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4. 목)
*. 레온(Leon)- 비야르 데 마사리페(Villar de Mazarife)(23.1Km 8시 00분 출발- 18시 도착)
< 상세 일정 : 레온(Leon 0.0km) → 뜨로바흐 델 까미노(Trobajo del Camino 4.5km) → 비르헨 델 까미노(Virgen del Camino 7.5km) →프레스노 델 까미노(Fresno del Camino 10.0km) → 온시나 데 라 발돈시나(Onclina de la Valdoncina 12.0km) → 초사스 데 아바호(Chozsa de Abajo 18.0km) → 비야르 데 마사리페(Villar de Mazarife 22.0km) >
레온 대성당을 다시 지납니다. 지난밤 부활절 전야제 퍼레이드와 그 열기는 고요 속에 잠겼고, 거리의 청소차와 경찰들만이 바삐 움직입니다.
부활절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대성당 남쪽 파사드와 첨탑들을 비춥니다. 광장 건너 골목 모서리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레온(Leon)을 빠져나오는 동안 크고 작은 성당을 지나며 보니 부활절 행사 준비가 한창입니다. 곧 굳게 닫힌 성당 문들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저곳에서 각자가 꿈꾸는 부활을 기도하겠지요. 덕분에 우리도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그것이 부활의 의미라 하네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성서적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의 삶 속에서 그 의미를 찾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부활일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또한 이 순간 뜻하지 않게 부활절 주간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는 것도 부활의 기적일 것입니다.
성당을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서니 저마다 음식 바구니와 꽃다발들을 들고, 온 가족이 성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성당 미사가 끝나고 음식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우리의 명절 문화 같습니다.
오늘 길은 지금까지 걷던 길과는 달리 도로를 걸어가야 합니다. 레온 시내를 둘러 흐르고 있는 베르네스가 강의 다리를 건너니 시의 외곽으로 진입하고, 현대화된 아파트와 신축 건물, 공장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입니다. 도로 주택가를 따라 한참 걷다 지칠 때쯤 현대화된 건물 앞에 순례자들을 위한 좌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시원한 음료와 커피, 과일 등 목마른 자들을 위하여 적절한 간식이 준비되어 있어 잠시 쉬어 갑니다. 정해진 가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네이션입니다. 큰 칠판에 까미노 길을 찾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인사말이 정갈하게 쓰여 있고, 세계 지도에는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사는 곳을 표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국어도 적혀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열정이 전해져 옵니다.
두 갈래길에서 비야르 데 마사리페 길을 선택합니다. 이 루트는 계속해서 도심을 지나가게 합니다. 흙이나 풀들이 발바닥에 닿을 때는 폭신한데, 아스팔트 길을 걷는 것은 몹시 힘듭니다. 발에 열이 나고 지쳐 온시나데 라 발돈시나(Oncina de la Valdoncina)마을의 카페에서 점심을 먹을 겸해서 쉬다가 데일리 부르고스에 실린 우리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한 H가 찾아서 보내 준 것입니다. 우리의 스토리는 아니었지만 한국 까미노 홍보모델이 된 것 같아 어리둥절합니다. 비바람에 지친 모습의 사진이 맘에 들리는 없지만, 카페에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 스페인 신문 때문에 공개가 되네요....... 까미노의 잊지 못할 추억으로 저장합니다.
온시나데 라 발돈시나(Oncina de la Valdoncina)를 벗어나니 다시 시골길이 펼쳐집니다. 대도시의 소음과 분주함에 지쳤던 우리를 위로해 주는 듯합니다. 길 위에 순례자들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눈앞의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손에 잡힐 듯 떠 있고, 짙고 옅은 초록의 밀밭과 노란 유채꽃과 진한 황토 흙이 그라데이션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지친다 싶을 때쯤 나타난 작은 시골 마을 초사스 데 아바호(Chozas de Abajo)로 들어섭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경계를 풀고 애교를 부릴 뿐 인적이 없습니다. 다행히 열려있는 길목 카페에서 손짓과 표정으로 주문을 합니다. 생선은 물에서 헤엄치는 모양을 흉내 냈고, 치킨은 당연히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지요. 셰프는 노련한 어머니이고 서빙은 착한 아들이 합니다. 모자의 인상이 순박해 보입니다.
그런데 10여분 뒤 나온 첫 번째 요리는 오징어 튀김입니다. 두 번째 요리도 오징어 숙회를 야채 위에 올리고 올리브유를 곁들인 오징어 요리입니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나와 맛있냐고 묻는데 양손 ‘엄지 척’을 해 드렸습니다. 오늘 스페인 부활절 점심은 오징어 정식입니다. 오징어도 생선이니 절반의 성공이지요. 신선하고 맛은 있습니다. 다음에 치킨을 주문할 때에는 “꼬끼오”를 한 번 해야겠습니다. 계산을 하러 들어갔더니 순박한 아들이 우리나라 머루주 같은 발효주를 위스키 잔에 서비스로 주어서 마셨는데... 맛은 좋았습니다만.. 좀 취하고 말았네요.
