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소리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마지막 회

by 마리혜

내 몸 안은 늘 소란스럽다. 한 번씩 정신을 쏙 빼놓는 이 눈치 없는 소리가 귓가에 왕왕거린다. 밀폐된 통에 갇혀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신음하는 바람 소리다.

마치 저문 가을 녘. 마른 숲 사이를 헤집고 스산하게 돌아가는 바람과 같은 파장을 일으킨다. 휘잉 휘잉, 숲 속을 걷다가 희미한 발소리 의식하듯이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탐구하듯이 숲을 헤매다 보면, 미세한 바람에 마음까지 휘둘린다. 차라리 태풍일지라도 몸 밖이면 얼마든지 좋겠다. 요즘 부쩍 잦아진 바람 소리가 몸마저 흔들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고 바람소리를 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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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 뒤치락하며 든 잠이라도 잠은 잠인 줄 안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어둠의 숲을 용케도 잘 빠져나온 것 같다. 어제에 비하면 조금 나아진 듯했다. 여명이 트기 전, 마른 숲에서 멀어지기 위해 숲으로 달려 나왔다.

어지러운 바람 소리에 수천 마리쯤이나 되는 매미 녀석까지 합세해 질러대던 어제에 비하면, 오늘 발걸음은 제법 거뜬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멈춘 발끝으로 보라색 엉겅퀴가 눈에 들어온다. 그 모양이 꼭 귀마개 닮았다. 떼어다 귀에 꽂으면, 소란스럽게 울리는 바람 소리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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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1 耳鳴]

명사 몸 밖에 음원(音源)이 없는데도 잡음이 들리는 병적인 상태. 귓병, 알코올 의존증, 고혈압 따위가 그 원인이다.(출처-네이버 사전)

며칠 약에 의지했던 이명을 제대로 달래지 못했던 어제는, 오늘이 오기만 기다렸다. 아침 일찍 서둘러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고 돌아서 나오는 순간부터, 미세한 변화에 왠지 기분부터 달라진다.


그렇듯 뭐든 병 자체보다 병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처음엔 나도 그러지 못했다. 8년 전 처음 이명이 오고, 몹시 두려웠던 것을 기억하면 아찔하다. 당시엔 터질 듯이 뇌를 치는 듯한 소리는 지옥 같았다.


한동안은 앞으로 나에게 고요한 세상이란 없을 줄 알았다. 매일 머릿속에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웅장한 기계 소음으로만 가득한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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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이 좋지 않으면 안경을 끼듯이, 귀가 잘 안 들리면 보청기를 끼는 겁니다. ”

뭐든 생각하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스님의 말씀이었다. 그제야 스님의 귀에 걸린 보청기가 눈에 들어왔다. 깊은 수행을 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 주지 스님은 이미 30대부터 착용하셨다는 보청기가 내가 답답한 상황에 이르니 비로소 눈에 들어오다니 가슴이 울컥했었다.


한순간에 두려움을 내려놓았던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이후로 꾸준한 치료 덕분에 점차 엷어진 소리로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도 몸을 과하게 쓰면 불현듯 찾아온다. 하지만 그때 비하면 양반이지. 스스로 위안한다.

믿어질지 모르겠다. 이솔로몬 덕질 시작하고, 글을 쓰고, 블로그 활동하며 글 쓰며 보낸 약 4년 동안, 심한 이명이 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즐거우면 되는 건가. 역시 즐겁고 행복한 마음은 치료에 도움이 된다.


내 나이 예순, 성덕이 되었습니다 | 마리혜 - 교보문고

퇴고를 끝내고, 감기가 들락날락하며 두어 달 버티는 동안 이명이 다시 찾아왔다. 또 며칠 버티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때를 놓친 것 같다. 약으로 다스리다 병원에 제때에 가지 못했다. 내 안의 소리는 점점 더 거세져 어제는 조금 힘겨운 날이었다.


이명도 내 몸을 돌봐주지 않을 때 소리 없이 찾아온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반비례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늙어가겠지.


이제는 나에게 좀 더 다정해 보자. 나의 몸이 말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봐야겠다. 어제는 답답했지만, 오늘은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오늘의 글을 끝으로 <예순 즐겁게 익어가는 중입니다> 브런치 북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져주시고 구독과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리혜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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