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1. 월)
*. 레디고스(Ledigos)- 칼사다 데 코토(Calzada del coto) (22.0Km 8시 30분 출발- 15시 도착)
< 상세 일정 : 레디고스(Ledigos 0.0km) →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3.5km) → 모라띠노스(Moratinos 7.0km) → 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 9.5km) → 사아군(Sahagun 17.0km) → 칼사다 데 코토(Calzada del coto22km) >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난방용 히터가 저녁 시간부터 직원들이 퇴근하는 시간까지만 가동이 되어 새벽에는 한기가 느껴집니다. 레디고스(Ledigos)에서 선택한 오래된 알베르게는 새벽까지도 히터가 나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포근한 정이 느껴지는 인상 깊은 집이었습니다.
순례길 중반에 맞이한 고비를 넘기자, 비 온 뒤에 맑게 갠 하늘처럼 컨디션이 회복되어 아침도 먹지 않고 일찍 출발합니다. 걸음도 빨라지고,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이 가볍게 느껴져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마을까지 3.1Km를 단숨에 와 버렸습니다. 이곳은 붉은색의 벽돌로 만들어진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이 길게 자리 잡은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역사적 흔적은 보존된 것이 없었고, 겨우 알베르게 로고 정도로 짐작만 할 뿐입니다. 마을의 규모는 작았고 흙벽돌로 된 오래된 집들이 허물어진 곳도 많았고, 개축된 신축건물들이 보이고 여전히 레미콘 차가 드나드는 것으로 보아 한 차례 마을이 변화를 겪고 있나 봅니다.
마을을 빠져나오니 오솔길이 시작되나 싶었는데, 어느새 고갯마루가 나오고 모라티노스(Moratinos)마을이 보입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마을 뒤편에 신라시대 고분 같은 둥근 구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정상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순례자들이 파란 하늘 위에 올라앉아 있는 듯 보입니다. 이 마을의 심벌처럼 순례자들의 발길을 머물게 합니다. 그 아래로 포도주와 음식 저장고가 있었던 흔적이 보입니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흙길 삼십 분 정도를 걸어 팔렌시아 주의 마지막 마을 산 니꼴라스 델 레알 카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를 지나 세낄료 강을 건너 사아군(sahagun)으로 향합니다. 큰 도시 주변 평원에서는 마을 간의 거리가 가깝습니다. 이런 까미노 길은 걷기에 부담이 없으나 조금만 나오면 큰 도로와 연결이 됩니다. 여지없이 사아군으로 가는 길도 레온으로 가는 고속도로 옆으로 난 긴 길이 쭉 이어집니다.
오늘은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새삼 풀어놓습니다. 서울 근교에 살았던 저는 초등학교 때 솔방울을 따러 다녔고, 겨울이면 석탄 난로를 피우기 위해 한 시간은 창문을 열어 놓고 수업을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난로의 도시락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면 수업 중간에 도시락의 위치를 바꾸어 주기 위해 수업을 멈췄던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며 발걸음을 가벼이 해봅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의 역사를 풀어놓으니 어느새 사아군 교차로가 나옵니다.
도로 옆 작은 오솔길로 들어서니 ‘다리의 성모 예배당’이라는 조그만 성당이 나오고 넓은 잔디밭에서 다리 쉼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반가운 얼굴이 보입니다. 프랑스 아주머니, 이제는 시스터가 되었으니 프랑스 언니들입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70살인데 아침을 안 먹고 일찍 출발한 우리보다 훨씬 먼저 도착한 것입니다. 마리세(MARYSE)는 발에 물집이 잡혔고, 이브에떼(YVETTE)는 배탈이 나서 며칠 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행히 모두 회복이 된 듯합니다. 간식을 나눠 먹고 또 먼저 길을 떠납니다. 오늘의 목적지 칼사다 데 코토(Calzada del coto)까지 간다며,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보다 3Km 전이라는 정보도 줍니다. 보여주는 까미노 일정표, 무거운 배낭, 도미토리를 찾아 하루를 정리하며 다음 날 일정을 체크하는 등 까미노 고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길을 걸으며 만난 남아공 다리아(DARIA), 프랑스 마리세와 이브에떼는 머지않은 나의 미래입니다.
사아군이라는 도시 이름은 파꾼도 성인인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돌 대신 벽돌을 주로 사용한 로마네스크-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들이 많이 보입니다. 또한 사아군은 기차역이 있는 도시입니다. 카페에서 만난 J가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레온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살짝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길을 가던 중 삼위일체 성당에서 중간 완주증을 상장처럼 받았습니다. 어깨가 으쓱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해봅니다. 프랑스 언니들이 머무는 칼사다 데 코토(Calzada del coto) 마을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알베르게를 찾아 짐을 풉니다.
