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그녀 이야기

by 레들민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하긴 함께 사는 동안 그만큼 사랑했으면 과거 따위는 몰라도 될 것이다. 그가 아는 아내가 곱게 웃는 영정의 사진처럼 신앙심이 깊고 하나뿐인 아들과 남편을 목숨처럼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을 성실과 억척으로 개척한 커리어 우먼이라면 그렇게 기억되는 것이 맞다. 사실 교회는 결과주의적이니까 그녀가 걸어온 걸음이 아무리 거칠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매일 죄를 씻어냈다면 그녀의 영혼은 당연히 구원도 받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가 지옥으로 떨어졌길 바란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것들의 제약이 많았던 그녀는 큰 키와 단단한 체격 그리고 약한 사람을 이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지고 싶은 것들을 가지려 했다. 그녀의 부모도 남동생들도 한평생 그녀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조바심을 내며 그녀의 비위를 맞추며 살았다. 그녀의 가족이라면 특히 그녀에게 복종해야 했다. 일반적으로는 아버지가 가장이자 기둥이었지만 그녀는 육상부에 들어간 초등학교시절부터 벌써 집안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신앙은 새로 생긴 교회의 여름 성경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생 언니와 오빠들이 나누어주는 빵과 우유 그리고 과자를 맛본 그녀는 곧바로 동생들을 데리고 교회를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농사일에 바쁜 부모도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공격적인 활동을 하면서 교회가 주는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렸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단 한 번도 헌금을 내지 않았다.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래도 된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그때 알았다. 그녀가 가족들의 왕이며 그녀만 따라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도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서는 육상을 했지만 체중이 불어 중학교에서는 핸드볼을 했다. 체육특기생으로 명문사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나 다름없었다. 시골 구석에서 자란 가난한 소녀가 명문고에 돈 한 푼 안 들이고 진학한다는 것은 당시로 보면 흔치 않은 일이긴 했다. 하지만 등교시간만 두 시간 반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학교 근처에 작은 하숙방도 얻어줄 수 없을 만큼 가난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녀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사춘기가 있었다. 방황하는 그녀는 이미 고2시절부터 집에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가족들에겐 친구네서 잤다가 등교한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잠까지 재워줄 만한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녀는 교회도 시내의 연고가 없는 큰 교회로 수시로 옮겨 다녔다. 대부분은 거기서 만난 착한 남학생들과 어울렸다. 가끔은 교회오빠도 만나고 다녔다. 그녀는 그들을 이용해 밥을 먹었고, 용돈을 빌려 썼고, 잠자리를 해결했다.

운동은 뒷전이었다. 결국 고3이 되자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체육특기생으로 대학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대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일탈했다. 일부러 친구의 남자친구를 유혹해 잠자리를 갖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그 와중에도 학교를 결석한 적은 없었다. 주일예배를 거른 적도 없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과감하게 결혼을 선택했다. 말이 결혼이지 사실은 그냥 동거였다. 그래도 그녀는 졸업 후 만나는 동창들마다 붙잡고 자기가 결혼을 했다고 떠들었다. 동갑내기 남편은 신앙심이 깊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이었는데 고등학교시절 잘생기기로 주변에 입소문이 자자한 남학생이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오래 혼자 살면서 부지런히 땅을 사들여 남편의 고향마을에서는 땅부자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도 대학에는 흥미가 없다면서 진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졸업하자마자 어머니의 땅을 반절이나 팔아서 무슨 잡지사 같은 것을 인수하고 사장놀이를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절대로 망할 일이 없는 유망한 사업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처가에도 큰 손이었는데 그가 한 번씩 아내와 처가를 방문하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나올 정도였다. 그는 인물 좋고 자상하고 돈 잘 쓰는 앳된 사위였다.






