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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 하프마라톤을 뛰었다(2024 아이언맨 고성)

"00아, 철인 3종 릴레이 러너로 나갈래?"

"00아, 철인 3종 릴레이 나갈래? 넌 하프(21.1km)만 뛰면 됨" 


올해 1월, 친구가 던진 한 마디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제 보니 친구가 바람을 기가 막히게 넣었다...


약 5년 전, 10km 마라톤을 뛰어본 게 전부지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큰 고민 없이 대회를 신청했다(대회는 6월이었고 남은 6개월이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유롭다는 핑계로 넘겨버린 1,2월 그리고 3월 계단에서 넘어지며 시작된 허리 통증... 그리고 4월 차량 접촉사고로 허리통증이 지속되며 치료를 받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5월이 되어 있었다. 


사실 이맘때쯤 함께 대회를 나가기로 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허리 상태가 영 안 좋은데 못 뛰면 어떻게 해?". 그리고 친구의 반응은 생각보다 간결하고 단호했다. 



“너 안 뛰면 우리 다 실격이야 걸어서라도 들어와 ㅎㅎ." 



그때부터 병원에서 주사, 도수, 약침 등 할 수 있는 치료란 치료는 다 받아가며 준비했고, 어찌어찌 달릴 수 있는 몸상태가 되었을 때쯤 대회까지는 약 2주가 남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부랴부랴 러닝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3km 다음은 8km 마지막으로 18km를 뛰었다. 18km를 뛰는 데 정확히 2시간이 걸렸고 2시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으니 하프마라톤도 완주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땐 몰랐다. 18km와 21.1km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사실을...).


아무것도 몰랐던 이때가 가장 행복했을지도..ㅎㅎ


그리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대회 당일..! (경상남도 고성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친구들과 전날 밤 미리 고성에 내려와 하루를 보낸 상태였다)


오전 6시 30분부터 수영 1.9km, 사이클 90km, 러닝 21.1km 순서로 경기가 진행되며, 앞 주자가 경기를 마치면 뒷 주자가 기록칩을 받아 정해진 코스를 완주하면 경기가 끝나게 된다. 


7시쯤, 우리 팀의 수영 주자가 경기를 시작했고 조금씩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이 없는 것도 불안했지만 제일 걱정되는 건 날씨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이렇게 더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햇볕이 강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두 번째 사이클 주자가 경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맞춰 준비를 시작했다. 사이클을 타고 빠르게 뛰어들어오는 친구를 보며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드디어 21.1km 마라톤 경기가 시작됐다.



빨간색 7km 코스를 3바퀴 돌아야 했던... 근데 심지어 언덕 ㅠㅠ 



한 바퀴당 7km인 루트를 총 3번 돌아 완주하는 코스였다. 게다가 초입부터 긴 언덕 구간이 있어서 시작부터 느꼈다. ‘아 이거 쉽지 않겠다’. 게다가 너무 더웠던 날씨와 경험해보지 못했던 보급소의 존재가 변수였다. 


더운 날씨는 체력을 평소보다 2배 이상 소모하게 만드는 기분이었고 내리쬐는 햇볕을 이겨내기 위해 보급소에 잠시 멈춰 물을 뿌리거나 물을 마시다 보니 평소보다 호흡도 훨씬 늦은 타이밍에 터졌다. 


그렇게 2바퀴를 돌고 16km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완주 못할 수도 있겠는데?'



못하겠어... 란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즈음


그리고 이어진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보자면... 



- 내가 포기하는 순간 함께 참여한 2명의 친구도 완주를 할 수 없다는 것(+ 평생 놀림감) 

- 하프 마라톤 나간다고 여기저기 떠들었는데 중도포기..? 감당 안 되는데... 

