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by 옥이와 일이

< by 개미(옥이) >


교단에 처음으로 섰던 날이 떠오릅니다. 너무나 하고 싶었던 교사였기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는 학생들 앞에서 벅찬 기쁨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34년을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에 들어오는 삶을 관성처럼 살았습니다. 그동안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키우고 수많은 제자들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부터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석부의 이름이 겹쳐 보여 잘못 부르기도 했습니다. 돋보기를 쓰기 시작했고, 잘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내 몸의 노화가 자연스럽게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 환갑의 나이입니다. 같은 교사로 멘토 역할을 했던 남편이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당신도 그만 정리하는 게 어때요?" 하는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에, 수도 없이 퇴직이라는 단어를 썼다 지웠다 했습니다. 그러다 34년 교직생활을 그만두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막상 그만두고 나니 가르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정작 나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현직에 있을 때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퇴직하면 가장 먼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거야!"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이 발목을 잡습니다. 나는 61살, 남편은 64살인 우리가 800km나 되는 먼 거리를 30여 일이나 걸을 수 있을까? 무릎도 아프고, 기운도 없고, 더구나 영어도 잘 못하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겨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분을 우연히 온라인 카페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레 걱정을 댓글로 올렸더니 명쾌하게 답을 줍니다.

"걱정은 집 안 현관에 놓아두고 길을 떠나세요."

“그래... 시작이 반이다. 부딪혀 보는 거야. 그 긴 여정을 걸으면서 내 삶을 차분히 돌아보고 앞으로 할 일도 생각을 해보는 거야...”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그리고 중간 기착지인 파리로 갑니다. 2022년 3월 17일 목요일 11시 50분 발 에미레이트 항공에 몸을 싣고 꼬박 하루 걸려 (인천-두바이 10시간 15분, 환승 2시간 45분, 두바이-샤를 드골 7시간 35분) 파리에 도착했습니다. 에미레이트 항공을 처음 이용해 보니 서비스 질이 높고 쾌적해 다시 이용하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 환승의 의미는 비용을 줄이는 데도 있지만 긴 비행거리를 중간에 한숨 돌리고 쉬어 가는 여유를 즐기는 것인데, 환승 시간이 적당한 리듬을 탈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두바이 공항 이용객들의 다양한 모습 또한 볼거리였습니다.


베짱이 '일이'

샤를 드골 공항은 예상외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세상은 여느 때와 같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초현대 시설의 화려하고 깔끔한 두바이를 경유한 탓인지 파리 공항은 우중충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듯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걱정거리 중 가장 발목을 잡았던 것이 코로나였는데, 그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더니 또 다른 세상이 있었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루한 비행시간 내내 비몽사몽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완독 했습니다.

검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그것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보다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나는 그 검을 실제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습니다. 34년 직장을 그만두고 순례길을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뭔가를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식처럼 따라붙었던 소속이 없어지고 순수하게 이름 석 자로 불릴 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습니다.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고 코엘료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당신께서는 사사로운 지혜로 인해 교만한 마음을 품었던 저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걷게 하셨습니다.
삶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지극히 개인에 속한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행복의 원형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다다르려 하는 길의 끝은 다를 것이며 걷는 순간 느끼는 고통과 기쁨의 크기도 다르고 대지와 우주 자연의 신비한 조화와의 교감 방식도 다를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길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인가부터 길이 인도하는 대로 이끌려 가는 수동적 존재가 되기도 하겠지요!


오감을 열어 두고 길이 주는 깨달음에 매료되어 걷고 또 걸으며 나를 조금씩 알아 가는 신비한 체험을 기대합니다. 검이 녹슨 칼집에서 나와 날카롭게 빛나며 세상의 혼돈을 잠시라도 정리해 주고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검을 내가 발견하여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을 성공적으로 걷는 것이 될 것입니다. 간절히 소망하건대 나는 나의 길 끝에서 나의 검을 꼭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준비가 좀 덜 된 은퇴의 시간을 시작하며 재탄생의 무기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야고보가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간 후 <순례자>를 썼던 코엘료처럼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은퇴 후 삶을 통해 나 자신의 소중함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by 베짱이(일이) >


장거리 여행에 밤 비행기는 여유를 준다. 새벽부터 시간에 쫓기지 않고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까지 먹고 나서 출발할 수 있어 좋다. 길 떠남에 익숙한 터이지만 이 번 길은 느낌이 다르다. 부부의 퇴직 기념 길이자, 아내가 퇴직 후 첫 번째로 가고 싶어 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간절함이 내게로 전이되었다.


