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상과 지하 중 어느 쪽인가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

by 이슈피커
1.jpg 사진= 기생충 영화 스틸컷

어느 비 오는 여름밤, 창밖을 내다보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기택 가족이 쫓기듯 반지하 집으로 돌아가던 날. 물바다로 변한 골목을 걸으며 툭툭 떨어지던 빗방울이 곧장 절망이 되던 순간.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명해진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21세기 최고의 영화를 꼽는 독자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전 세계 20만 명이 선택한 1위는 ‘기생충’. 놀랍지 않았다. 같은 주제로 전문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기생충’은 1위였다. 누가 봐도 강렬한 이야기, 어느 나라에 살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 영화는 국적을 넘어선 언어로 세상과 대화해왔다.


‘기생충’은 2019년 봄, 아주 평범한 서울의 반지하에서 시작된다. 기택 가족은 하나둘 박 사장네 부잣집에 스며든다. 고액 과외 선생, 미술 치료사, 운전기사, 가정부. 서로 다른 이름과 역할로 집 안에 자리를 잡는다. 겹겹이 포장된 그 설정은, 마치 희극처럼 유쾌하고 능청스럽지만 한순간에 그 분위기는 변하고 만다.

2.jpg 사진= 기생충 영화 스틸컷

지하실의 존재가 드러난 이후 영화는 비명을 품는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구조, 보이지 않는 벽, 지워지지 않는 냄새. 냄새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후각적 자극이 아니다. 계급의 경계이자, 차별의 징표다. 박 사장은 무심히 말한다. “그 사람은 이상한 냄새가 나.” 그 말은 칼날처럼 날아와 보이지 않던 폭력을 환기시킨다. 숨겨졌던 감정들이 터져 나온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박 사장 가족은 캠핑을 접고 집으로 돌아온다. 박 사장네 가족이 돌아온 집은 포근하고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반면 반지하에 살던 기택 가족은 물에 잠긴 집에서 쫓겨나듯 나와 온갖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대피소에 눕는다. 결국 영화 속 그날 밤의 비는 누군가에겐 잠깐 지나가는 여름 소나기였고 또 누군가에겐 재난이었다. 더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구조. 기택과 그의 가족들은 ‘아래’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화면을 수직으로 쪼갠다. 위와 아래, 지상과 지하. 부자와 가난한 자를 시각적으로 나누며 빈부 격차의 현실을 시처럼 보여준다. 누구도 누굴 탓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인간들이 있다. 선악이 아닌 생존. 그 절박함 속에서 ‘기생충’은 묻는다. 진짜 기생충은 누구인가.

3.jpg 사진= 기생충 영화 스틸컷

결말에서 기우는 말 한다. “돈 많이 벌어 그 집을 사서, 아버지를 꺼내겠다고.” 그 말은 절실하지만 곧 환상임을 깨닫는다. 희망은 있지만 손에 닿지 않는다. 현실은 단단하고 무겁다. 누군가는 떠오르지만 누군가는 그대로 남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희망의 불가능성’은 그래서 더 아프다.


‘기생충’이 전 세계를 사로잡은 건 이야기가 기발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겪는 구조적 현실을 통렬하게 들춰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4관왕, 수십 개의 국제 영화상. 화려한 기록 속에서도, 가장 빛나는 건 이 영화가 만들어낸 질문이다.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위인가, 아래인가. 혹은, 그 경계에 머물며 어느 쪽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가.

4.jpg 사진= 기생충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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