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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서원 Sep 16. 2024

명절 증후군이 남긴 상흔

시간의 길목에서 명절을 생각합니다.

사람이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더군요. 지옥을 살아도 익숙한 지옥이 더 낫다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늘 해오던 것이라 내성이 생겨서 그렇답니다. 인이 박혀서 웬만큼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속성이 적응하고 이겨내는 것이라 통각이 무뎌져서 지옥이라 못 느끼고 살아들 갑니다. 고통이란 것은 시간이 가면 적응을 넘어 익숙해지고 새로운 단계로 체질 개선이 되어 버리는 것이겠지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새로 부여한다 해도 지나간 지옥이 되돌아봐진다는 것을 두고, 습관의 고약한 배려라 해야 할지, 혜택이라 해야 할지 각자의 해석에 맡깁니다.


'가업을 접고 봉급생활자가 되었습니다.'라는 글을 써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많은 시간을 자영업자로 살면서 생긴 생채기들을 이제야 보듬고 치유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상흔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나의 해방일지를 쓰고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완전하게 다른 세상, 새로운 타임존에 살고 있지만  먼 기억 속의 통각이 명절이 가까이 오는 기간에는 한 번씩 현실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우리(남편과 나)는 2배속으로 바빴습니다. 일상의 기본 베이스와 합산된 우리의 행동반경은 본가의 명절 상차림과 가게의 할 일까지, 몸도 마음도 추석 명절을 서포트하는데  온통 신경이 곤두서있었죠.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명절 비용만 드리면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장을 봐서 들여놓아야 하고 그것을 같이 차려내야 하는 모든 공정으로 그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그 당시의 확고부동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과거지사로 떠올리며 옛말 하는 것으로 치부되지만, 그때 그 당시의 삶의 무게란 등이 휠 것 같은 치명적인 무게로 왔었죠. 명절이라는 축제 뒤에는 우리 부부에게만 지워진 고유한 세팅값이 있었고 그 값에 해당하는 노고를 치뤄내기 위해 정신무장을 각별히 해야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에 비하면 호사스러운 타임존에 있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백병전이었지요. 몸으로 때워야만 했고 지지 않아야 하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하루 24시간은 이미 정해졌으니 시간을 만들어 쓰야 일이 돌아갔습니다. 밤잠도 좀 덜 자야 했고 새벽잠도 줄여가며 명절이라는 특별기간을 살았습니다. 자영업자에게 있어서, 요식업에 종사해 본 사람이라면 너무도 현실적 과제가 있지요. 명절에 나가는  보너스도 부담이었고, 급여는 급여대로 나가야 했으며, 법정 공휴일로 지정한 빨간 날은 영업을 하지 않고 쉬었으니 수입은 그만큼 없었죠. 남들은 명절 특수를 보겠다고 가게를 쉬지 않았고 우리가 쉬는 까닭으로 주변이 잘되는 원인이 되어주기도 해 대목을 크게 보게 했었지요. 명절 떡값과 영업을 못한 손실 비용을 합하면 출혈이 적지는 않았습니다. 원래부터도 뜨거운 찌게 전문점이라 여름 장사는 재미가 없는 평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돈으로 커버가 되는 면이 있는가 하면,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살려고 친인척들을 방문하는 일들과 합쳐서 몸과 마음이 같이 소진되었습니다. 명절 끝에서는 항상 몸살기가 몸에 남아 힘든 시간을 보내던 남편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치른 명절 뒤끝에 남은 허허한 감정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었죠. 이러저러한 대소사 모든 일을 다 해내고 살았습니다. 그때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예로부터 한 집안의 수장은 함부로 안 죽이고 지켜준다."라고 했지요. 그때는 저도 미숙하고 정신없이 살 때라 누구의 말이었는지도 몰랐던 그 말을 종교처럼 믿고 살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연이어 폭염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건강에 유의하십시오.'라는 경고 문자가 들어옵니다. 남편은 이런저런 일들을 일선에서 해내다 보니 명절과 명절 음식에 대한 개념을 새로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날씨에 꼭 명절음식을 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며 간단하게 꼭 먹을 것 몇 가지만 실용적으로 해서 버리는 음식이 없게 하자고 먼저 의견을 냅니다. 저야 두말없이 좋지요. 이것도 윗대 부모님이 안 계시니 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세월을 같이 해왔고 나를 잘 서포트해 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때는 그렇게도 섭섭하고 밉더니 이제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내편이 되었습니다. 이런 때가 올 줄 알았다면 좀 살살 미워했을 텐데 아쉽고 미안합니다. 추석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말처럼  이번 추은 내 삶이 시작된 이래로 최고의 추석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 쭉~프리한 명절이면 좋겠습니다. 잘 견뎠기에 누릴 수 있는 무한한 나의 혜택을 주변에 고루 나누어 쓰야겠습니다. 이거 현실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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