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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라 Jan 10. 2024

나비전쟁(2)

<김자라 단편소설>


  "나는 나비야"


     치즈는 내 이름을 듣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의아하긴 했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그 이유는 며칠 후에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치즈의 거처는 95%의 비를 막을 수 있는 아늑한 정자였다. 나머지 5%의 비는 켄넬과 박스와 비닐과 담요가 엉기설기 섥혀있는 조형물이 막아주었다. 그의 자리는 다 헤진 방석이 깔린 켄넬이었고, 나에게는 담요가 깔린 라면 박스가 주어졌다. 담요에서는 곰팡이 냄새인지 단백질이 부패하는 냄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퀴퀴한 냄새가 났다. 당장이라도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비를 맞아 떨어진 체온을 어떻게든 올려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담요를 뭉친 후 그 위에 똬리를 틀었다. 3일 간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생고생 끝에 맛 본 작은 안락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했다.




     구름 사이로 나온 햇빛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간밤에 비가 그쳤나 보다. 치즈는 일찍이 일어나 벤치 위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꼬르륵 -


     내 배에서 난 소리였다. 수면욕이 어느 정도 만족되자 바로 식욕이 바통을 받았다. 눈을 뜨자 마자 배에서 난 우렁찬 소리가 부끄러웠지만 3일을 내리 굶은 지금 부끄러움 보다는 생존이 먼저였다. 치즈는 밥그릇에 남은 사료 몇 알을 전부 나에게 양보한 뒤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거야. 그 다음은 맛있는 간식을 얻어먹는 거."



     치즈는 일명 '개냥이'였다. 도도한 인상과는 대조적으로 인간들과 육체적으로 부대끼는 고양이들. 일반적으로 뚱냥이들이 차지하는 포지션이었다. 그들의 풍만한 뱃살과 기름을 칠한 듯 한 털은 스킨쉽에 유리했다. 인간들의 발목 사이로 뺨을 부비며 슥- 슥- 하고 문질러 대면 단숨에 이목을 끌 수 있었다. 그 다음은 배를 뒤집어 보일 차례였다. 나는 배를 뒤집어 보이는 게 너무 수치스러워 한 번도 실전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치즈는 타고난 재능을 뽐냈다.


     아직 이웃들의 눈에 익지 않은 고양이는 밀당을 잘 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나같이 어린 고양이들 - 나는 13개월이면 충분히 다 큰 고양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콧방귀만 뀌었다 - 은 말이다. 햇볕 아래서 도도하게 꼬리를 살랑이다가도 누군가 지척에 다가오면 풀숲으로 숨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깊지는 않게, 적어도 인간이 내 눈과 주둥이를 확인할 수 있게 내밀어야 한단다. 어쨌든 있는 경계심을 그대로 드러내도 된다는 점에서 나에게 잘 맞는 포지션이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임무는 체형 유지였다. 작고 어린 고양이 일수록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굶을 필요는 없어. 대부분 인간들이 갖다주는 음식은 먹어도 괜찮아. 사료나 츄르같은 거. 대신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게 있어."


     그는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쓰레기"


     아무리 배를 곯아도 쓰레기는 절대 먹으면 안 돼. 통조림에 남은 참치 찌꺼기나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들.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끊기 정말 어려워. 달고 짜고 자극적이거든. 먹다 보면 어느새 몸이 부풀어 있어. 몸에서 나쁜 찌꺼기들이 부패하고 염증이 생겨서 말이지. 그리고 아랫배 - 신장이라고 하던가 - 가 불에 타듯이 조여 와.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입에서는 자꾸 사료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생기지. 때론 온몸이 근질근질 거리지만 동시에 자괴감도 올라 와.


     치즈는 자신이 쓰레기를 끊었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나는 치즈가 몰래 과자 봉지를 주워 와 머리를 처박고 가루를 핥아대는 모습을 서너 번 목격했다. 봉지에서는 아주 꼬리꼬리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풍겨왔다.




     장마가 끝나자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학생들- 주로 여학생들-은 손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잰 걸음으로 단풍 나무 산책로를 오갔다. 무엇을 찾으러 그렇게 부산스레 움직이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니 치즈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게 바로 대학교라는 공간이란다.


     우리의 정자는 그 여대생들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그들은 주로 두 명, 또는 세 네명이 몰려다니며 우리를 구경하러 왔다. 각자의 포지션에 맞게 치즈는 애교를 부렸고 나는 새침을 뗐다. 주기적으로 찾아와 밥통에 사료를 채워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츄르나 캣닢을 들고와 엉덩이 한 번을 두드려보려고 시도하는 이도 때때로 찾아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귀여워”라는 말을 남발했다. 귀여워는 풍족한 식량과 간식을 의미했다.


     치즈와 나는 2:1로 식량을 분배했다. 치즈는 본인이 장소와 노하우를 제공했으니 더 많이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나 역시 많이 먹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토달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걸까? 정신 없는 나날에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어느새 학생들에게 훌륭한 피사체가 되어 밥을 얻어먹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치즈와 식량 사냥을 하면서 한 번도 준을 잊을 적은 없다. 언젠가 준에게 돌아가야 했다. 아직은 이렇다할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침 일찍 영업 전 단장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치즈는 드물게도 늦잠을 자고 있었다. 분명 어제도 쓰레기를 주워 먹으러 몰래 나갔을 것이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키며 몸을 늘리는 순간 어떤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저 여자를 본 적이 있다.



