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맞는 이른 아침의 하늘 풍경은 언제나 새롭게 느껴진다.
조금씩 달라지는 바람의 차이와 연두 물결을 이루던 숲이 점점 푸르러지니 그 모습이 참으로 장엄하다.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 그대도 나처럼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눈 맞추고 있으면 좋겠다.
나는 풀 뽑기를 좋아한다. 요즘 길가를 산책하다 보면 도로변으로 풀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곳곳마다 아이 키만큼 자라 있어서 눈에 거슬리면 한 움큼 뽑아 풀숲으로 휙 집어던진다.
어떤 날은 산책길 따라 조경한 꽃잔디에 작은 풀꽃처럼 피어나는 풀은 산책하다 말고 아예 주저앉아 풀을 뽑는다. 그런데 곳곳마다 엉성하게 작년 보다 풀은 적은데, 그 많던 꽃잔디는 어디로 간 걸까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짬 나는 대로 이른 아침에 도량에 올라가 풀 뽑으며 시간을 보낸다. 풀 뽑을 때는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살아 내느라 긴장되었던 세포들이 휴식을 취하듯 여유롭게 완화되는 것처럼 넉넉해진다.
잔디밭에 잔디 보다 더 빼곡하게 서식해 있는 풀들이라도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풀이 많아서 뽑아야 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면, 많은 대로 풀 뽑으며 명상할 시간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풀 뽑는 시간은 명상하는 시간이다. 아무런 절차와 격식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풀 뽑는 것에만 집중한다. 풀 뽑다 말고 하늘을 쳐다본다. 찬란하게 퍼져 올라오는 햇살을 받으면 눈물이 날 만큼 환희롭다.
건강하게 살아있음이 감사하며, 감당할 만큼의 고통을 겪으므로 고통으로 여기지 않게 해 주니 이 또한 감사하다. 풀 뽑는 시간은 이 모두를 아우른다.
똑똑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잔디의 숨통을 조이는 잡초들의 솜털 뭉텅이를 어떡하면 빠르게 제거할지만 생각한다. 잡풀의 세계도 사람 사는 모습과 닮은 점이 있으면서도 못된 점이 있다.
잔디가 자라는 틈새로 자기 멋으로 자리 잡고 크면 될 것을, 뿌리 밑으로 잠복한다. 마음 맞는 아이들끼리 뭉쳐진 뿌리는 솜뭉치처럼 부풀어진다. 이렇게 부푼 뿌리 뭉치는 잔디의 숨통을 조이듯 뿌리를 칭칭 동여매고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한다.
잔디에게는 존재감도 없던 잡초의 뿌리 뭉텅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잔디를 장렬히 전사 시킨다. 푸른 광장을 꿈꾸던 잔디밭은, 봄이면 온통 풀밭이다. 잔디의 흔적은 점차 사라지고 잡초투성이로 변해간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청정 도량 숨은 곳곳에 잡풀이 기세 등등 하게 자리 잡아가는 꼴을 더 이상 볼 수만은 없겠다. 이런저런 생각이 미치는 순간, 호미와 엉덩이 의자, 포대 자루를 들었다.
풀 뽑기에 몰입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것도 하나하나 들추며 뽑다 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더군다나 가끔씩 내려주는 비는 좋은 영양가이다. 숨바꼭질 하듯 돌아서면 쑥쑥 커서 나를 놀리듯 한다. 귀여운 녀석들..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이다. 풀 뽑다 말고 쳐다보면 유일하게 하늘과 마주하며 오래 바라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