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서울로 김장하러 갑니다.
해마다 김장할 때면 즐겁다. 김장철이 거의 지나고 대게 12월 첫 주에 김장하게 되는 데 11월이 시작되면 그날이 기다려진다. 그것도 시골에 살면서 서울에 사는 큰 딸 사돈집에 가서 한다. 김장하는 날이 1년에 한 번 사돈과 함께 정을 나누는 날이기도 하다.
큰 사돈은 사업상 늘 바쁜 이유로 김장을 친척에게 사례하고 도움을 받았었다. 하지만 도움 주시던 분도 연세가 높아 중단하게 되어 도움이 필요한 처지가 되었다. 큰 며느리인 우리 큰딸도 아이가 어릴 뿐 아니라 나이만 꽉 들었지, 김장일을 거들만큼 내가 가르치지 못했다. 작은 며느리인 딸의 손아랫동서도 결혼 생활을 몇 년 먼저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돈은 마음이 넉넉한 분이었다. 해마다 고향 시골에서 김장 도움을 받으면서도 넉넉하게 준비해서 병환 중인 작은 며느리의 친정 부모 몫까지 챙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큰며느리인 내 딸의 몫까지 늘어난 상황에 어떡하든 내가 도움이 되고 싶던 참이었다.
사돈과 김장을 함께 하기 시작한 지 5년 됐다. 당시에는 큰 딸은 작은 애가 첫돌 무렵이었다. 아기가 어려서 김장을 제대로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사돈은 근무를 마치고 오면 모든 준비를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딸은 그런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가 너 대신 하면 돼. 그게 뭐 어렵다고?"
"이 참에 사돈하고 친해지면 더 편하게 지낼 기회도 되니까 시어머니께 말씀드려."
이렇게 해서 시작된 함께하는 김장은 햇수가 거듭되면서 어려웠던 관계가 편하고 스스럼없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사돈은 사업상 김장철이 더 바쁘다. 그래서 대부분 김장이 끝날 즈음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2월 첫 주에 김장하는 날로 잡는다. 특히 배추의 속 재료를 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기에 처음 함께 하는 해부터 이렇게 시작했다.
마늘, 생강, 고춧가루 빻는 것과 젓갈 준비는 사돈이 준비하고, 무, 파, 갓 등 손질하고 씻고 써는 등 잔손질이 많이 가는 것은 시간이 많은 내가 하기로 했다. 배추는 절임 배추로 사용했다.
이렇게 처음 시작한 배추의 속에 들어갈 재료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사돈도 남의 손에 의지해서 먹던 김장을, 며느리들 해줄 생각에 아들의 장모 믿고 넉넉하게 준비하려던 것이 엄청난 양이 된 것이다.
하기야 당시는 남의 손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사돈이나, 어머니의 요리법에 따라 영혼 없이 하던 내 솜씨가 합쳐져서 막상 당면 문제가 되니 양을 조절할 수 없었다. 최후의 보루는 양념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인심이 후한 사돈은 양념을 아끼지 않고 넣으니,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었다.
그 마음 씀이었으니 건강이 안 좋은 사돈을 위해서 넉넉하게 준비해서 김장을 마련해 주었을 테이다. 역시 베푸는 삶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후한 인심 덕분에 한차례 사업 실패하고도 거뜬히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배려의 삶이 바탕에 깔려있어서 가능했을 것 같다.
배추를 버무리기 시작하니 손자들도 김장 거들겠다고 야단이다. 옛날 우리 어릴 때 같으면 당최 근접도 못 하게 막을 테지만, 옷에 양념이 묻더라도 비닐장갑 끼워주고 한쪽에서 김장 체험을 하도록 배려할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러나 양념 바른 배추 한 잎 쌈을 우악스럽게 먹어대는 손자 녀석의 귀여운 표정은 어른의 배려가 아니라 손자가 주는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다.
배추를 버무리면서 느낀 거지만, 사돈의 관점에서 두 며느리의 어설픈 손동작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짐작이 간다. 작년까지도 어설펐던 솜씨가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일취월장했다. 속도는 아직 느리지만 솜씨가 제법 안정되고 있었다. 그런 며느리들한테 사돈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며느리들이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생각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 딸이 사돈의 며느리인 것이 무척 감사했다.
나도 곧 며느리를 보겠지만 사돈이 하시는 모습이 감동이었고 또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며느리도 어른을 공경하기를 몸소 실천하며 게을리 않아야 하지만, 어른도 넉넉한 마음으로 젊은이를 아우르고 품을 수 있는 배려심이 있어야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겠다. 사돈은 그런 모습의 본보기였다.
김장은 예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늘 어머니와 하던 김장이라 주도적이진 않았지만, 속도만큼은 뒤지지 않기에 자신 있었다. 다섯 집에 가야 할 삼십여 개가 넘는 김치통이 어느새 채워지고 배추의 양과 양념의 양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사돈은 그것도 신기하다며 역시 칭찬 일색이었다.
김장이 마무리될 즈음이면 사돈은 돼지 수육을 만들고, 전복, 굴, 해삼 등 각종 해산물과 각 가족의 최애 음식들을 한자리에 준비하고 양가가 모여서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 이쯤 되면 어려운 사돈간이 아니라 친가족 같은 분위기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끌어내는 것은 손자들의 역할이 크다. 손자들이 화제의 주인공들이 되고 분위기를 한충 고조시키게 되니 김장하는 날은 마치 파티하는 것 같다.
사돈과 함께 하는 김장은 모두가 어울려서 함께 하는 연례행사지만, 온가족이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배추를 버무리면서도 사돈의 말 중에 김장담그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그래도 당신 며느리들은 김치를 좋아해서 너무 다행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다행이었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사돈과 김장하면서 그 어려움의 벽을 허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내가 해마다 김장철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사돈과 함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벌써 내년 김장이 기다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