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모든 수술에서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그 선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너무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다가는 수술도 힘들어지고 수술 시간도 길어질 수 있습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마취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환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surgeon은 수술하면서.
예상과 다른 상황이 생기거나 응급 상황이 생긴다면.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하고.
환자의 안전과 좋은 수술 결과를 위해서 decision을 내려야 합니다.
저는 복부 CT나 다른 검사 결과를 보면서 수술하기 전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그려봅니다. 병이 심하거나 진행이 많이 되어있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방법, 차선책, 그다음 방법.. 그다음..
이런 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봅니다.
특히..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장천공, 복막염, 교통사고에 의한 복부 외상과 같은 응급상황에서는 여러 검사를 확인하면서 어떻게 수술할지 미리 준비합니다. 하지만 수술 전 미리 준비를 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실제 수술장에서 수술하다 보면 저의 예상과 다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17세 여자 환자가 복부 통증 때문에 응급실 통해서 입원했습니다.
피검사 결과 염증이 심했고 복부 CT에서 급성 충수염(맹장염)이 의심되었지만, 염증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충수 종양 가능성도 있는 환자였습니다.
보통 수술하기 전 수술 관련 설명을 할 때 대부분 복강경으로 수술이 잘 끝날수 있지만, 병이 아주 심할 경우 개복수술로 변경될 수 있다고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드립니다.
저는 수술할 때 항상 최악의 가능성까지 생각하고 메스(mes, surgeon`s knife)를 잡는데, 이것은 아마도 수술하는 모든 외과의사들은 습관처럼 하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술하다 보면 단 1%라도 예상과 다른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환자의 경우.
실제 복강경으로 수술하면서 확인해보니 심한 염증 때문에 충수(appendix)가 주변의 소장과 다른 장기에 한 덩어리(mass)처럼 붙어있어서 복강경 장비로는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행한다면 주위의 소장 및 대장, 다른 장기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고, 불필요한 추가 수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염증이 대장(colon)까지 퍼져있다면 우측대장절제술 또는 대장의 일부(cecum)만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소장까지 염증이 퍼져있다면 소장 절제술을 해야 하고.
다른 장기까지 염증이 있다면 그 수술까지 머릿속으로 계획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변수 중에서 제가 가장 크게 생각했던 문제는 복강경으로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개복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학생에게 복부에 흉터를 남겨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저를 쉽사리 결정 못 내리게 붙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은 개복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수술 후 남을 흉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계속 복강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미 감각적으로 개복수술을 해야 함을 느꼈기에.
메스를 잡고 개복 수술로 변경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복강경으로 수술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충수의 염증과 주변의 염증 덩어리가 대장, 소장과 심하게 붙어있어서
마치.. 돌덩이처럼 크게 만져졌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대장으로 연결되는 충수에 염증이 심하지 않아서 대장이나 소장 절제술 없이 충수절제술만으로 수술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수술은 잘 진행되었지만, 개복수술했던 피부의 흉터가 걱정이었습니다.
상처 봉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흉터 생기는 정도도 달라집니다.
미용, 성형 수술의 경우 흉터가 거의 없거나, 아주 미세하게 남습니다. 하지만 배속을 수술하는 외과 수술의 특성상 큰 흉터는 흔하게 생길 수 있기 때문에.
"Big incision, Great surgeon"
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강경이나 미세침습수술이라는 수술 방법이 없던 시절에는 큰 수술을 한다면 큰 상처는 당연한 것이었고, 이를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보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많이 변했고, 의료기술 및 수술 방법은 암수술도 작은 흉터만 남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보통의 외과 수술에서 개복 수술을 한다면 큰 상처를 봉합해야 하기 때문에 두꺼운 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흉터는 커지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상처가 크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신경 쓴다면 흉터를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단지. 외과의사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길고 힘들었던 수술이라면 수술하는 모든 사람이 지치게 됩니다. 모든 일이 그렇죠. 수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개복수술을 했지만, 어린 환자를 생각하면서..
저는 좀 더 힘을 냈고, 흉터를 어떻게든 줄이려고 고민했을 뿐입니다..
어린 고등학교 여학생에게는 복부의 흉터가 너무 가혹하다고 느꼈기에.
마치 성형외과 의사처럼 보다 흉터를 작게 만들기 위해 예쁘게 상처를 봉합했고.
수술 후 잘 회복해서 퇴원하는 환자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환자의 병이 심했기에..
어쩔 수 없이 개복수술을 해야 했지만..
옅어지는 흉터와
밥도 잘 먹고 잘 회복해서 퇴원한다는 보호자의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며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