갈지자걸음으로 30분을 걸어 비야르 데 마사리페(Villar de Mazarife)에 일찌감치 숙소를 정합니다. 아주 작고 아담한 농촌 마을입니다. 저녁 8시가 되어도 환합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실을 나오셨나 봅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우리를 보고 순례자이냐고 물어 손짓으로 21일째 생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하니 ‘부엔 까미노’하면서 환하게 웃으십니다. 길을 가던 동네 아저씨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슈퍼마켓 위치를 알려 주며 역시 환하게 웃으십니다. 레온에서 겨우 23Km를 왔을 뿐인데 시골의 푸근함이 느껴지는 마을입니다. 오늘 밤의 알베르게는 본의 아니게 독채 전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겠지요. 다양하게 알베르게를 경험합니다. 내일 30Km 장정을 위해 어서 자야겠습니다.
14일 부활절 아침, 전야제의 열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살수차가 좁은 골목을 누비며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한다. 차분하고 경건한 미사를 위한 마음의 준비인 듯하다.
어제 늦게 도착한 한국인 젊은이들이 우리보다 일찍 길을 나섰는데 카페에서 식사를 하며 인사를 한다. 덩달아 우리도 광장 앞 카페에서 카페 콘레체와 크로와상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는다.
레온 대성당의 파사드는 부활절 분위기에 맞게 황금빛 햇살에 반사되며 아름답고 신비한 자태를 뽐낸다. 어젯밤의 열정 어린 공연의 장소였던 광장이 이제는 차분히 가라앉은 모습이다. 비둘기들이 삼삼오오 먹이를 찾고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다.
레온의 시가지를 벗어나는데, 앞에 가던 나이 드신 여자분이 나무 지팡이에 전통 순례자의 복장으로 길을 지나며 ‘부엔 카미노’로 경쾌하게 인사한다. 거리에는 음식을 들고 이웃을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분주하게 보인다. 부활절은 이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 같은 날인 것이다. 행복하게 상기된 표정이 이를 확인시켜 준다.
도심 외곽에 이르러 힘겹게 언덕을 올라 서니 오렌지 주스 등을 갈아주며 순레자들을 격려해 주는 노점상을 만난다. 아침 요기 삼아 직접 즙을 낸 생오렌지 주스를 마시니 힘이 난다.
어느새 생장에서 시작한 순례길이 절반을 넘어 삼분의 이 정도를 왔다는 것에 스스로 자부심이 생긴다. 이번 순례길 동행은 아내를 위한 작은 은퇴 선물 같은 것이었다. 은퇴를 하고 회상을 해 보니 긴 조직 생활이 준 피로와 상처와 회한 같은 것이 많이 남아 몸과 마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아내가 산티아고 길을 은퇴 후 첫 사업(?)으로 제안했을 때 선뜻 나서지 못했던 이유이다. 소변이 자주 갑자기 마려운 ‘돌발뇨’ 증상이 걱정이었고, 불어난 몸무게와 새끼발가락 골절 그리고 임플란트 시술 등 해결해야 할 선행 과제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간절했고 나는 동행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와 동반 퇴직을 감행한 아내는 은퇴 이후의 삶의 여정을 산티아고 길로 시작하려 한 것이다. 이 길 위에서 지난날의 묵은 감정을 다 풀어놓고 정리해 보고팠던 것이다. 현재 진행형인 과제들도 있었다. 아내의 과제가 내 과제인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 이후 나는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스페인 북부의 레온에서 갈리시아로 열흘 남짓 남을 일정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다.
어디 한 군데 크게 아픈 곳 없이 우리 둘이 무사히 걷고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무언의 격려요 자신과 상대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이 길의 끝에서 다시 시작될 새로운 길을 동행해야 할 동반자로서의 신뢰 또한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활은 어느 특정 종교의 신앙의 계기나 사건이 아니라 우주 대자연이 운행하는 섭리이다. 여명이 새들을 깨우고 새소리에 숲 속의 온갖 생명들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부활의 교향곡이 시작되는 것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들 때까지 생명은 자라고 잉태하고 생산을 한다. 내가 매일 부활한다는 기쁨을 깨닫기만 한다면 나는 부활하는 것이다. 나는 하늘과 땅이 만나 연주하는 시간의 교향악을 들으며 고행이라는 달콤한 순간을 즐기고 있다. 노동의 고통과 세상의 시달림 없이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하루라는 시간을 광활한 평원을 걸으며 그곳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조금씩 날이 더워지고, 쉬는 시간과 내용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데 아내는 쉴 때마다 글을 정리하느라 먹는 데에 관심이 없다. 메뉴 탐구와 주문은 내 몫인데 아내의 편식 습관(?)까지 고려하여 내 욕망을 충족해야 하는 난제 중 난제다.
