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원하는 그 말이 뭐야 내게 말해봐
내 귀에 캔디 꿀처럼 달콤해 니 목소리로 부드럽게 날 녹여줘..
<내 귀에 캔디> 노래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소리였으면 너무 좋겠지만 내 귀의 소리는 그렇지 않다. 내 귀속의 매미는 몇 년째 같은 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심지어 무리가 떼 지어 합창을 하니 꿀처럼 달콤하게 외쳐댄다고 해도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 없다.
한때 너무 우울해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어느 날 나는 비로소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 들을 수 있었다.
"사랑해 너와 함께 있고 싶어.."라고.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보낼 수 없으면 함께 가야지.
이명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이었다. 갑자기 이명이 찾아오게 된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건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몸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로 추운 공간에 오래 머무른 탓에 발생한 저체온 증상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며칠 후 귀에서 발동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왕왕거리는 기계 소리는 귀를 통하는 모든 통로를 따라 뇌를 흔들어 삼킬 것 같았다. 아니 터질 것 같았다.
24시간 그 기계 소음은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는 왕왕거리는 소리 때문에 둘만 있는 조용한 거실에서도 가족의 말이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TV도 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온 세상이 시끄러워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소리만 멈출 수 있게 해 준다면 어디든 찾아가서 매달리고 싶었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소개받고 가게 되었다. 유능한 이비인후과 의사이며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잘 나가던 교수로 근무하다가 개업한 병원이라고 했다. 예약하고 4시간 이상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환자가 넘치는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예약하고 기다렸다.
소파 구석진 자리에 눌러앉아 기다리는 6시간은 공포였다. 만약 이 병원의 유능한 의사가 발동기 소리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 그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야 했다. 현재로선 단 1초도 견디는 건 고통이었다.
검사 결과는 약간의 난청이 있을 뿐 특별한 문제는 없으니, 처방해 준 약 먹고 그냥 보름 뒤에 오라는 말만 툭 던지듯이 뱉는다. 평생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죽을 맛이었다.
절망감을 안고 다시 찾아간 곳은 동네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이비인후과였다.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다른 병원과 달리 기다리는 환자는 고작 한두 명뿐이었다. 곧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오로지 소리만 멈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끊임없이 되뇌었다.
같은 검사 하는데도 젊은 의사의 따뜻하고 친절한 소견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안정시키며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생각을 밝게 가지라고 주문했다. 꾸준히 치료만 잘 받으면 곧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눈이 나빠지면 안경 쓰듯이 귀가 안 들리면 보청기를 끼면 될 일이었다.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히 2주 만에 발동기 소리는 멈추었고 6개월간 꾸준한 치료 덕분에 소리 끝에 달려오는 윙윙거리는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자 가까이서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한여름 아침을 뒤흔드는 듯한 매미들의 떼창은 멈추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적막한 시간이면 더욱 크게 울리던 매미의 노랫소리는 요즘은 하루 중 들리지 않은 때가 더 많다. 즐겁고 행복한 일에 집중하면 신기하게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사색하고 글쓰기를 하며 보내는 요즘의 하루가 행복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그 한 생각이 깊을 우울증으로 갈 뻔한 나를 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