농사를 짓다 보면 어쩜 그렇게도 주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는지 모르겠다. 말씀에 '가라지'라 함은 볏과의 한해살이풀. 줄기와 잎은 조와 비슷하고 이삭은 강아지풀과 비슷하다 라 되어 있다. 틀림이 없다. 내가 느낀 잡초의 못된 습성이 말씀과 틀림이 없다. 곡식은 아니지만 볏과의 풀이고 강아지풀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즉, 곡식은 아닌데 곡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가라지 신자를 뽑으려면 계책이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하다. 단호함이 필요하며 담대함이 필요하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거나 진리를 믿는 자들이 오히려 핍박을 받을 수 있다. 오랜 신앙생활 동안에 그러한 모진 바람이 한두 번 이겠는가. 가라지가 워낙 많고 현혹되기 쉬우니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여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가라지와 같이 뽑혀버리고 만다. 최근 몇 년 전, 코로나를 겪을 때도 우리는 그러했고, 국가의 위기가 닥칠 때도 그러했다. 숱한 인생사의 위기를 겪으면서 그리고 모진 가라지의 침범함을 이겨낸 곡식만이 진짜 알곡이기에 추숫군에게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알곡이 되기까지 가라지를 이기는 믿음으로 인내하라는 것이 아닐까.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이러한 진리는 신앙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한 관세정책으로 인한 무역전쟁은 전 세계의 촉각을 곤두 시켰다. 영국에서 미중사이의 합의가 어느 정도 이 격돌을 진정시키는 듯 하지만 우리는 늘 이번사태를 계기로 대비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번 무역전쟁이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이 없고 기술로 수출을 하는 나라에게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중대사안이라는 것을 국민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이 문제를 단순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광기로 치부하는 무관심과 무지함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또한, 지금 미국 LA에서 벌어지는 불법체류자들 추방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정부의 충돌 또한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이는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는 반이민정책 수준이 아니다. 불법체류자들은 입법국가의 입국 절차를 받지 않았다. 어느 국가든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아 입국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법의 지배 하에 없는 이들이 해당 국가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부의 혜택을 받았고, 고용주들은 이를 알면서도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생산활동을 하였다. 처음엔 인건비 절감에서 많은 이득이 되었다.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갑자기 인건비로 나가야 할 돈이 주머니에 그득해지니 기업가나 고용주 입장에서는 당연히 플러스 요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수가 소수였을 때는 그 국가에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나 이들이 다수가 되었을 때, 즉 국가의 경제체제의 생산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이 불법적으로 그 국가에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나라에서 중산층 이상의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재력을 형성하면 자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이 떠나는 과정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값싼 외국 노동자들이 자리매김했었던 일자리에 미국 백인 노동자들은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에 이득을 봤던 고용주들은 고용에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어제 미국 뉴스에서 캘리포니아 농장에 농작물을 수확할 외국인 노동자가 자취를 감춘 모습을 방영했다. 결국,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불안하지만 예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불법체류를 하면서 노동을 했던 이들이나 그들을 고용했던 고용주들이나 모두 다 예견하고 있었다. 이제는 당면한 현실에 눈물을 흘리고서라도 제 값을 준 노동자들로 아니,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이라면 값을 더 주고서라도 수확을 해야만 할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가치 희생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감수하는 것이 향후 더 큰 손실을 위해 나은 길이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국가의 생산력과 기업의 성장을 높이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는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값싼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있다. 제조 공장과 농사에 즉, 국가의 생산력을 담당하는 산업에 포진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점심 식사를 하는 한식 뷔페 주방에도 주인장과 조리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베트남 노동자들이다. 값싼 메이드인 차이나가 우리나라 어디에나 있듯이....
메이드인 차이나는 대한민국 모든 가정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 숟가락 하나에서 아이들이 쓰는 샤프하나 수건 한 장 모두 중국에서 만들지 아니한 것이 없다. 이게 얼마나 소름 돋는 중국의 무섭게 성장한 경제규모인지 가늠해 보길 바란다. 밀려드는 값싼 메이드인 차이나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많은 산업의 제품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GD가 노래했듯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 값싼 메이드인 차이나가 가격 경쟁력이 없다면 즉, 가격이 상승한다면 수입이 과연 이득인지 국내 생산력을 올리기 위해 다 죽어간 산업기반을 다시 만드는 것이 이득인지 반드시 저울질해야 한다.
그렇다고 불법의 외국의 노동자들이나 메이드인 차이나가 가라지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현혹될 수 있는 진짜와 꼭 같으나 진짜는 아닌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가라지는 곡식과 비슷하다.
현혹되기 쉽고 너무 실하고 잘 자라나 곡식인 것만 같다.
가라지가 작고 연약하여 곡식과 비등비등 할 때는 뽑기도 수월하지만 뿌리를 내리고나서부터는 곡식까지 다 뽑혀 농사를 망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