그녀는 스무 살이 지나자마자 아들을 낳았다. 아빠를 닮아 예쁜 아들이었다. 그녀는 잘생긴 남편과 예쁘게 옷을 입힌 아들을 데리고 친정나들이 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동생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잔뜩 싸들고 아버지에게 찔러드릴 용돈을 챙겨가면서 그녀는 이미 성공한 것 같았다. 그때 그들은 너무 어렸고 허세에 절어있었고 철이 없었다.


아들이 세 살쯤 되었을 때 남편은 그들의 사업이 전혀 현실성이 없는 사기에 불과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아내에게 사업이 망했고, 어머니에게 남아있는 땅이 하나도 없으며, 심지어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쓰러지셨다며 울면서 고백했다.

그녀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망한다는 것은 그녀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남편은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가 짓던 농사를 지으며 살자고 떼를 썼다. 불에 데인 트라우마로 세상이 무서워 버린 겁쟁이 같았다.

그녀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하는 남편을 매몰차게 떼어내고 그 즉시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던 그들은 사실혼 관계로 살았던 터라 아직 아이의 호적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반드시 성공해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그런 다음에 혼인신고를 하겠노라고 진작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꿈을 이루어줄 남자가 무너지자 그녀는 아들만 안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남편은 수도 없이 처가를 찾았다. 울면서 매달리기도 하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지만 그 끝은 언제나 그가 경찰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동네사람들이 구경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양육만이라도 간절하게 원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현실적인 여러 사정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호적에 없는 아들을 그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가 생계를 위해 처음 가진 직업은 보험설계사였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다녀도 그녀가 바라는 만큼의 수입이 도무지 어려웠다. 그러다가 요령을 익히게 되었다.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이 가진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중년의 사내들과 어울렸다. 그들은 알만한 법인 회사의 부장 혹은 차장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갖가지 구차한 이유로 젊은 여성과의 만남에 적극적으로 나설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팔 벗고 나서주면 계약의 성사는 최소 몇 건에서 몇십 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 하룻밤 비위를 맞추고 신나게 놀아주면 한두 건씩 실적이 쌓였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보험왕이 되어 회사에서 나오는 그랜저를 선물로 받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개미처럼 일하는 팀원들이 있어 주머니가 채워지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싶었다. 어쩌면 회사 설립이래 가장 어린 팀장이라는 영예를 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길을 걷다 고교시절 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옆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성이 서 있었다. 옅은 톤이 비슷한 그들은 잘 어울렸고 밋밋하지만 세련된 액자에 맞춰 그려진 단정한 그림 같았다. 어디선가 싱싱한 오이향이 나는 듯도 했다. 반가웠지만 어색한 인사를 하며 그들이 그녀를 지나쳐갈 때 그녀는 그들 너머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보았다.

스물다섯도 되지 않은 한 여성이 마흔 살은 되어 보이는 중년여성을 지나가고 있었다. 중년의 여성은 지난 저녁의 피로를 뒤집어쓴 채 빨강 혹은 초록 같은 원색으로 시들어가는 청춘을 칭칭 감고 서 있었다. 수수한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지나가는 친구에 비해 흔들린 콜라에서 부글부글 끓어 나온 거품 같은 머리꼴이라니. 부끄러운 그녀는 거울 속 여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보험을 파는 거냐... 몸을 파는 거냐...'






그녀는 아들을 부모에게 맡겼다. 그리고 최소한의 비용만 챙겨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며 도시로 상경하지만 실제로 꿈을 이루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꿈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노력도 희생도 인내도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그녀는 타고난 체력과 선수 시절에 익힌 끈기로 20대의 후반부를 불태웠다. 작은 인쇄소에 겨우 취직해 본인의 생계를 꾸리면서 방송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인쇄소를 찾아오는 거래처 사장들을 꾀어 정보를 수집하며 좀 더 나은 곳으로 환승이직을 밥먹듯이 했다. 그러다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직원이 다섯 명인 무역사무소에 입사했다. 신입직원 치고는 나이가 많았지만 서울의 가로수만큼이나 많았던 작은 무역사무소에 들어가려는 직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성장했다.


