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uyễn Thị Lan
그녀의 이름은 응우옌 티 란(Nguyễn Thị Lan)이다.
란은 다섯 남매 중 첫째 딸이다. 베트남의 유명도시 외곽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를 돕는 든든한 맏이로 살았다. 그녀가 중학교를 마칠 무렵 열 살밖에 안된 남동생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혼미한 의식만 있고 겨우 머리만 흔들 수 있는 동생을 병원에 오래 두지 못해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란의 부모는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일으키고 있었다. 란은 진학도 미루며 닥치는 대로 일을 구했다. 하지만 온 식구가 악착같이 매달려도 빚은 조금씩 늘어갔고 지친 란의 부모는 절망하며 아픈 동생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마을에는 가끔씩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란처럼 어린 처녀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들은 주로 흰색 셔츠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맨들맨들한 얼굴로 웃으며 말을 걸었지만, 가끔은 관광지에서나 살 수 있는 화려한 꽃무늬 프린팅 티셔츠에 명품 선글라스 그리고 쇠고랑 같은 금팔찌나 큼지막한 금반지를 끼고 오는 남자들도 있었다.
란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돈을 더 받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운이 좋아 사람을 잘 만나면 아픈 동생도 치료하고 똑똑한 막내는 대학에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망설여지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란은 열여덟 살이었다. 하지만 하필 그때 모여든 처녀들은 다들 고만고만한 나이라서 란이 특별해 보일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들 중 몇몇은 길게자란 옥수숫대처럼 가느다란 몸매와 아보카도만 한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키와 통통한 볼살을 가진 튼튼한 란은 한국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들과의 나이차이가 란이 살아온 시간보다 몇 년씩 더 길었어도 말이다.
버티다 버티다 어렵게 결심한 한국행이 란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끌어내렸을 때 그가 나타났다. 나이는 서른일곱이라고 했고 직업은 전기설비전문가라고 했다. 키는 란보다 한 뼘쯤 컸지만 큰 키라고 할 순 없었고 어쩐 일인지 그의 피부는 란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검었다. 그의 눈은 한때 그녀가 키우던 물소처럼 크고 깊었는데 란은 그 눈이 참 맘에 들었다. 그는 잘 웃지 않았지만 그녀가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맞추려 했고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의 신혼집에 가서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란은 최소한 자신이 불행하게 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란은 첫아들을 스무 살에 낳았다. 2년 뒤에는 딸도 낳았다. 스물두 살 란의 삶은 그녀가 지나온 어떤 시간보다 안전하고 행복했다. 조용한 남편은 늘 말이 없었지만 결혼 전 약속한 금액을 란의 집으로 송금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다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이 술을 마시는 날도 많아졌다. 란은 차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턴가 남편은 일정하지 않은 퇴근을 하며 항상 소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는 란이 정성껏 차린 음식보다 술을 먼저 찾았고 어떤 날은 술 밖에 먹지 않았다.
남편은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모든 흥미를 잃은 사람 같았다. 불안해진 란은 그의 건강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만들고, 베트남에 있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차와 약재를 조달받아가며 남편에게 먹이려고 했다. 그녀의 성가신 노력에 그는 화도 내지 않았지만 협조도 하지 않았다. 란은 이상하게도 그런 남편에게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알 순 없지만 남편의 닿을 수 없는 슬픔이 무겁게 느껴져 그를 바라보는 란의 마음도 그저 애처롭기만 했다.
란의 아들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남편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는 그렇게 약해지고 있었다.
