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빛나는 이름

19년 전 그 영화가 돌아온다

by 이슈피커
1.jpg 사진=퍼스트런, 글뫼

어느 여름날, 오래된 DVD를 정리하다가 손끝에 걸린 낡은 케이스 하나.

은빛 하이힐이 큼직하게 박힌 표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자꾸만 다시 보게 되는 영화다.

무언가를 열심히 살아낸 시절,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패션이 전부인 줄 알았던 런웨이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 영화가 19년 만에 돌아온다.

앤 해서웨이는 다시 앤디가 되고, 메릴 스트립은 여전히 미란다다.

그들이 뉴욕의 사무실에서 다시 마주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한없이 오래된 설렘으로 채워진다.

카메라는 이미 돌아가고 있고, 파리와 런던, 뉴욕을 오가며 이야기를 다시 꿰매고 있다.


속편 제작은 오랫동안 말만 무성했다.

기대는 접은 지 오래였는데 어느 날 문득 현실이 됐다.

그것도 원년 멤버 그대로, 원래 감독과 작가 그대로.

마치 오래된 옷장 속 프라다 코트를 꺼내 먼지를 털고 다시 걸치는 듯한 일이다.


내용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미란다는 이제 쇠퇴하는 인쇄 잡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틴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여전히 종이 위의 우아함을 고수하는 사람.

변하지 않는 자의 고독과 고집이, 이제는 어떤 풍경으로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2.jpg 사진=퍼스트런, 글뫼

에밀리 블런트도 복귀한다.

에밀리라는 인물은 여전히 차갑고, 여전히 야망에 찬 눈빛을 하고 있을까.

혹은 시간이 그녀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놓았을까.

앤디가 돌아오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아 대본을 맞춰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기대해도 좋다.


다시 떠오른 1편의 장면들.

노스웨스턴대 출신의 앤디가 고개를 푹 숙이고 면접을 보던 순간.

그러나 원작에서는 브라운대 졸업생이었다.

조금 더 시니컬하고, 유머를 아는 여자.

영화 속 앤디는 순하고 맑다.

차라리 무해해서 더 흔들리고, 더 사랑스럽다.


영화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원작 속 앤디가 뱉던 연기, 그것도 모두 지워졌다.

미란다는 소설에서는 일과 가정을 모두 잡았지만, 영화에서는 남편과 이혼한다.

완벽해 보이던 세계 속에도 결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앤디는 원작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영화에서는 우연한 인연 하나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아마 그래서일까, 우리는 영화 속 앤디에게 더 쉽게 마음이 간다.

그가 내일의 나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에밀리는 원작에서는 차갑지만 성실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에밀리는 조금 더 감정적이고, 때론 뾰족하다.

후배를 험담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칼끝을 내민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직장의 풍경이다.


앤디의 남자친구도 달라졌다.

소설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영어 교사.

영화에서는 요리사 네이트.

일과 사랑, 이상과 현실의 무게를 그리기 위한 설정 변경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더 현실적이고, 더 쓰렸다.

3.jpg 사진=퍼스트런, 글뫼

런웨이에 입사하게 된 계기도 다르다.

원작에서는 커리어를 위한 선택.

영화에서는 살기 위한 결정.

현실은 언제나 후자에 더 가깝다.


삭제된 장면도 있다.

미란다의 만취한 남편을 앤디가 설득하고, 무너지는 가정을 붙들던 순간.

결국 편집되었지만, 그런 앤디를 통해 미란다가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겠다.

그 장면이 있었다면, 앤디를 바라보는 미란다의 눈빛은 조금 더 따뜻했을지도 모른다.


2006년 개봉 당시, 영화는 전 세계에서 4천억 원 가까운 수익을 거뒀다.

한국에서도 137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드문 외화 흥행이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자신을 투영했다는 뜻일지도.


속편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19년의 세월은 누군가에겐 긴 이별이고, 누군가에겐 다시 꺼내는 꿈이다.

디지털 미디어와 1인 브랜드의 시대, 그 속에서 런웨이와 미란다, 앤디는 어떤 모습일까.


개봉은 내년 5월 1일이라고 한다.

시간이 좀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다시 그때의 영화를 꺼내어 보게 될지도 모른다.

4.jpg 사진=퍼스트런, 글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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