오늘도 언어 소통이 안되고 마음만 통하는 카페의 모자에게 대접받은 오징어 요리는 생선을 주문한 나로서는 절반의 성공이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일 수 있으니 속내로는 대만족이었다. 그러나 아내 입맛에는 맞지 않은 모양이어서 내심 동조하는 모양새를 갖추어 주었으나 셰프 어머니와 홀서빙 담당 아들 모자의 다정하고 친절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약간의 뒤끝을 보인다. 물론 두 사람보다는 내게 대한 질책 같은 것이어서 나도 뒤끝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아무튼 저녁에는 반전이 좀 있어야겠다.
우리 몸의 회복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매일 부활하지만 점차 늙고 둔해지고 지치고 병들어 간다. 34일을 걷는 긴 여정이라면 기계가 아닌 이상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 정한 이치이다. 우리가 아무리 길을 마음으로 걷고 자연과 사람들에게 위로받으며 걷는다 하지만 20일 이상을 쉬지 않고 걷는데 어찌 피로가 누적되지 않겠는가? 다만 몸이 시나브로 단단해지고 정신도 맑아져 끝까지 계획대로 무난히 갈 것이라는 믿음은 있지만 4월 중순 한낮의 태양은 이미 작열(灼熱)한다는 표현을 절제하지 못하게 한다. 침낭과 의류 몇 점에 식수통과 간식 약간 정도를 담은 배낭의 무게는 다리와 허리로 전달되고 긴 시간을 견디는 경험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고통의 극한 지점에서는 서로를 배려하지 못한다. 오후 내내 숙소 도착 전까지 뜨거운 태양볕은 양보가 없다. 다행히 밀이 키가 쑥 커지고 포도나무에 싹이 돋아 잎사귀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여름에도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많은데 그들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엄살을 떠는 것일 게다.
이 번 순례길은 프랑스 루트로 명명된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이다. 바스크 지방인 프랑스 생장(생장 피에드 포흐)에서 피레네를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킬로미터를 가는 길인데, 이제 우리는 200여 킬로미터를 남겨두고 있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이 길이 내국인들을 ‘카톨릭 에스파니아’로 결속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어린 학생들부터 노인들까지 지방색을 극복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간접적 체험의 정치적 고려도 담겨 있다. 그래서 이 길을 가는 순례자 여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싼 값에 숙소를 이용할 수 있고 카페나 바의 음식도 ‘관광물가’ 같은 바가지요금이 없이 규제를 철저히 해서 유럽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길인 것이다. 이 길은 한국에도 알려지면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오면서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주기도 했는데, 한국의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트레일과 트레킹 루트를 개발해 왔고 또 하고 있는데, 우리가 좀 더 깊숙이 벤치 마캉 할만한 스페인의 자산이다.
비야르 데 마사리페(Villar de Mazarife)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데도 알베르게가 공립과 사립 두 어개가 있었다. 마을 초입의 사설 알베르게는 이층 침상이 20개가 넘는 큰 홀에 독립된 방도 세 개나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이 남녀로 분리되어 있는데 각각 화장실 세 칸과 샤워실이 다섯 칸으로 시설이 꽤 훌륭하다. 우리들 외에는 그 큰 홀에 숙박객이 한 사람도 없다.
이 마을은 순례자들이 숙박보다는 잠깐잠깐 쉬어 가는 경유지인 듯싶다. 우리는 너무 지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려고 조금 일찍 이곳에서 쉬기로 한 것이다. 마을에는 식당이 둘 있는데 아내의 눈에는 저렴한 순례자 메뉴가 쓰여 있는 저녁 식당이 들어온 듯하다. 우리들 외에는 손님이 없는 이 식당에서 주인장이 열심히 요리를 준비해 준다. 우리 입맛에는 익숙하지 않은 돼지고기 튀김과 한국인이라는 것을 배려해 추천해 준 돼지고기 볶음 요리 그리고 고로케와 홍합 튀김이 나오고 야채와 계란 샐러드가 나온다. 아내는 샐러드의 야채와 계란 흰자만 골라 먹고 숟가락을 놓는다. 나는 그 느끼한 음식들을 레드 와인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성의껏 먹는데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 미안한데, 에구... 감자튀김 두 접시가 또 나오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머지 음식은 싸 달라고 한다. 주인장이 미안한지 달고 독한 노란색 술 한잔씩을 주며 잠이 잘 올 거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 지방의 전통주인 듯한데 이름을 기억 못한다. 이들 부부의 이방인을 대하는 따뜻함과 함께 점심부터 제대로 먹지 못한 아내의 불만족감 사이에서 불안감이 엄습하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