란의 가족은 남편의 고향마을에 살았다. 지방의 작은 어촌이었다. 남편은 집을 짓는 목수 친구의 일을 도맡아 하며 매일같이 시내로 전기설비일을 나갔다. 그 친구는 남편을 값싼 외부인력처럼 수시로 부리며 자그마한 건설사무실을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명의 직원과 란의 남편까지 직원으로 부리는 중소업체의 사장이 되었다. 벌거벗고 온 동네를 누비던 동네 친구를 사장이라 부르게 되자 남편은 그 친구를 사석에서 만나는 일도 꺼리게 되었다. 동창들이 모여들어 술판이라도 벌이면 시답잖은 농담에도 란의 남편은 불에 데인 나일론처럼 비참하게 쪼그라드는 마음의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잦은 병치레를 이유로 남편이 쉬는 날이 많아지자 결국 회사는 퇴직을 권유했다. 얼마간의 퇴직금을 받고 일을 접은 남편은 더 이상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란이 베트남의 가족들에게 보내야 할 돈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술을 찾을 때 말고는 란이나 아이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술이 아니면 말을 못 하는 사람 같았다. 그는 란이 사랑했던 깊은 동공의 초점도 점점 잃어갔다.
어머니는 말이 서툴고 아버지는 말을 하지 않으니 란의 아이들은 또래들보다 언어발달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웃에 사는 시어머니는 아들의 술을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엄마를 닮아 아이들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바보들 같다며 시도 때도 없이 란을 면박주곤했다. 남편의 가족들은 남편과 많이 달랐다. 뭐든 잘 못하기를 기다리다 틈만 보이면 달려드는 사나운 개떼 같았다. 그러나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란은 무너진 남편을 챙겨가며 평생 한국인으로 살아야 할 아이들을 위해 악착같이 한국어를 공부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란의 한국어는 거의 완벽했다. 아이들의 발달에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란은 일도 다녔다. 처음엔 동네의 허드렛일을 했지만 말과 글이 트이자 시내로 나가 고급음식점에 취직을 했다. 힘들었지만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게 되자 가슴아래서부터 뭔가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란의 성실함을 극찬하는 사장이 차별 없는 급여를 지급해 주었을 때 란은 베트남을 떠나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란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베트남의 가족들을 도울 수 있었고 풍족하지 않아도 한국의 가족들까지 부양할 수 있었다.
란은 남편을 잊지 않았다. 출근 시간이 넉넉한 대신 퇴근이 늦었기에 란은 출근 전 오전 시간을 가족들을 위해 썼다. 먹는 날보다 먹지 않은 날이 더 많아도 한결같이 맑은 채소국과 쌀밥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총각김치와 계란말이를 식탁에 차려두었다. 깨끗하게 씻긴 아이들에게는 전날 식당에서 얻어온 베트남식 고기수프와 빵을 먹였다. 아들은 학교와 태권도장을 거쳐오고, 딸은 하원시간에 맞춰 오는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렸다가 시어머니가 데려다주었다. 시어머니는 이따금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과자와 빵을 싹 다 쓸어가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란의 얇은 지갑을 털어가곤 했지만 란은 불평하지 못했다. 스물여덟의 란은 그렇게 참는데 능숙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란의 남편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어릴 적 친구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 중에는 남편처럼 한 동네에 살면서 베트남여성을 아내로 둔 남자가 둘이나 더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비슷한 동향인 여자 셋이 만나 절친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남편이 어떤가에 따라 사뭇 달랐다.
한 친구는 남편이 모든 걸 거의 다했다. 집안일, 육아, 요리 그리고 돈도 열심히 벌어다 주었다. 남편은 그녀를 예쁜 인형처럼 무척 아꼈다. 그 친구는 온종일 빈둥거리며 휴대폰을 보거나 고향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예쁘게 자신을 꾸미는 일 등의 취미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동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에 남편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녀는 시내도 나가지 못했다.
