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의 일이다.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해갈을 기다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갈증 하던 농작물이
늘어진 잎들을 세우며 생기가 나기 시작했다.
연일 지속되던 무더위에 지쳤는지
통통하던 사과는 색을 잃고 주름진 얼굴 모양으로
겨우 달려 있다.
이 비가 스며들면 회복되려나
뼛속까지 스며들던 더위가 진정되었는지
열린 창문 틈으로 초 저녁 식은 온도가 살갗에 닿는다.
투두두둑
처마 끝에 매달린 소리가 정겹다.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어쩌면 이 순간을 함께 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같이
비가 오면 거리로 나갔다.
혼자면 더 좋았던 길을 가족과 함께 걸었다.
추적추적
발자국을 뗄 때마다 걸음걸음 묻어 올라온다.
타닥타닥
우산을 두드리며 말을 건다.
"나는 언제나 그대와 함께 해요"
나는 그 소리를
비가 전하는 말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말을 하면 따라 한다.
내가 말을 멈추면 따라서 멈춘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당신을 또 만날 건데 당신은?"
"음.."
늦은 대답에 옆구리 찔러 재촉한다.
"생각해 보고..."
기대했던 스무 번째 물음도 처음처럼 한다.
천둥 치듯이 무너지던 자존심과 허탈해 하던 마음은 어디 가고
박장대소하며 쏘아붙인다.
"헛살았어. 내가 헛살았다고"
우리는 동반인이라며
그래도 아이 셋 키우고 귀여운 손자 손녀까지 있으니
백 점이란다.
"그런데 왜?"
다시 만나는 일은 언제나 그때의 일이라고 한다.
그 시절
지금 아니면 놓칠 것 같아 먼저 프러포즈 했던
첫 번째 용기가 지금까지 발목 잡혀
난 언제나 을이다.
지금까지 함께 한 모든 시간의
행복 총량으로 볼 때 행복지수는 높았던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가족이
어느 날 곁에 없을 때를 생각하면
누구나처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가족을 위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덜 후회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잘 하기 보다
조금 더 이해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을의 인생이었어도
내 삶의 전부를 갑의 인생처럼 만들어 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