작은 무역회사는 그냥 작은 곳이 아니었다. 베테랑인 사장이 일의 텐션을 잡고 소수의 인원으로 동남아를 주름잡는 짱짱한 회사였다. 크기에 비해 업무량도 많았지만 매출도 컸고 그만큼 일의 능력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는 게 없어 어리버리한 그녀는 초반 몇 년 동안 정말 혼이 많이 났다. 말로 못할 무시와 멸시도 견뎌야 했다. 사장은 그녀가 작성한 서류뭉치를 눈앞에서 벅벅 찢어버리기도 했다. 다만 그런 것들은 자신의 부족함의 결과라고 받아들인 그녀는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회사 근처에서 6시에 시작하는 영어학원 수업을 들었다. 8시가 조금 지나면 회사로 들어가 간단한 청소와 정리를 미리해 놓았다. 그래야 누군가는 그녀의 필요성을 느낄 것 같았다. 회사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항상 밝게 웃었다. 성격 좋고 열심히 하지만 일의 능력은 한참 떨어지는 그녀를 사장은 늘 해고라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떨려나가지 않기 위해 퇴근 후 8시 영어학원 강의도 들었다.

좀처럼 늘지 않던 영어가 아침저녁으로 2년 반을 들었더니 어느 날 갑자기 들리기 시작했다. 공부 머리라곤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려던 차였다. 그녀는 스프링을 밟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높이 날았다. 그동안 그녀를 무시하던 나이 어린 직원들을 총알 같은 속도로 따라잡았다. 그들보다 경험은 차고 넘쳤고 기회를 보는 눈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타고난 승부욕 그리고 성공을 향한 식지 않은 야망이 있는 그녀를 앞지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에는 이미 스무 명이 넘는 직원이 있었고 그녀의 자리는 대리라는 직함의 명함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쇼윈도의 몰골을 확인한 후 어느덧 10년이 지나있었다.


회사는 그녀에게 설립계획이 있는 베트남 현지사무소의 관리를 권유했다. 일이라면 개인의 사정을 미루고서라도 해내는 그녀였기에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녀야말로 믿을만한 직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생각했다. 지난 10년간 몇 번 보지도 못한 아들이 문득 보고 싶었다. 또 얼마나 자라 있을지 어떻게 달라졌을지 희미한 사진이 아니라 직접 보고 만지고 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해외사무소의 일은 성공의 마지막 문턱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리가 되더라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았다. 그녀는 일을 선택했다.






베트남에서 일을 시작하고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엔 거래처 관리자였지만 그녀의 회사가 그의 회사와 공장을 합병하면서 한솥밥을 먹는 처지가 되었다. 해외사무소를 병합하고 현지 법인이 된 후 그는 그녀의 상사가 되었다. 사장은 그녀에게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하노이의 여유로운 일상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리고 사랑에도 빠져있었다. 회사가 그를 상사로 앉힌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에겐 하노이에서 더 오래 일한 경험이 있었고 나이도 많았다. 게다가 합병 전 그의 직함은 대표에 준하는 이사였다. 그는 적지 않은 회사 지분을 보유한 사람이었다.