지금까지 묵었던 알베르게와 달리 나이 드신 할머니가 관리하며 정해진 숙박료 대신 도네이션을 받습니다. 시설은 깔끔하나 경건과 검소를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운데 난방을 하지 않습니다. 넓은 도미토리는 을씨년스러운 수도원의 전시 병상을 연상케 합니다. 따뜻한 물 샤워와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더니 우박 같은 비가 한 차례 쏟아집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흠뻑 젖었을 테지요. 옆에 있는 프랑스 언니들한테 “엄지 척” 했더니 활짝 웃습니다. 이심전심... 이제는 눈빛과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지요.... 오늘은 인터넷도 안 되는 동네에서 중세 시대 수도자들처럼 하루를 묵어야 합니다. 우리 넷이 자게 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비를 홀딱 뒤집어쓴 여자 젊은이 하나가 들어옵니다. 난방을 좀 해 주셨으면 좋으련만.. 도네이션을 할 만큼 했는데, 이 말을 할 수도 없고... 오늘은 사람들이 잘 머물지 않고 지나는 작은 마을에서 색다른 하루를 우리 다섯이서 보내렵니다.
이 작은 마을은 알베르게와 저녁을 먹은 레스토랑에서도 와이파이가 안 됩니다. 디지털 세상을 잠시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깜깜한 밤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만난 여학생이 비를 맞아가며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를 데리고 인터넷이 되는 카페까지 안내를 합니다. 덕분에 오늘의 후기를 카페에 올리고, 가족들에게 안부도 전합니다. “세상에......” 가능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해결되었습니다. 혹시 부활절의 기적이 우리에게 온 것일까요?
이제 8시가 넘으니 로컬 카페에 손님들이 꽉 찹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린아이들까지 어울리고, 주인과 손님의 경계도 없어 보입니다. 참 정겨운 저녁입니다.
아침의 컨디션은 역시 지난밤의 수면의 질과 비례한다. 따뜻한 잠자리가 다음날의 몸상태를 보장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상쾌하게 시작한다. ‘라 모레나(La Morena)'라는 유명한 식당 겸 알베르게를 지난다. 이곳은 창업한 아주머니 얼굴이 그려진 간판이 있는 호텔 수준의 펜션을 겸한 식당인데 어제 보니 가족 단위의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았다. 음식 맛이 어떨지 궁금하기는 하다. 까리온 강(Rio Carrion)은 사실 운하이다. 이곳 팔렌시아(Palencia)는 강도 있고 운하로 개발하여 유람선도 운행하는 것 같았다. 강이든 운하든 걷기에 지친 순례자들에게 마실 수는 없어도 정신적인 청량감을 주기에 피로감을 덜어 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3.5km)는 한 때 ‘템플 기사단’의 근거지였다는 명성과는 달리 오히려 초라하고 개발 중인 분위기 없는 마을인 것 같다. 그 명성은 전설과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지명(地名)만 남은 것은 아닌 지 하는 생각인데 물론 과문한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별 감흥 없이 이 마을을 통과하여 사아군(Sahagun)이라는 도시를 향한다.
모라띠노스(Moratinos) 마을은 포도주 저장고들이 언덕을 형성하고 있고, 큰 언덕 위로 의자를 하나 두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 같다.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소로 자리를 잡은 듯했다. 의자에 앉아 차례로 사진 찍는 순례자들이 바라다 보이는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는데, G와 T 부부가 다가와 격하게 포옹한다. R과 헤어져 혼자인 독일 청년을 만나 모른 척 인사를 한다. 이 마을에서의 휴식은 꿀맛 같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San Nicolas del real Camino)는 순례길을 더 이상 갈 수 없는 나병 환자들과 중병자들을 치료해 주는 병원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니 이 길은 영혼의 구원과 함께 몸에 깃든 질병이라는 악마를 쫓고 치료받으려는 사람들도 많이 걸었던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심한 피부질환 치료를 위해 용하다는 의원과 약국과 악방을 찾아 여러 곳을 전전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디 약 처방 때문인지도 모르게 병세가 호전되었었다가 다시 면역력이 저하되면 병이 재발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몸이 아프면 정신이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정신이 혼미해지면 몸은 점점 약체가 되어 간다. 대개 몸과 마음에 병이 들면 몸 치료에만 즉자적으로 매달릴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안정하고 몸속에 전달할 에너지를 모으는 호흡과 명상을 꾸준히 훈련하는 등 병의 근원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것인데, 유럽의 중세에는 교회와 기도가 몸과 마음의 치료와 치유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사아군(Sahagun)까지 오며 J와 R, 독일 친구와 젊은 영국 부부, G와 T 부부, 시애틀(Seatle)에서 온 중년 부부를 비롯해 국적과 나이와 이름도 모르는 많은 길동무들을 만났다. G와 T 부부와는 오랜 친구처럼 만날 때마다 격한 허그를 할 만큼 정이 들었다. 물론 프랑스 누님들과 남아공 누님, 캐나다 동생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 길 위의 시간을 공유하는 느낌을 나눈다. J는 영상 클립으로 제작하는 모양이다. 줄곧 혼자 다니며 녹화를 한다. R이 레온에 먼저 가 있는 H와 화상 통화하는 순간 끼어들어 이틀 뒤 레온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로의 건강을 기원한다. 도시의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이해타산 없이 교류할 수 있는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풍경이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기 때문에 쉽게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론 일상의 생활로 복귀해서까지 관계가 이어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길 위에서는 유대가 제법 끈끈하다.
