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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신박한 사극, 한국 대작 예고

이강 위에 흐르는 달의 이야기

by 이슈피커
1.jpg 사진=MBC 공식 홈페이지

저녁 뉴스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을 때였다. 화면 속에 낯선 제목이 흘러나왔다.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이내 드라마 예고 포스터가 하나씩 소개되는데, 종이 인형처럼 서로를 손에 쥐고 있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의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이야기라니, 오래된 전래담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듯한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강태오와 김세정의 얼굴에서 낯선 긴장을 보았다. 까칠한 세자와 당찬 부보상.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인물이 맞닿는 장면은, 두 세계가 한순간에 엉켜버리는 낯선 충돌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삶이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뒤집히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해 허둥대다가도, 결국은 그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듯이.

2.jpg 사진=MBC 공식 홈페이지

포스터 속 두 장면은 거울처럼 반사되어 있었다. 하나는 이강이 박달이를 들고 있는 모습. 다른 하나는 박달이가 세자 차림으로 이강을 손에 쥔 모습. 시선을 맞바꾸는 대신 서로의 자리를 비틀어 쥔 채 웃고 있는 장면은, 영혼이 바뀌었다는 설정을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너의 자리가 곧 나의 자리”라는 말 없는 선언처럼.


스페셜 포스터에서는 조금 더 장난스러운 상상력이 펼쳐졌다. 박달이의 모자 위에 조그맣게 축소된 세자가 앉아 있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냈다. 그 위로 번지는 수묵화 풍경은 낯설지 않은 조선의 배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담긴 눈빛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서로를 껴안은 표정이 묘하게 아련해, 잠시 웃다가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드라마의 줄거리를 들여다보면 더욱 흥미롭다. 웃음을 잃은 세자와 기억을 잃은 부보상. 둘은 각자의 상실을 안고 살아가다 어느 날 몸이 뒤바뀐다. 신분과 성격, 성별까지 모두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내야 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너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조금은 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무게가 있지 않은가.

3.jpg 사진=MBC 공식 홈페이지

강태오는 과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냉정한 세자의 옷을 입는다. 복수만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 갑자기 장터의 소란 속으로 던져졌을 때, 그 눈빛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김세정은 반대로 늘 씩씩한 청춘의 얼굴을 보여주던 배우였다. 이제는 세자의 자리에 서서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두 사람이 서로의 자리를 연기하는 과정은, 마치 배우 본인에게도 또 다른 시험처럼 보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드라마 소개로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젠가 내 삶에도 이런 뒤바뀜이 있었다. 원하지 않게 흘러들어간 자리, 준비되지 않은 역할, 그 안에서 느낀 낯선 공기. 처음엔 낯설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시야가 넓어졌다. 결국 그 자리가 내 안의 다른 얼굴을 끌어냈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가 다루는 ‘체인지’는 그래서 더 이상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형태로 반복되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이의 삶을 잠시나마 짊어지고, 그 무게를 체험하며 배우는 것. 그 안에서 웃음을 잃기도 하고, 잊었던 감정을 되찾기도 한다.


다음 달이면 드라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화면 속 달빛이 이강 위를 흐르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달은 언제나 자리를 바꾸지 않지만, 달빛을 받는 사람의 자리는 늘 바뀐다. 어쩌면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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