만혼인 만큼 그들은 베트남에서 가족들만 불러놓고 조용한 예식을 치렀다. 그들은 적어도 서른일곱인 신부와 마흔 하나가 된 신랑에게 특별한 사연이 없기가 어렵다는 정도의 이해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들추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결혼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녀의 아들은 그녀가 방황을 시작하던 열여덟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조용한 성격이라 그녀의 부모는 아들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항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결혼식에 온 아들도 다르지 않았다.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관광을 나가면 관광을 하고 식사를 하면 식사를 했다. 모두가 웃으면 같이 웃었다. 시간이 주는 어색함으로 그녀와 눈을 맞추는 것은 어려웠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아빠를 닮아 잘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빠보다 훨씬 작았다. 그녀도 아들의 아버지도 비교적 큰 키를 가진 사람들인데 아들은 키가 크지 않았다. 아들의 왜소한 몸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의 몸 안에 자라고 있는 또 다른 남편의 아이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다시 아들을 낳았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다시 얻은 아들은 사랑스러운 한 가족으로 베트남 하노이에 살았다. 그녀는 일을 쉬며 늦게 낳은 아들의 엄마로 살았다. 특히 남편이 그러기를 바랐다. 그녀가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남편이 운영하는 해외자회사는 잘 돌아갔고 남편이 건네주는 생활비는 많은 일상을 풍요롭게 할 만큼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녀는 하노이에서 수영장이 있는 고급 주택에 가정관리사와 정원관리사를 두고 살았다. 피로를 풀고 싶을 때마다 마사지사를 부르거나 기사를 불러 호안끼엠의 유명한 발마사지샵에 예약 없이 방문할 수도 있었고, 우울한 날엔 서호(West Lake)로 가서 일몰을 바라보거나 레트리버를 데리고 관광객들이 없는 길을 따라 조용한 산책을 즐길 수도 있었다. 아들은 가정관리사를 통해 어려서부터 영어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하노이의 부호 자제들만 다닌다는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될 것이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한국에 다녀올 수도 있었다.


성공했니? 그녀는 문득 성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대한 커리어를 쌓았다는 것, 한계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것, 돈의 힘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성공이라면 그녀는 성공의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재벌가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성공한 삶이라고 했던 것일까? 그럼 그녀의 아들은, 그녀의 첫아들은 성공의 울타리 밖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데 성공한 엄마라는 사람이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자신이 버려둔 아들이 모래알처럼 씹히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모멸을 견디고 어떤 안락한 생활을 누렸던지간에 그녀에게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숨어 있었다. 기억하는 한 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마음이 늘어진 기지개를 켜듯 활짝 펴진 적이 없었다. 몰아치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정작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날들은 어쩌면 저 농밀한 고통 속에 녹아있는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파 선택한 철없는 동거, 어린 남편이 흔들릴까 봐 서둘러 낳은 아들, 함께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매정하게 버린 순진한 남편, 망가진 자신을 지우려고 대도시로 숨어버린 이기심, 죽도록 노력해서 얻은 졸업장, 피로와 과로로 기절하듯 잠들었던 2호선... 그 시간 속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착한 아들이 박혀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보석처럼 때론 결코 뺄 수 없는 대못처럼.






그녀를 큰 누나라고 불렀다. 외조모를 아버지와 엄마라고 불렀다.

어렸을 적 동네 사람들은 등뒤에서 수도 없이 수군거렸다.

'쟤야, 쟤'

'쟤가 걔야?'

'쟤가 걔구나'

'쟨 아직 모르지?'

'많이 컸네'

'아빠 많이 닮았네'

그는 마치 귀신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불안에 시달렸다. 제대로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악몽을 꾸는 일도 잦았다. 하는 수없이 가족들은 그를 데리고 살던 동네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큰 누나는 일 년이면 한두 번 어떨 땐 아예 보지도 못하고 해를 넘기는 일도 있었다. 큰 형과 작은 형은 두 살 터울이지만 그는 작은 형과도 열다섯 살이나 차이가 났다. 형들은 늘 정신없이 바빴고 필요할 때마다 항상 너무 멀리 있었다.

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아빠라는 호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늦둥이라도 말이다. 아버지는 귀가 얇은 사람이라 나이가 들면서 시시콜콜한 사기를 더 자주 당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큰누나에게 연락을 했고, 누나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호되게 야단을 맞은 아이처럼 풀이 죽어있곤 했다. 그 와중에 그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생트집을 잡아 회초리를 들었다. 엄마는 상처가 난 자리에 연고를 찾아 발라주긴 했지만 아버지를 말리진 않았다.

