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동서들

제삿

by 마리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지 10주기 되는 날입니다. 시동생 내외가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근무를 마치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울산에서 달려와 주었습니다.


큰 시누이도 대구에서 첫 버스를 타고 참석해 주었습니다. 평일임에도 아버님 제사만큼은 꼭 참석하려고 애쓰는 가족들이랍니다.


우리 시댁은 제사를 일 년에 여섯 번 모십니다. 여러 차례 간소화하자는 의견이 동서들 사이에 분분했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동서들이 본인들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그 고충에는 큰 형님도 이제는 힘들어하실 나이니 일을 덜자는 말을 끼어넣습니다.


그 생각은 맏형님인 저의 생각이 담긴 건 아니지만, 맏형님을 위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그러마 하고 약속하시지만, 막상 제삿날이 다가오면 갈피를 못 잡으셨어요.


늘 해오시던 제사를 생략하거나 모시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은 허락하지 못하셨던 거지요.


분분했던 이야기는 돌아서 결국 맏며느리인 저에게 의견을 묻습니다. 어머니와 동서들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힘을 실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생각은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죠.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제사를 지내고 싶어 하시니까요.


예전 보다 한결 간단하고 수월해진 제사 문화는 그럼에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니는 제사를 그대로 고집할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심정이세요.


저는 언제나 어머니 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을 지으셔도 어머니 하시는 대로 따른다고요.


저의 생각은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제사 모시고 싶어 하시는 것을 따르더라도 그 세월이 얼마나 될까요.


어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이 드셔서 제사 모시는 햇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 것을 감수해서라도 어머니의 의견을 맞춰드리고 싶은데, 젊은 동서들은 힘이 셉니다. 아마 다수의 의견에 따라 간소화해질 걸로 예상이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습니다.

동서들 덕분에 은근히 편해졌습니다. 오히려 제가 동서들 틈을 기웃거리면서 일거리를 달라고 보챕니다.


“형님, 우리가 다 할 테니까 뜨뜻한 거실 소파에서 쉬고 계세요.”

저보다 일을 더 잘하는 동서들 덕분에 힘들지 않게 제사를 잘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무뚝뚝하지만 어머니한테는 알콩달콩하게 잘 보살펴 드리는 막내동서. 통통거리길 잘하지만 상냥하고 어머니한테 참 잘하는 둘째 동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늘 애틋해하는 동서들이랍니다.


나보다 더 잘하는 동서들 덕분에 오늘 하루 참 편하게 지나갔습니다.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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