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WAKE UP 1 21화

WAKE UP

시 기

by MAMA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이 우스개 같은 속담은 인간의 깊숙한 지저분한 감정을 해학적으로 풀었지만 사실 상당히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다.'시기'란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여 미워한다고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그렇다면 '샘'이란 것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샘'은 남의 처지나 물건을 탐내거나,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적수를 미워함을 의미한다. 요즘 아침에 묵상하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류의 타락은 죄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이니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창세기 3장 4절-5절




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묵상하니 밑줄 그은 말을 보면, 감히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아는 판단자가 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에 여자는 더 강력한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됨을 하나님이 아시는 것. 마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약자가 어떤 계기로 인해 시대의 강자로 우뚝섬을 그 시대 최강자가 알게 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우쭐해지는 기분이 들고 마치 무언가 되는 듯한 기분의 자신감에 심장이 떨릴 것이다. 여자가 하나님과 동등해짐을 상상해 봤던 그 순간 그 감정은 어쩌면 하나님을 경외의 대상이 아닌 시기의 대상으로 느낌에 가까워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겨 선악과를 따 먹은 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있다. 도통 사랑이란 걸 할 줄 모르는 인간은 어쩜 그렇게 남을 이겨먹으려는데는 달음질을 잘 치는지 뱀의 유혹을 받은 그 짧은 순간에 여자는 하나님을 이겨 먹는 근자감에 빠지고 말았다.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죄의 본질이 어떤 것이었을까 깊이 묵상해 보니 결국, 시기심이었다.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적수를 미워함. 인간은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거나 동정이나 긍휼의 대상으로 여기지 결코, 시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인간이 갖고 있는 무수히 많은 감정들 중 특히, 흑화 된 감정 중 가장 죄의 본질에 가까운 감정이 시기였다고 본다. 하나님은 신이시고 창조주이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거늘 오만한 인간은 늘 하나님을 넘어서고자 한다. 하나님을 감히 시기의 대상으로 여긴다. 동등할 수 있는 사람 친구쯤으로 여기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가인은 아우 아벨을 죽였다. 하나님과 동등해지고 싶었던 죄인의 그 죄성을 그대로 닮아 나온 가인은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제물로 삼아 여호와께 드렸다. 여호와는 아벨의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 하지 아니하셨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열납 한 대상이 단지, 제물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 (창세기 4 장 4절-5절)이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아벨이 드린 그 제물을 기뻐하신 것이다. 가인은 여호와께서 열납 하신 아벨을 시기했다. 가인이 아벨의 제물인 양과 그 기름을 시기했을 리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소산인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웠던 과실이나 밭작물을 더 자신 있게 여겼을 것이다. 제 멋대로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한 소산을 드렸는데 왜 열납 하지 아니하셨을까 하여 가인을 측은히 여길 수도 있겠지만, 가인은 시작부터가 잘못된 제물을 드렸기 때문에 열납 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쉬이 생각할 수 있도록 예를 들면, 가령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선물은 주는 사람이 기뻐야 할까 받는 사람이 기뻐야 할까. 정답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하는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함을 안다면 자신이 아무리 농사꾼이라 해도 받으시는 분이 기뻐하시는 양을 잡았어야 했다. 내가 농사를 참 잘 지었지요라고 내세우고 싶으면 그건 이미 하나님과 동등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선 것이다.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도 직속상관 비위를 맞출 줄 아는 상명하복의 수직관계에 길들여짐에 익숙함을 잘 아는 인간은 꼭 하나님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수직관계를 수평관계로 뒤엎고 마는 하극상을 초래한다. 그리하여 가인은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자신의 분노의 대상으로 여기는 위도 아래도 없는 안하무인 격의 죄를 범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동등한 사람 친구쯤으로 여기는 하와와 꼭 같은 죄를 범하였다. 그리고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장 7절)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우를 죽였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스웠으면 그리하였을까.



그 '시기'라는 감정은 죄의 본질인 것을 증명하듯 인간사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국가대 국가의 세계 역사에 늘 등장하고 왕과 왕, 왕과 신하, 신하와 신하들 사이, 친구사이든 연인사이든, 부부사이에도 형제자매 사이에도 등장한다. 신데렐라의 미모를 시기한 계모와 언니들, 백설공주의 하얀 피부를 시기한 왕비는 귀여운 수준이다. 조선왕조 역사에는 이 '시기'라는 감정으로 피바람이 꽤나 많이 불어 여럿 충신들과 여자들 심지어 왕과 왕손의 목이 날아갔으며, 세계 역사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실로 지겹다.


내가 설거지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과 잘 놀고 있는 남편을 보면 시기가 날 때도 있고, 아이가 네 명임에도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언니를 보아도 속이 뒤틀릴 때가 있고, 잘 나가는 친구의 프로필을 보면 더욱더 정수리가 뜨거워진다. 나 자신조차도 이런 감정이 하루에 한두 번씩이라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치받쳐 오르는 게 어이없을 때도 있지만 이러한 창피스러운 감정이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느끼게 해 주어서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시기'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들여다보면 결국, 일그러진 자아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나오는 쓴 뿌리임을 깨달았을 때, 초라해지고 주눅이 든다. 그러나 이를 극복할 힘은 분명 있다.


주 예수그리스도.


별 수가 없다. 내가 이런 상황을 내 힘으로 역전시킬 수도 없고, 그러니 나는 온전히 주께 나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가 울면서 달려갈 곳이 넘어지고 또 자빠져도 갈 데가 주님 품 밖에 없다.


이러한 나를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믿을 때, 그리고 가라 하면 가는 것이고 멈추라 하면 멈추는 그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면 시기라는 죄는 반드시 다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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