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고3 시절, 야간 학습 마치고 학교 정문 언덕길을 내려오던 때부터였을 것이다.
앞은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살짝 눈을 감고, 숨을 저 깊이까지 들이마시면
잔잔한 풀 내음과 차가운 공기가 한 데 어우러져 내 마음을 건드려주는 느낌이다.
왠지 한참 서서 그 내음을 만끽하다 보면, 나 홀로 어딘가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그 내음에 취해,
이상해 보이리 만큼 킁킁거리며 그 공기를 들이마셨던 건,
잠시라도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 둘을 키우고 살아오며, 그런 기억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빨래를 하려고 다용도실에 들어갔을 때,
열려 있던 작은 창문 틈으로 그때 그 내음이 내 코 끝을 스쳤다.
순간, 구부린 채로 빨래더미를 뒤지다, 번쩍 일어나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내음이, 나의 학창 시절을 불러내고, 그 시절을 그리워 하게 했다..
그때는 공부만 마치면 뭐든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되어, 또 엄마가 되어 보니
세상에 힘든 일들로 가득했다.
친구들끼리 깔깔거리며 학창 시절을 보내던 때가
내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다는 것을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밤 내음을 찾는다.
그 향기를 실컷 들이마시며 잠시라도 내 추억 속에 머물기를,
나만의 도피처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