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 할매의 버스 여행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아들!

by 마리혜

가끔 아날로그 감성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장거리는 주로 대중교통보다 승용차로 움직였습니다. 시간 구애를 받지 않고 언제든 출발할 수 있어서 움직이기가 편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음 먹고 버스로 움직여 보기로 했습니다.


시외버스 운행 시간을 맞춰서 타면 목적지 터미널까지는 안전하게 데려다주겠지요. 그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서울의 경우, 친정 가는 지하철 길은 어찌어찌 가겠는데, 낯선 곳을 찾아갈 때는 하얀 백지 위에 먹물 한 점으로 남겨진 느낌입니다.


모처럼 KTX 타고 서울 입성했습니다. 점잖은 체면에 약속 시간은 다 되어가고, 개찰구 앞에서 표를 구할 줄 몰라서 쩔쩔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움을 받고 표를 구하긴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 하면 아찔합니다.


친절하고 잘 생기기까지 한 젊은 청년이 잘 일러 준 덕분에 겨우 촌티 면했습니다. 알고 보면 어렵지 않은 일이, 어쩌다 서울 가는 촌 할매는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되레 복잡해진 매표 구입 절차라고 불평하고 투덜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래저래 서울 가서 촌티 겪으면, 나이 먹은 탓인가 아니면 문명의 뒷길을 거니는 촌 아낙의 무지인가 싶어 살짝 우울해집니다. 우울하지 않으려고, 나의 애마에 시동을 걸고 언제든 훌쩍 다녀옵니다.


출근 시간, 지하철역 인파들 사이를 누비고 죽으라고 뛰던 그 시절이 까마득합니다. 그것도 전철을 이용해 본 지 오래되어 촌 할매 다 됐습니다. 지난여름, 울산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더랬죠.


마음먹고 울산으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아날로그 감성도 느껴보고, 유유자적하게 낭만을 즐기러 갔었지요. 아들 집에서 일주일 휴가 보낼 생각이었어요.


도착해서 첫날 잘 자고 일어나 바닥을 디디다가 발바닥 골절돼버렸습니다. 낭만 감성을 즐기기는커녕 깁스하고 어쩔 수 없이 틀어 박혀 감옥살이했습니다. 아들과 걷기로 한 약속도 무산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깁스한 발로 아들 몰래 시내에 버스 타고 나갔습니다. 아들 퇴근 시간 맞춰서 돌아오겠다고 했던 것이 버스를 잘못 타서 시내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물어물어서 겨우 시간을 맞춰서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카페에 앉아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위안은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살뜰하게 시외버스 터미널로 태워 준 아들 덕분에 편안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탄 버스를 오래도록 지켜보던 아들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엄마, 지난여름에 엄마 모셔다 드린 시외버스 터미널 기억나죠? 지금 지나고 있어요. 그때 생각나서 전화하고 싶었어요.”


이런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엄마가 탄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바라보고 섰더니, 그 길을 지나면서 엄마 생각하고 전화하다니.


아들아, 고맙다. 네가 장가가면 엄마 생각은 아주 조금만 해도 된단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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