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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Sep 07. 2023

어느 것도 다 괜찮아

얻어걸린 하루

오늘은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날이다. 늘 일에 치어서 쉬는 날 없이 숨 가쁘게 살다 보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던 것이 언제였을까? 새삼 돌이켜 보게 되었다.' 이젠 한숨 돌린 걸까? 내가 이런 여유를 부리네.'   

   

그렇다. 남편의 도박으로 시작되었던 빚은 숨 돌릴 새 없이 궁지로 몰았고 나는 허덕이는 삶 속에서 한숨과 근심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왔었다. 아이들이 커가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돈, 돈, 돈뿐이었다. 벌을 받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하루하루를 지치도록 일을 하며 긍정은 온 데 간데 없이 온통 부정과 원망으로 단단히 굳어진 얼굴을 하며,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웃음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중심성 망막증이라는 병명으로 실명위기까지 겪으며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런데 운이 아직은 내편이었는지 나는 실명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빚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유연함은 찾았지만, 빚에 허덕이는 시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태권도 심판생활을 하던 때에 동료 심판원이 "오늘 시합이 끝나면 네일아트를 받아야지. 오늘은 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선물 주는 날이거든."라고 말하며 들뜬 기분이었다. 자신에게 스스로 선물을 준다는 그 말에 내 머리는 번쩍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물은 당연하게 남에게 받는 것이고, 남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돌본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참으로 맞는 생각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나에게 선물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 하나가 원망과 미움으로 얼어붙은 나의 마음을 녹였고,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했으며, 아름다움도 느끼며 웃음을 갖게 했던 것 같다. 이후 모든 것이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마음에 빈 곳을 두고 다른 것을 생각을 하다 보니 쫓기는 듯 한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얼굴에는 웃는 모습으로 주변에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자연스러워지면서 조금씩 일도 잘되어 갔다. 작은 생각의 변화가 나에게 무슨 일을 만든 걸까? 그 당시에는 크게 깨닫지 못하며 지났는데 돌이켜 보니 엄청난 변화들이 내게 있었다. 이 일로 생각의 중요함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차가 방전이 되어 자동차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시동을 걸게 되었고, 1시간가량 시동을 걸어놓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날은 몹시도 추운 겨울 아침이었다. 얼떨결에 쫓아 나온 딸과 가까이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자다가 일어난 상태로 외투만 걸치고 가까이 한 바퀴 돌고 들어오자고 했다. 하지만 달리다 보니 100킬로를 달려 재인폭포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주상절리의 겨울경치에 반해 준비 없이 나온 자다 부스스한 모습은 잊은 채 걸어서 그 주위를 한 바퀴를 돌았다. 오는 길에 배가 고파 식당을 가려다가 서로의 모습을 보며 그냥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사서 차에서 먹기로 결정을 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차 안에서 먹으며 늘어진 수다로 한참을 웃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시간에 우리는 참으로 많이 웃었고, 즐겁고 행복했다. 정말 얻어걸린 하루였다.  

    

그날 이후 나는 이런 시간을 자주 갖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이런 날 이런 시간 속에서 나는 새삼스럽게 참 많이 웃으며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까이 있었어, 멀리 있던 것이 아니었어."라는 말을 되뇌며 큰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수시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졌다. 이렇게...   

  

이젠 조카도 합류를 해주고 있다. 가끔씩 조카는 언니와 나를 태우고 이렇게 계획 없이 느닷없이 한 바퀴 돌며 즉흥적인 이벤트로 얻어걸린 하루를 만들어 준다.  

    

많은 시간들을 얼음 속에 갇혀 살아왔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게는 죽음을 생각하게 했던 시간이었는데..  언제 그 단단한 얼음들이 다 녹았는지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해진다. 이것이 사는 것이려니 이렇게들 살아왔으려니..,  지금은 웃는 시간들이 많아졌고 그 웃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얻어걸린 하루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생각하는 것이 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처럼 얼음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래서 극단의 생각도 끌어내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감히 말을 하고 싶다. 모두가 지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데로 되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결국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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