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고 노래하는 이솔로몬 작가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느낀 생각을 담고자 했던 작은 표현들이 글이 되었다. 그 책은 손에 쏙 안길 만큼 작은 산문집이고, 표지는 양장으로 되어 있다. 단단한 겉표지의 그림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단조로운 빌라의 외형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가가 거주할 것 같은 느낌의 선명하게 두드러져 보이는 창문에는 환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그 밝은 불빛이 희망의 빛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귀엽고 작은 산문집은 제본이 잘 되어 있는 데다가 표지까지 양장으로 되어 있어서 아주 탄탄하게 만들어졌다. 얼핏 드는 생각이 마치 책 속의 문장을 안락하게 지켜 줄 것 같이, 울타리를 연상케 했다. 그 안에는 자음과 모음으로 연결된 깊은 고뇌의 순간들이 응집되어 글이 되고 꽃이 되었다.
창문 너머에서 비추는 희망의 빛으로 갖가지 꽃의 향연이 책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깊고 푸른 청춘이 갈망을 꿈꾸는 글의 노래는, 그 책의 단단한 표지가 울타리가 되어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 같았다. 마치 울타리 속에서 다양한 꽃씨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아하여 알록달록하게 꿈의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 꽃씨의 이야기는 우연히 시작됐다. 겨울 한가운데쯤, 베란다 한쪽 그물 의자에 앉아서 쏟아지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베란다에는 한겨울에도 햇볕이 가득해서 갖가지의 제라늄이 한창 꽃 피우고 있었다. 꽃을 바라보다, 커피를 한 모금씩 입안에 굴리며 산문집을 읽고 있었다.
작은 산문집에는 길지 않은 글들이 페이지마다 눈송이를 한 움큼씩 떼어다 놓은 것처럼 소복소복 올려져 있었다. 눈의 질감처럼 처음에 부드럽고 쉽게 읽었지만, 의미를 아는 건 쉽지 않았다. 짤막하게 함축된 글들 사이에 문장들이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그때 비로소 느꼈다. 문장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내가 싫었다. 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건 아무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두꺼운 표지 안에 펼쳐진 이야기에는 한 꼭지마다 긴 여백이 남겨 있었다. 글에는 읽은 이가 사유하도록 작가의 슬픈 고뇌의 시간이 물감처럼 콕콕 배 있었다. 마치 그 공간을 배려한 것처럼 그것조차 무의미하지 않았다. 고독할 때 글이 잘 써진다는 작가의 말처럼 내면에 이미 고독이 내장된 것 같았다. 그러한 모습이 문장 속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문장을 읽고, 꽃을 바라보다 나른한 햇볕에 빠져 커피 맛을 잃을 때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은 한 꼭지마다 갖가지 모양으로 피는 제라늄과 흡사했다. 글마다 전하는 메시지가 달랐다. 의미는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이었지만, 그렇게 바라본 꽃의 이야기가 산문집과 닿았고, 처음으로 공식 카페에 독후감을 올리게 되었다. 겁도 없이 순전히 이웃의 권유였지만, 못 이기는 척하고 올린 글에 불과했다.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한편의 감상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습작의 기회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용기도 없으면서 한 뼘씩 커가는 내 생각이 자신감만 부풀렸다. 일단 그냥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발짝 성큼 지나고 난 뒤에 다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에 닿은 문장을 만나면 나의 글은 부끄러움과 좌절감이 동시에 들었다. 온전히 내 몫이었던 그 마음들이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설렘과 꾸준함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약 1년 6개월 동안 산문집의 꼭지마다 내 생각을 편지 쓰는 마음으로 공식 카페에 글을 올리고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도 며칠 사이로 꾸준히 글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글이 뭐라고, 이렇게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글을 슬쩍 놓고 싶을 때가 많았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글을 놓지 못하게 했다.
생각은 한 순간이다. 그 한 생각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그걸 경험했다. 생각을 내려놓은 시점인 어느 날, 카페에 올린 글에 이솔로몬 작가가 직접 쓴 격려의 답글에서 힘을 얻게 되었다. 짧은 격려의 글이었지만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게 한 힘이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쓸 때나 쓰려는 글감을 생각하면 언제나 설렜다. 그 설렘으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다.
잘 써야겠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가졌던 꿈을 다시 꾸게 했고, 쓰면서 삶이 즐거워졌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삶은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그중에 아주 평범한 보통의 주부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일상에는 몇 가지 특징이 생겼다. 그중 중요한 변화는 책을 찾아서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유하고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어졌다. 틈새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생겼다.
10여 년 전에 열었던 블로그를 다시 재정비하고 글을 모았다. 그렇게 글쓰기 하며 모아온 시간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브런치를 통해서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또 책이 기다리고 있다. 이 얼마나 긍정의 발전인가. 이 모두는 꾸준함에 있었다. 작년 봄, 그냥 걸어보자고 마음먹고 걸었던 5만 보 걷기 도전처럼 걷기 위해 걷는 사람이라도 좋다. 지금처럼만 글을 쓰자. 그 길 위에는 또 한 사람의 스승이 있다. 지치지 않게 늘 사후 관리에 진심인 더블와이파파님이 계시다. 늘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또 누구보다 더 잘됐으면 좋겠다.
명대성 작가님이 최신 출간하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태도의 힘>을 읽다가 p41에서 눈길이 멈췄다. '꾸준함이 이긴다' 의 소제목을 읽고 쓰려고 했던 글이 길어졌다. 그 글은 행간마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고, 쉽게 읽히지만 절대 쉽지않은 글들은 나를 사유하게 했다.그렇게 오래도록 지속될 것 같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태도의 힘 : 네이버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