- 참가비 20만 원 그리고 내 소중한 주말까지 다 쏟아부었는데 완주는 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어떻게든 완주는 하자고 다짐한 후부터는 정말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특히, 19km부터는 양쪽 허벅지에 쥐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좀만 발을 잘못 딛거나 힘이 과하게 들어가면 걷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이때 느꼈다. 18km를 뛰는 것과 21.1km를 뛰는 건 천지차이라고 그 3km가 어찌나 길고 힘들던지...(아, 그리고 이때 어떤 분께서 뽕따 아이스크림을 주셨는데 여태 먹었던 뽕따 중에 제일 맛있었다...) 


축구 유니폼 입고 뛰는 유일한 참가자였다고 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걷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피니시 지점을 나타내는 푯말이 보였고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철인 릴레이는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앞선 주자(수영, 사이클)들과 함께 골인하며 경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드디어 골인지점 50m 지점 즈음부터 친구들과 함께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 순간이 되면 굉장히 뿌듯하고 환희에 가득 차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빨리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결승선 도착 직전, 다리에 힘이 풀려 순간 휘청이며 옆 친구를 잡으려 했는데... 응? 친구가 순식간에  내 손을 뿌리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냉정한가?’라며 서운할 뻔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골인 지점에서 러닝 주자를 부축하거나 끌면 실격되는 룰이 있었다고 한다.ㅎㅎ


초짜 데리고 뛰느라 고생했다 친구들아..!


그렇게 2시간 22분의 기록으로 하프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고, 완주 메달과 기념품을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헤롱헤롱한 상태로 대회를 마쳤다(신발 벗다가 쥐가 나서 난리 난리를 쳤다...).


그렇게 완주 후, 20여 분 동안 쓰러져있었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함께 했던 친구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사우나도 가고, 정말 꿀같았던 식사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남자 릴레이 팀 중 6위로 도착하며 나름 기분 좋은 결과까지 얻었다. 


살아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하튼 이번 철인 릴레이에 참여하면서 3가지 정도 큰 변화를 느꼈다. 


어떤 쾌감일까...


첫째, 철인 3종 완주에 대한 욕심이 슬그머니 생겼다. 수영 1.5km, 사이클 40km, 러닝 10km를 완주하는 올림픽 코스를 한 번쯤 완주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지금 상태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이번 대회에서 혼자 모든 코스를 완주하는 분들을 두 눈으로 보면서 '나도 한 번쯤은 이 코스를 완주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질러!


둘째, 역시 일단 해봐야 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경험했다. 태생적으로 겁이 많은 스타일이라 어떤 영역이든 일단 쪼는 편인데 하프 마라톤도 아마 친구가 아니었다면 평생 뛸 일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뛰고 나니 2시간 안으로 완주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좀 만 더 연습을 꾸준히 했다면 충분히 해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약간의 후회도 들었다. 


돌아보니 5개월 전 신청했던 주 2회 글쓰기 모임에서도 (마치 하프 마라톤처럼)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1개월 전 용기 내서 신청한 주 5회 글쓰기 모임에서는 매주 5회의 글을 써내고 있다. 일단 해보니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셈...(나 힘들수록 잘하는 스타일인가..?)


결국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대책 없이 저질러 놓고 “일단 해보지 뭐”라는 식인데... 사실 그때마다 참 배우는 게 많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저런 일들을 좀 많이 저지르고 수습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근묵자흑


마지막 셋째,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내 경험의 양과 질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철인 3종 경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난 평생 이런 경험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철인 3종이란 말만 들어도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해'라고 했던 사람인데... 철인 3종 올림픽 코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프를 뛰던 순간만큼은 날 여기 데려온 친구가 죽도록 미웠지만 막상 완주하고 나니 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물론.. 표현하지는 않았다...). 



힘들었지만 매우 뿌듯했던...


이번 하프 마라톤 경험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내 안에 작은 뭔가를 건드렸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ㅋㅋㅋㅋ 과연 나는 철인 3종에 발을 담게 될까? ㅎㅎ... 나 조차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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