몸무게가 늘고 절박뇨와 약해진 왼쪽 무릎 관절, 오른쪽 새끼발가락 골절은 치료 중이었고 정년퇴직 후 긴장감이 풀리고 오랫동안 쌓인 피로감 등이 겹쳐서 자신감이 많이 없어진 터였다. 내게 용기를 주고 동기 부여를 지속적으로 해 준 아내와 코엘료 덕에 순전히 걸어서 800킬로미터를 가는 긴 여정을 걷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라디오에서 바흐의 '쳄발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흐른다. 길 떠나기 전 현대 음악의 새로운 길을 연 바흐의 음악을 들으니 먼 길 떠나기 직전의 감상이 묘하다. 부부 동반 퇴직 후 앞으로 열릴 새로운 시간들을 준비하며 우리 자신을 좀 더 긴 호흡으로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 잊혔던 꿈도 되찾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은퇴 이후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시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스페인 기행>에서

“여행의 기록은 오만한 자아를 인간의 고통의 심연 속으로 던져 넣어 담금질하여 부드러운 영혼을 만드는 것”이라 했는데 매우 공감되는 대목이다.


‘고통의 심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길이 고통스러워 도중에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 사람 중 하나라도 더 이상 걸을 수 없으면 멈추어야 한다. '함께 걸어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다음에 다시 하면 된다. 그러나 둘이서 35일 정도의 긴 여정을 걸어서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혹은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 가게 된다면 우리의 영혼이 ‘오만한 자아’에서 ‘부드러운 영혼’으로 잘 담금질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주(定住)의 안온함에서 벗어나 유랑(流浪)의 불편함을 겪으며 영혼을 정화하고 원시의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이제부터의 기록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스크와 나바라, 카스티아 이 레온, 갈리시아에 이르는 800킬로의 장정을 60대 은퇴 부부 개미(옥이)와 베짱이(일이)가 좌충우돌하며 걸어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과 바람과 별과 구름이 연출하고 새들과 물고기와 양 떼와 소떼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순레자들과 이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이야기가 곁들여져 35일간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 반복의 일상에서 작은 변화들을 감지해내는 감수성이 살아나고 순환과 진화의 섭리를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 힘이 들고 지치기도 하겠고, 다시 힘을 내기도 할 것이다. 나의 의지와 열정이 사그라들 때쯤이면 코엘료의 말처럼, 길이 우리를 이끌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여정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후에도 이어진다. 포르투와 리스본을 거쳐 세비야에서 말라가를 들러 타리파와 탕헤르를 갔다가 바르셀로나에서 인천으로 돌아간다. 이베리아 반도 북부를 걷고 남쪽으로 포르투갈을 거쳐 안달루시아와 카탈루니아를 여행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혹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스페인은 로마보다 더 로마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로마의 제도와 문화의 영향을 오랜 시기에 걸쳐 받았다. 그래서 스페인이 지배한 남미가 ‘라틴아메리카’가 된 것이다. 한편 이슬람의 지배와 영향권 아래서 600년을 살았기 때문에 그 문화적 유전자 역시 많이 지니고 있다. 이슬람 지배 시기의 유대인 포용 정책 등으로 유대인들도 함께 살아왔으며, 북아프리카와 닿아 있는 남부 이베리아는 특히 아랍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고 현대에도 지리적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피카소의 그림에서 아프리카의 원시적 열정과 이슬람 세계의 느낌을 받은 것은 스페인 역사가 배경이 되어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주관적 생각을 해본다. 그의 외형이나 예술의 세계가 그렇다. 세계에 열려 있고 동심과 원시적 생명력을 중시하는 그의 사상이 스페인의 복잡하고 혼합된 지구적 감수성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산티아고 길을 마치고 포르투와 리스본을 거쳐 말라가를 가면 또 생각의 디테일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냥 내 감성이 움직이는 대로 떠오르는 것들을 부담 없이 적어본다.


이베리아인,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베르베르족, 반달족, 고트족, 켈트족 그리고 많은 종족과 부족 집단들이 경합하며 건설한 국가란 무엇인가? 결국 부를 거머쥔 집단 즉, 종교와 정치권력이 부를 빼앗긴 피지배 세력과 공존하는 질서가 아닌가?

민족이 언어와 관습을 공유하는 집단인데 반하여 국가는 단일한 민족만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주류와 비주류의 연합일 뿐이다. 특히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적 부침은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서,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졌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의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스페인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들을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으로 묶어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시계를 보니 공교롭게도 오후 4시 44분이다. 두 시간쯤 뒤면 두 달간 공간을 이동한다. 파리에서 생장, 론세스바예스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피니스테레, 묵시아, 포르투, 리스본,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바르셀로나... 이쯤 되면 장정이다. 무엇을 위한 장정인가? 그저 지난 인생을 차분히 돌아보고 은퇴 이후 부부 각자의 시간과 동행에 필요한 어떤 무엇을 얻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과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는 한미일의 순차적 행동,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 격화되는 미중 갈등에 기후 위기로 빈발하는 세계적 산불과 홍수 그리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까지...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쉴 날이 없다. 평화는 불화와 앙숙이며 벗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인의 마음속 세계와 바깥세상의 평화와 불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좌충우돌 살고 있다. 그냥 그런 평범한 삶이 우주의 섭리가 잘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평범하고 작은 일상에 녹아 있는 미세한 생활 정서와 미적 감수성을 이웃들과 나누며 은퇴 이후를 살고픈 작은 소망의 촛불을 들고 신발 끈을 단단히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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