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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혜 Nov 25. 2024

일일초가 다시 태어났다

꼭 3개월 전이었다. 

잔병치레라고는 없던 사람이 이곳저곳 탈이 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무릎 관절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시점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무릎관절에 문제가 생기면 활동하는 데 위협을 느꼈는지 남편은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 나이 되면 대부분 성인병약 몇 알 정도는 먹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다. 건강에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실제로 마른 체형이라 행동이 날렵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탁구 정도는 무릎관절을 무리하게 쓸 만한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이 무릎 통증을 겪으면서 내가 볼 때 탁구를 쳐야 한다는 것. 탁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 탁구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 동원한다.라는 일념으로 치료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통증 치료의 본질보다 무릎 통증으로 인해 활동하지 못할까봐 더 불안해했다.


목적이 어떻든 이제까지 자신의 몸을 각별하게 챙긴 적 없는 남편이 지금이라도 자신을 돌보려고 애쓰는 걸 보면 오히려 다행이다. 몸이 늙고 병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남편은 퉁퉁 부은 다리를 잡고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다. 잔뜩 내려앉은 다크서클로 밤새 3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았다. 초췌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새삼 안쓰러운 생각에 병원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진료 예약하고, 오일장 난전에 들러 일일초 화분을 두 개 샀다. 남편에게 격려이자 위로의 화분인 샘이었다. 그러나 예쁘게 정말 사랑스럽게 피던 꽃나무가 사랑이 부족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더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돌아보니 흰색과 빨간색 일일초가 담긴 화분을 부끄러워 우물쭈물 멋쩍게 보여주던 나와 분명히 마음은 반가운데 표정은 시큼했던 가족의 얼굴을 사랑초가 알아본 건 아닐지 생각했다. 특별히 남편을 사랑하는 의미 담고 들인 꽃이기에 무척 아쉬웠다. 


꽃이 사라지고 아쉬움에 화분은 흙 정리만 했고 가끔 흙을 적실 물만 주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싹이 파랗게 올라왔다. 꾸물꾸물 올라오는 모양이 꼭 일일초 같았다. 


널 미리 알아보고 햇볕 가득한 창가로 데려다준 마음을 알아챈 걸까. 이전에 잘 돌보지 못해 미안했던 그 마음까지도 다 알아버린 것 같다. 물 주면서 뚫어지게 눈 맞춤하며 오갔던 에너지가 전해진 것 같다.


완벽한 모습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서 피는 일일초가 오늘 아침 뽀얗게 꽃잎을 올리고 있었다. 모체가 남기고 간 씨앗이 발아해서 꽃을 피우니 사소한 것 같아도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에 숙연해진다.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작은 잎새들이 잘 커 주면 작은 화분에 옮겨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 


모체 일일초가 남기고 간 씨앗이 흙 밑에서 발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남편도 여러 정보를 안내받고 검사와 치료받게 됐다. 3개월 전보다 호전된 상태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고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남편은 특별한 질병이 없으니 그동안 챙겨 먹을 약은 없었다. 영양제를 아무리 권해도 극구 사양하더니 무릎관절에 관한 영양제는 찾아가며 챙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양제나 상시 먹는 약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완벽한 건강을 바라지 않는다. 나이에 맞게 몸을 잘 다스리며 건강한 몸으로 지켜가길 바랄 뿐이다.


일일초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남편도, 남편과 함께 건강하게 지내고 싶은 나를 위해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야겠다. 무엇을 통해서라도.



#일일초  #생명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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