     내가 길을 잃기 한 달 전쯤 이었나. 준이 몸을 비틀거리며 벌건 얼굴을 하고 들어온 적이 있다. 준에게서는 코를 찌르는 듯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분명 사내 녀석들이 집에 몰려와서 시끄럽게 굴 때마다 들고 오는 그 초록병의 냄새였다. 그건 단언컨데 인간에게서 나는 최악의 냄새다. 준이 냄새나는 입을 쭉 내밀며 나를 꽉 껴안으려 하자 발버둥을 쳤다. 얼굴을 열심히 앞 발로 밀어냈지만 준은 막무가내였다. 스무 번 쯤 강제 입맞춤을 당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준은 내 겨드랑이 사이를 잡고 천장을 향해 들어올렸다. 헤실헤실 웃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나는 준에게 물었다.


     "왜오옹 - "


준은 한참동안 나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머리 맡에 내려주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내가 걔를 만난 지 벌써 5년이야, 5년. 내 29년 인생의 자그마치 1/6이야. 내 인생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여자애가 나올 확률이 주사위를 굴리는 확률보다 높다고.. 지금 생각하면 걔는 진짜 미친년이었어. 내가 5년이라는 그 시간만큼 참아준 것도 대단한 거야. 너도 봤지? 매일 나한테 히스테리 부리다가 용돈 떨어지면 돈 빌려달라고 알랑거리던 거. -- 왜오옹 -- 어..사실 나도 알아.. 주변에서 다들 헤어지라고 난리였잖아. 특히 네가 오고 마지막 1년. 푸후우우우-, 그래도 걔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 왜옹 -- 아니 근데.. 선배랑 잤다고? '미안하지만 폴리 아모리니까 이해해 줘'라고? 하하, 정말 웃겼어. 이런 건 실화탐사대 같은 데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 우애오옭 -- 걔는 말이지.. 정말..



     준은 중얼거리다가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잠에 빠졌다. 나는 기뻤다. 준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그 여자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이해했다. 이제 준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그 후로 여자는 몇 번 더 집을 찾아왔다. 처음 두어 번은 준이 없을 때 맘대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퇴근한 준이 내쫓았고, 그 다음 서너 번은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시도했으나 잠긴 문 앞에서 동동거리다가 돌아갔다. 멍청한 여자는 준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하긴, 인간들은 손에 쥔 것의 가치를 재간하는데 재능이 없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눈 앞에 있었다. 준을 슬프게 해 놓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두 명의 다른 여자들과 시시덕거리며 머리를 나풀거리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준을 위해 복수해야 할 때라는 직감이 들었다. 스타킹을 신은 다리에 발톱으로 줄을 내줄까, 샌들 사이로 발가락에 이빨을 박아줄까.


     "나비, 뭐하고 있어?"


내 잔혹한 복수 계획은 치즈의 방해로 무너졌다. 치즈가 내 시야를 가린 사이 그 여자는 모습을 감췄다.


     "야!! 이씨.."


애꿎은 치즈에게 화풀이했다.






     캠퍼스의 밤은 한적했다. 아주 드물게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학생이나 손을 잡고 밤산책을 하는 커플들 외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몸을 쭉 뒤로 피며 결린 뼈마디를 풀었다. 스트레칭엔 역시 고양이 자세다. 온종일 치즈와 영업을 하느라 쌓인 피로가 몰려왔다. 오늘은 특히 낚시대를 들고 온 사람들이 두 팀이나 있었다.


     낚시대는 정말 이상한 물건이다. 사람들은 막대와 이어진 실 끝에 간식이나 천 조각을 매달아 두고 우리가 사냥하도록 만들었다. 몸을 날려 목표물을 잡으려 하면 다른 방향으로 휙 잡아던진다. 그러면 안달이 난 치즈와 짜증이 난 나는 몇십 분이고 끝나지 않는 사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낚시꾼들이 맛있는 간식을 주느냐? 항상 그렇진 않았다. 그런 인간들에게는 뒷통수에 대고 욕설을 퍼부어 준다 낚시꾼들은 시간 투자 대비 소득이 좋지 않은 손님들이었다.


     그래도 수풀 사이에 쟁여둔 간식이 꽤나 두둑해졌다. 치즈의 말에 따르면 길고양이들은 여름과 겨울에 필요한 식량을 미리 확보해둬야 한단다. 젊은 학생들은 봄과 가을 -- 이 시기를 '개강'이라고 부르는 모양 -- 에 주로 벤치를 지나며 간식이나 관심을 준다고 한다. 여름잠이나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대학생이란 그런 동물들인가보다.


     그런면에서 오늘의 수확은 좋은 편이었다. 특히 손을 조심스럽게 덜덜 떨며 내민 반-대머리 아저씨  -- 이름이 '교수님'인 것 같다 -- 의 츄르를 낚아채길 잘했다. 소고기맛 츄르였다. 눅진한 향기가 물씬 풍겨왔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이기 때문에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둘 생각이다. 예를 들면, 그 여자에게 복수에 성공하는 날.




     치즈의 코 고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이런 저런 공상을 하고 있으니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러나 고등어 태비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에 깨달았다.


도둑 고양이가 내 간식 창고를 뒤지고 있다!


     "하아악-!!"


순식 간에 대치 상태가 이뤄졌다. 도둑 고양이는 입에 간식을 문 채로 당당하게 전투 자세를 취했다. 나도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을 낮췄다.


     "나비야 그만 둬!"


그 사이에 깬 치즈가 나를 말렸다.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하악질을 했지만 그 고양이는 피식 웃기만 하고 돌아섰다. 입에 문 츄르를 놓지도 않고 말이다.


     "내 소고기 츄르!"


     당장 도둑놈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치즈가 내 앞을 막았다. 이 녀석은 오늘 내 앞길을 다 가로막을 작정인가보다. 그 사이 고등어가 놀리는 듯이 엉덩이를 흔들며 유유히 빠져나갔다.




"왜! 왜 말리는 건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치즈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쟤는 나비거든."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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