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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림헌 Jul 10. 2024

 바람 세상을 구경하다

겨울바람의 세상나들이, 창작 이야기

밤사이 차가운 북풍은 숲 속에 앉아 날새기를 기다리며 

매섭게 으러릉거렸다. 기세가 산을 들어 옮기듯 하였다.


밤 동안 내내 울어대던 바람은 아침이 되자 풍선 바람 빠지듯 

기운이 빠지고 지쳐 목까지 쉬어 골골한다.


차가운 겨울의 아침이 밝았다.

떠 오르는 햇살로 연못에 엷은 물안개가 퍼진다.


숲 속에서 북쪽바람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 난다

쓱~ 숲을 한번 돌아보고, 


'오늘은 어디에 가서 재미있게 놀아 볼까하고

일단 움직이자 '일찍 일어 나는 바람이 볼거리가 많다'.


미소를 지으며 호수를 한 바퀴 돌며 

툭 쳐본다. 이런, 밤새 웅크리고 자고 있던 호수가 깜짝 놀라 깨어나며

호수에 낀 살얼음 물결이 퍼져 나가고 물안개가 걷힌다.

         

다시 들판을 가로지른다.

추수가 끝난 겨울 들판은 

착한 농부가 새들의 먹이로 남겨두었던 

들판의 알곡들도 거의 다 먹었다.

차가운 들판은 서릿발만 칼날 같다.


다시 휘돌아 마을을 돌아본다.

따뜻한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잠에서 들깬 아이가 투정을 하며 

눈을 감고 입에 든 밥알을 빨아먹고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편 출근시키는

엄마의 바쁜 마음을 모른 채,

원래 자식들이란, 아이들이란 쯧쯧


그리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예나 지금이나... 

바람이 창문을 덜컹덜컹 흔들며 호통을 친다

일어나라 일어나, 서둘러라

깜짝 놀라 모두 서두런다.

         

어디 보자 하고 다음 집을 본다.

창문에 비친 모습은 너무 따뜻하고 

아늑하다.


아기엄마가 아기를 가슴에 안고 수유를 한다.

가슴속에 파묻히 듯 안긴 아가는 

아무것도 뺏기지 않으려는 듯 

조그만 손을 꽉 쥐고 꼬물거린다.

오동통하고 귀여운 발을 동동 흔든다.

흠~편안하고 따뜻하군, 

놀라게 하지 말자, 하고 지나간다

         

바람이 휘익하고 지나가려니 

개가 짖어댄다. 우리 집에 오지 마, 가, 하며

맹렬히 짓는다. 충직한 개다.

그래 간다, 하고 바람은 지나간다.

         

이 마을은 재미없고 

도시로 가보자    


바람은 버스와 기차의 등에 올라타고 

도시로 갔다.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출근하고 등교하느라 바쁘다.

         

갑자기 바람이 장난기가 발동한다.

지나가는 행인의 옷자락을 확 나꿔 챈다.

별로 반응이 없다.


아, 예전에는 치마를 입고 다녀 

휙 치면 깜짝 놀라서 치마를 꼭 잡는데

요즈음은 전부 바지라 예전 같은 재미가 없다.


미국에 있는 친구는 그렇게 해서

마릴린 몬로라는 배우가 인기가 많았다고 하더구먼,

어쨌든 재미없다.

         

마침 모자를 쓴 행인이 지나간다.

바람이 장난을 친다.

모자를 휘익 벗긴다

모자가 떨어져 떼구루루 구른다

행인이 깜짝 놀라 모자를 주우러 간다.

아뿔싸 대머리다.

헝클어 놓을 머리카락이 없다.

괜스레 망신만 주었네

미안한 마음에 빠르게 빌딩사이에 숨는다.

         


빌딩사이를 조용히 지나간다.

빌딩사이는 저절로 바람이 강해지니까.

조심히 지나가며 불 밝혀진 창문들을 들여다본다.

기웃기웃...


바람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안을 들여다본다.

응! 모두들 바삐 일하느라 정신없는 데


요것들 봐라, 

탕비실에 모여 이야기 꽃이 활짝 피었다.

가만히 들어 보니, 지난주 데이트이야기다.

맘에 들었단다. 

아~주 좋아 죽는다.


에라이, 일해라 일, 

다른 사람들 일하잖아.

바람이 창문을 세게 흔든다.

덜컹덜컹


깜짝 놀라며 모두들 커피를 들고 빨리 나간다.

한 여직원은 커피 가지고 가는 것도 잊고 나간다.


그렇게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조용히 빌딩사이를 빠져나간다.

         


아파트들을 둘러보고.

시장으로 가서 맛있는 음식 냄새도 맡아본다.

킁킁거리며,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웃고

그렇게 재미있게 도시를 다니면서 구경하니

어느새 해가 저문다. 

'이제 나도 조용히 자러 가야지.' 생각한다.

         

그때 갑자기 따뜻한 남풍이 불어온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남풍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세상이 어지럽다고 분별없이 너까지...

영역을 침범 마라, 네가 나타나면 

태풍을 달고 와서

힘든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된다.


아직 니 때가 되지 않았으니 썩 내려가거라.

북풍이 호통을 치니 

남풍이 놀라서 내려간다.         

가면서 투덜거린다.

어차피 좀 있다 올 건데, 

일찍 왔다고 난리야. 기분 나쁘게... 

남풍이 궁시렁 거린다.


남풍이 물러나자 그제야 북풍은 모든 것이 정상이로구나 하며

오늘도 잘 지냈다, 하며 자러 간다

아마추어 이야기꾼이 만든 이야기

#겨울바람 #남풍 #세상구경 #서릿발 #여직원 #탕비실 #마리린 먼로 #대머리 

#바람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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