사아군의 길목 어느 성당에서는 시청과 여러 단체들이 협찬하여 중간지점 통과 기념 증서를 발급해 준다. 이 증서는 마치 산티아고 성당에서 발급해 줄 완주 증서의 예고편 같은 묘한 느낌과 감동을 주어 숙연해지면서 몸 안으로 기운이 솟는다. 이 도시에는 기차역이 있는데 J는 레온까지 기차를 타기로 했단다. 이후의 길이 남은 영혼을 갉아먹을 정도로 지루하고 단조로워 장기적으로 변화를 주고 싶다는 것이다. 대신 레온에서 부활절 주간의 들뜬 분위기를 하루 더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덧붙인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하루도 쉬지 않고 끝까지 간다’는 둘 사이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사아군 성당의 중간 완주증의 힘으로 힘을 내어 다음 마을로 다시 걸음을 떼어 놓는다. 그런데 역시 애써 무시했던 J의 예견대로 나무 그늘 없이 사막처럼 황량하게 이어지는 이 길은 정말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오늘도 목표 지점 전 마을에서 쉬기로 한다. 오후와 저녁의 시간 확보가 하루의 피로를 줄여준다. 몸이 지쳐 가니 글 쓰는 것도 점점 힘들어진다. 아내는 매일 글을 써서 온라인 카페에 올려야 한다. 나도 기록을 남기기 위해 메모를 하고 아내의 글쓰기가 끝나면 교정을 보아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아내가 다시 마무리를 하여 글을 올리는데, 취침 시간이 정해진 알베르게에서 숙박을 할 때에는 저녁도 걸러가며 글을 마무리해야 할 때도 있었다. 때문에 하루 걷는 거리를 너무 욕심내면 지쳐서 끝까지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여 오후 서너 시까지만 걷기로 하는 것이다.
이 마을 입구에는 카페테리아가 있어 저녁을 예약하려 했는데 인터넷이 되질 않는다 한다. 알베르게에도 와이파이가 안 된다. 중세 수도원 같은 분위기의 이 알베르게에는 일찍 도착한 프랑스 누님들과 우리 둘뿐이다. 정갈하지만 차가운 분위기의 이곳 관리인조차 초지일관 무표정이다.
시간은 많아 글은 쓸 수 있으나 카페에 글을 올리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제법 굵은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거리를 나선다. 우리 숙소는 마을 입구에 있는데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니 작은 바가 하나 보여 와이파이 되나 물어보니 안된다고 한다.
비를 맞으며 좀 더 깊숙이 골목길을 더듬어 올라간다. 그러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가족들을 만났다. 이들 중 앳된 소녀가 손등으로 비를 가리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사정을 말했더니 소녀는 비 내리는 어둑한 골목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도착한 곳은 레스토랑 겸 바인데 마을에서 거의 유일하게 와이파이가 설치된 곳이라는 것이다. 이 소녀는 이름이 ‘마리나’이며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녀의 친절과 희생정신에 감동하여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예쁜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고 한다. 우리는 ‘마리아‘를 만난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그녀와 헤어졌다.
늦은 시각까지 아내가 글을 쓰는 동안 식당에는 스탠드 바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찬다. 어린아이들도 각자 자신들의 음료를 들고 게임기 앞에서 놀고 있다. 주인장도 푸근하신 분이다. 커피도 맛있고 달달한 케이크 조각도 입안에서 향기롭다. 로컬 식당의 흔치 않은 저녁 풍경에 은근한 관심을 보이며 텔레비전 화면의 축구 경기를 시청한다.
아내가 꽤 늦은 시각에 일을 마치고 주인장과 인사를 나눈다. ’ 마리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달라는 것도 잊지 않고 식당의 마을 사람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눈다.
숙소로 돌아오니 10시 통금 시각이 다 되어 간다. 비에 젖은 배낭과 옷가지들을 의자와 탁자에 늘어놓은 것이 보인다. 추위 속에 떨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다. 관리인에게 추워서 감기 걸릴 것 같다고 하소연해 보지만 어깨 한 번 으쓱하고는 외면한다. 다행히 더운 샤워로 피로를 풀고 옷을 껴입고 침낭 안에 드니 잠이 스르르 온다. 내일 일을 미리 생각할 겨를이 없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