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사선으로 기울고,
창백한 골목 끝에 시간은 조용히 퇴색하고 있었다
그날의 우리는
카메라 셔터보다 먼저 웃었고
빛보다 먼저 서로에게 스며들었지
필름은 우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잊히는 법을 기록했어
조금은 과노출된 감정들이
사진 속 너와 나 사이에
묵묵히 눌어붙었지
피사체였던 우리가,
이제는 관찰자가 되어
그때의 눈빛을 어루만지려 할 때면—
가장 따뜻한 건 늘
다시 만질 수 없는 순간이더라
기억이란 건
늘 마지막에 도달한 후에야
가장 선명해지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어서,
나는 오늘도
한 장의 낡은 필름을 들춰보곤 해
그 속엔
낯선 듯 눈부신 너의 웃음과
영영 되돌릴 수 없는 우리 사이의
소란스러운 침묵이
언제나처럼 무음으로 현상되고 있어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가장 또렷한 부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