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고향같은 존재

큰오빠의 안부 인사

by 마리혜

#추억과 고향같은 존재.

저는 오늘도 역시 무심한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인 내가 먼저 전화하겠다고 약속하고선 또 한 발 늦었습니다. 8남매의 셋째인 저는, 어려서부터 두 오빠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오빠들 틈에 기웃거리다가, 딱지치고, 구슬치기하고, 메뚜기 치기 놀이할 때 끼어들어서 같이 놀았어요. 귀찮게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남자애 취급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오빠들이 잘 데리고 놀아주었던 것 같아요.


역시 꿀맛 같은 재미는 썰매 타기였어요. 동네 도랑에서 오빠들이 스키 타듯이 외발 썰매로 쌩쌩 날라 다녔습니다. 오빠들이 타는 모습이 신나보여서 나도 썰매 만들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느 날 오빠가 만들어 준 두발 달린 썰매를 타고, 오빠들 뒤꽁무니를 따라 죽을 힘을 다해서 쫓아가던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아주 어렸을 땐 여자애들과 추억은 그다지 없는 편입니다. 주로 오빠들이 사내아이 같은 여동생을 잘 데리고 놀아 주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오빠들은 저에겐 추억이고 고향 같은 존재들입니다. 70대 중반인 큰 오빠는, 항상 먼저 안부 전화를 해주세요. 전화받으면, 인사를 하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게 됩니다.


“누가 먼저 하면 어떠냐.”

“일하다가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8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멀리 떨어져 사는 여동생이, 이 나이가 되도 잘 지내는지 걱정스러운가 봅니다. 이 서방도 잘 있는지. 아이들은? 시댁 어른들은 건강이 좋으신지 하고요. 전화 한 통 제때 못하는 무뚝뚝한 여동생의 가족을, 한 사람 한 사람 짚어가며 안부를 묻습니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늘 아픈 아버지 대신해서 일찍 독립하여 가장 노릇을 했습니다. 동생들이 잘못하면 대표로 혼나기도 했고요. 말없이 묵묵하게 일만 하던 오빠였답니다. 그런 저런 생각하면 가슴 한편 뭉클해집니다. 앨심히 착하게 잘 살아오신 큰 오빠는,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소일거리로 짬짬이 교통정리하며 보냅니다.


교통정리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해 하세요. 즐겁게 보내는 시간들로 건강도 챙길 수 있어서 참 좋아하시고요. 그런 오빠를 보면 가끔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눈물도 나고 좋기도 해요.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늘 그렇게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빠 미안해요, 다음번엔 내가 먼저 할게요.”

“늘 건강하시고요”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 내가 먼저 하면 된다.”


오빠의 말은 늘 한결같습니다.

“오빠, 고마워요. 건강하게 지내세요.”

“난 괜찮다. 너도 건강 관리 잘하고.”

큰오빠에겐 늘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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