다른 친구는 몹시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키도 컸고 나이도 란보다 두 살이나 어렸다. 그녀의 남편은 란만큼 작았고 몸집은 두 배쯤 컸으며 란의 남편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다 똥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허구한 날 허풍을 떨고 다녔지만 돈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었다. 대신 집안일도 육아도 요리도 일절 하지 않으며 수시로 잠자리를 요구하면서 틈틈이 바람까지 피웠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란은 술만 아니면 자신의 남편이 정말 좋은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란의 남편을 부러워하진 않았다. 란이 듣거나 말거나 그녀의 남편을 가족에게 무심한 무능력자, 알콜중독자, 아내에게 들러붙은 기생충, 사기꾼이라며 소리 높여 비난했다.
정작 그녀들의 남편들은 집 밖을 나서지 않은 란의 남편을 한 번씩 찾아와 란은 정말 부지런하고 똑똑하다며 볼멘소리를 하다 가곤 했다. 의욕을 잃은 친구를 독려하겠다는 핑계로 시작해 신세한탄을 하는가 싶더니 취기가 오르자 서로의 아내들을 경제적 가치로 계산하는 치졸함을 드러내며 란과 그녀의 남편을 은근히 모욕했다. 두 아이와 병든 남편을 쓴소리 한번 없이 묵묵히 부양하는, 비용대비 열 배는 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짱짱하고 야무진 스물여덟의 아내. 그것이 그들의 눈에 비친 란이었다.
란의 딸이 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 남편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이미 폐와 위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다. 병원에서는 수술과 더불어서 집중치료를 해보자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집으로 가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딱 두 달. 란이 아무리 울부짖으며 뜯어말려도 그는 마지막까지 원 없이 술을 들이부으며 병든 자신을 죽이고 말았다.
남편을 잃은 란은 한동안 정신줄을 놓았다.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주변엔 온통 한국 사람들뿐이었고 그들 사이에서 란은 공중에 떠있는 섬 이된 기분이었다.
란의 시어머니와 남편의 남동생이 나서서 장례를 주도했다. 그들은 부의금도 모두 챙겨갔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란의 가족이 사는 집에 시어머니가 불쑥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내심 란이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나주길 바랐지만 주인을 잃은 개처럼 버티고 있어 골치가 아팠다. 란과 아이들이 사는 집을 섣부르게 처분할 수가 없어서였다.
란이 정말 참기 힘든 것은 무례한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별것도 아닌 것들. 시어머니 입에서는 아이들의 이름보다 그 말을 듣기가 더 쉬웠다. 란은 죽어버린 남편을 숨 쉬듯 원망했다. 그러면서 매일 자신도 조금씩 죽어가는 것 같았다.
란의 부모는 그만하면 됐으니 아이들만 데리고 돌아오라고 눈물로 설득하고 있었다. 란의 희생 덕분에 아팠던 동생은 병원에서 편히 눈을 감았고, 남은 동생들은 착실하게 학업을 이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란은 모든 것이 조금씩 모자라보였다. 란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베트남의 가족살림도 충분히 펴지 못한 것 같았다.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돈이던 기술이던 뭔가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란은 좀 더, 더 많이 노력해야만 했다. 란은 마음을 잡고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란은 일을 놓지 않았다. 싫건 좋건 시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일할 시간과 기술을 배울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란은 시어머니의 과격한 불평과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미용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미용사자격증을 따고 시내로는 미용보조일을 나갔고, 주말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머리를 말아주며 쏠쏠하게 푼돈을 모았다. 여러 미용실을 옮겨 다니며 스타일링을 끌어내는 기술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성공 노하우와 실패의 원인을 학습할 수 있었다. 껍질을 벗은 갑각류가 그런 것처럼 란은 가장 위험한 순간을 지나 더 크고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란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준비를 마친 란은 아이들에게 베트남으로 가보자고 말했다. 할머니가 무섭고 학교에 적응이 쉽지 않았던 아이들은 흔쾌하게 엄마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을 떠났다.
란은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란은 하노이로 아이들을 데리로 들어갔다. 서른셋의 란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지나온 시간을 통해 이미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는 단단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불행은 그저 버티기만 해서는 넘을 수 없다. 버티면서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지키고 싶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마흔 살의 란이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