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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g Sep 11. 2024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선물하는 작은 책

아버지의 유작

한동안 꺼내보지 못하던 아버지의 책을 꺼내 보았다.

아버지의 책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한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가 작가는 아니시다.


생전 새벽마다 라디오를 들으시고 좋은 구절은 종이에 끄적이며 적으시기도 하고 나름 시 같은 것도 적어 놓으셨던 아버진 어느 날 할아버지를 뵈러 간 손녀(나의 큰딸)에게 적어놓으신 노트를 보여 주셨다.

리액션이 좋은 큰 딸아이는 할아버지의 글솜씨가 좋다며 폭풍칭찬을 하며 할아버지 어깨를 한껏 솟아오르게 해 드렸다.

내친김에 할아버지 책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노트를 갖고 와서 할아버지 사진, 가족사진들을 편집해서 할아버지 자필 시를 넣은 책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선물로 나눠 줄 수 있도록 가져다 드렸다.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실 줄 상상도 못 했는데 너무 많이 좋아하셨다.

"ㅇㅇ가 내 책을 만들어 왔다!"

그 책을 보고 또 보고 쓰다듬으며 좋아하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손녀딸이 생각한 것을 딸인 나는 왜 생각 못했지?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으시며 부모님도 일찍 여의고 큰 형님 댁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청소년기를 보내셨다고 한다.

한 살 차이 나는 장손 큰 조카는 대학도 다니고 선생님이 되었는데 아버진 중학교도 못 마치셨다.

큰 형님 댁에서 형수 눈칫밥 먹고살기 바빠 동네 품앗이 일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내시고 서울로 상경하셔서 힘겨운 서울살이를 버텨내셨다.


마음껏 하지 못한 공부에 대한 아쉬움에 그저 끄적끄적 적으셨었는지 아버지의 노트엔 속담, 외우고 계신 시, 라디오 들으며 적은 얘기, 자필 시 등이 두서없이 적혀 있었다.


우리 4남매에게 아버지는 무서운 아버지였다.

그렇게 무서웠던 아버지가 이렇게 감성적인 분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예쁜 시도 있었다.


좋은 시절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공부하시고 자라셨다면 멋진 시인이 되셨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 생전에 좀 더 다정한 부녀사이여서 아버지의 이런 글솜씨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좋아하시던 아버지 자작시 책을 두 편, 세 편 더 만들어 드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들과 아버지 얘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무심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보다가 아버지의 병상 모습이나 사진이 나오면 왈칵 눈물이 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애써 외면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 모신 공원묘원 앞을 지날 때면 차 창문을 내리고 "아빠! 잘 계시죠? 저 엄마 보러 왔어요!" 하고 외치며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살아계실 뵙지 못하고 잘하지 못한 후회가 남아 엄마는 더 찾아뵈려고 하고 더 잘해야지 다짐을 한다.


병상에서 고생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사진조차 볼 수 없었던 슬픈 마음이 이제 그리움이 되어 책꽂이에 꽂혀 있던 아버지 유일한 유작. 가족들에게 주고 가신 작은 선물을 오랜만에 꺼내어 아버지 웃음, 글씨체, 시, 사진을 보며 추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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