머리가 희끗한 엄마는 아무리 비싸도 형들을 위해선 망설이지 않고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어려서 비싼 옷이나 신발이 아깝다고 말했다. 이따금 온 가족이 모여 식사라도 하는 날이면 아버지와 형들의 국그릇에는 야들한 고기가 빈틈없이 들어있었고 엄마와 그의 국그릇에는 기름이 붙은 고기가 둥둥 떠다녔다. 그러면 잘못된 배열을 바로잡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은 형이 그의 국그릇과 자기의 국그릇을 바꿔놓았다.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생이던 어느 날 그는 아이리버 MP3를 사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어김없이 엄마는 비싸서 안된다고 말했다. 나중에 큰누나가 오거든 말을 해보라고 했다. 늘 그런 식이 었다. 큰누나가 아니면 엄마는 그가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사주는 일이 없었다.


"큰 누나, 큰 누나, 도대체 큰 누나가 뭐냔 말이야. 오지도 않는 누나를 왜 맨날 다들 기다리는 거야! 나는 왜, 왜 뭐든지 큰누나가 오기만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골이난 그가 식탁에 올려진 물컵을 거칠게 쳐냈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도 어딘가로 뛰쳐나갔다. 그때도 늦은 밤이 되어 그를 찾은 것은 작은 형이었다. 온 동네를 뒤지다가 창고로 쓰다 버린 빈 집에서 유기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잠든 그를 찾아냈다. 형은 또래보다 작고 가벼웠던 그를 훌쩍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지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주며 형은 다음 주말에 MP3를 사다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작은 형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큰 누나는 베트남에서 결혼했다. 가족들은 일주일이나 되는 일정으로 전부 다 베트남으로 몰려갔다. 처음 타보는 국제선 비행기였다. 하노이는 습하고 더운 날씨였지만 모두들 즐거워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큰누나는 그의 기억보다 작고 가냘팠다. 그는 항상 누나가 키 큰 팽나무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도 엄마도 형들마저도 노상 '큰누나 덕분에'란 말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누나는 무척 예뻤다. 누나가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으면 그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매형의 가족들은 누나와 그가 웃는 모습이 너무 똑같다며 놀라워했다. 그도 누나의 웃는 모습에서 자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항상 멀리 있었지만 항상 가까이 있었던 사람 같아서 더 좋았다.


큰누나는 적지 않은 나이에 조카를 낳고 힘들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엄마가 베트남으로 여러 번 간병차 다녀왔을 정도였다. 엄마는 큰누나가 대저택에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 같아도 볼 때마다 점점 더 외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갈수록 체중이 줄어서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때 그는 플루트전공으로 음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가끔 연주곡을 녹음해서 누나의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그러면 누나는 엄지 척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매일매일 그가 보낸 연주곡을 듣고 있으며 매일매일 그가 보고 싶다고 쓰기도 했다.


조카가 국제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누나는 위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수술과 항암치료까지 받은 누나는 끝내 친정과 시댁 어느 가족에게도 입원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몇 달 동안이나 혼자 요양시설에 머물면서 항암을 했다. 다행히 치료결과가 좋아 2차 항암은 추적검사를 통해 경과를 살피며 시행하기로 하고, 누나는 일단 처방받은 항암제를 가지고 하노이의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그는 그저 누나가 서울 방문이 잦은 줄로 알았다. 한 번쯤 고향의 가족들을 보러 올 만도 한데 며칠 만에 부득이 하노이로 돌아가버리는 것이 서운하긴 했지만 그게 누나의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게다가 그 시기엔 그도 바빴다. 군필이다 졸업이다 대학원이다 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즈음 누나가 SNS를 시작했기 때문에 다 좋아 보이는 사진뿐이긴 해도 그녀의 근황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누나의 사진은 주로 하노이의 한가로운 일상을 담고 있었다. 너른 호수의 경치, 얼굴을 다 가리는 짙은 선글라스를 쓴 채 환하게 웃는 셀카, 물에 발을 담근 사진, 개구쟁이 조카가 귀엽게 까부는 모습, 매형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순간, 마당에 핀 커다란 꽃들, 하늘 높이 떠있는 비행기 같은 것들이었다.






결국 누나는 암을 이기지 못했다. 조마조마한 시간들을 보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빠진 누나는 급하게 서울의 병원으로 돌아왔지만 입원한 지 2주 만에 삶을 마감했다. 마흔 여덟. 그는 스물아홉. 조카가 열 두살이었다.


누나는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가족들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기억에 남은 큰 누나의 마지막은 죽은 나무처럼 마르고 말할 기운조차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마치 잘못된 마법을 부리다 어느 날 갑자기 늙어버린 지친 마녀 같았다.


누나의 장례를 치르기 전 작은형이 그를 불렀다. 형의 곁에는 그치지 않는 눈물을 닦는 엄마가 있었다. 형은 그에게 너무 늦은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죽음직전까지도 그에게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길 원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조카를 속여온 삼촌은 차마 끝까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누나, 아니 어머니 아니 큰누나 아무튼 그녀의 죽음이 슬퍼야 할 시간에 큰 혼란을 맞아야 했다. 이미 어린 시절은 지났지만 그렇다고 폭풍이 산들바람으로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필름이 넘어가는 찰칵 소리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지난 일들이 휙휙 지나갔다. 불안한 속삭임들, 아버지의 회초리, 엄마의 오락가락하던 사랑, 큰형의 거리감, 작은 형의 지나친 보살핌, 조카에게 느꼈던 묘한 질투 그리고 그녀의 미소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볼 때마다 과하게 건네던 용돈 하며...

그는 늘 자신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며 사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존재가 가족들에겐 긴 터널이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터널 속에 그들은 어쩌면 작은 가로등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삶 속에 그는 무엇이었을까. 거북한 껍질을 씌운 채 품어야 하는 손자 혹은 조카?

'결국 엄마가 날 버린 거였어?'


그는 어딘가로 가서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장례식장을 뛰쳐나온 그는 미친 듯이 뛰었다. 뛰다 걷다 다시 뛰다 걸었다. 그가 달려 나온 도시는 머리가 어지럽게 빛나고 있었고 그는 어느덧 한강의 다리 위에 서 있었다. 그는 김씨가 아니었다. 그는 낳아준 아버지의 이름도 생사도 모른다. 그는 어머니를 누나라고 부르며 살았고 외할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할머니를 엄마로 삼촌들을 형으로 알았다.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한 단계식 틀어진 호칭이 그가 서있는 삶을 뿌리째 뽑아내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가짜이거나 비틀어졌거나 비정상적인 기반 위에 서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절망보다 가치가 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없어도 되는 존재, 존재만으로 모두에게 가시였던 골칫덩어리.


그는 모든 일을 꾸민 어머니를 원망했다. 미워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가버린 어머니를 저주했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해서 왜 그렇게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건지, 왜 아버지를 떠난 건지, 왜 자신을 버린 건지, 왜 하노이로 자신을 불러주지 않은 건지, 왜 가족으로 받아주지 않은 건지 왜 죽어가면서도 엄마라고 부를 수 없게 한 건지, 자신을 하노이에서 낳은 아들처럼 바라본 적은 있는지... 그는 셀 수 없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큰누나를 아니 어머니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미친것처럼 검은 강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지옥에나 가라, 지옥으로나 떨어져 버리라고.


어디선가 사이렌이 울리고 다리 아래와 도로 위에는 경광등을 번쩍이며 구조보트와 경찰차 여러 대가 달려왔다. 사방에서 시선을 교란하는 불이 번쩍이는 가운데 어리둥절한 그를 뒤에서 담요같은 것이 날아와 덮쳤다. 그는 그 상태로 붙들려 경찰차 안으로 구겨 넣어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휴대폰을 들고 상황을 촬영하는 구경꾼이 모여있었고, 흔들리는 영상에 담기는 그의 눈빛은 오래전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이전 05화'응우옌 티 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