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는 교육의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빨리" 결정한다. 진로는 고등학교 때 정해야 하고, 대학 전공은 입시 성적에 따라 정해지고, 입학하자마자 스펙을 쌓으라 하고, 졸업할 때까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앞만 보며 달려가야 한다. 오늘은 이런 흐름과 궤를 달리하는 미국의 리버럴 아츠 컬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리버럴 아츠(Liberal Arts) - 한국에서는 흔히 '인문대학'으로도 번역되긴 하지만 이는 조금 잘못된 설명이다. 리버럴 아츠는 고대 그리스로마시절 자유 시민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을 뜻한다. 현대의 리버럴 아츠 컬리지는 철학, 역사, 문학, 수학 과학, 등 인문 사회 자연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교양 중심 교육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교수와 학생들은 토론식 수업으로 폭넓은 학문 탐색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고,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공부한다. 전공은 늦게 결정할 수 있으며, 빠르게 직업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닌 천천히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을 추구한다. 경영, 컴퓨터공학 같은 수업은 개설되어있지도 않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러한 배경아래에서 리버럴 아츠 컬리지는 대학의 본질을 유지하고 있다며 낭만적으로 소개된다. "교양 중심 교육", "자유로운 사고", "깊은 토론" 같은 수식어들이 붙지만 리버럴 아츠는 단지 낭만적인 콘셉트가 아니다. 리버럴 아츠는 교육의 방향을 근본부터 다시 묻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은 직업 훈련소인가?", "배움은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얼마나 넓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생각하는 인간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지금의 한국 고등교육은 몹시 불편해진다.
우리는 교육을 효율의 문제로만 본다. 진로에 맞게 과를 정하고, 학점을 채우고, 필요한 자격증을 준비한다. 요즘은 인공지능 시대라는 이유로 빅데이터 관련 교육에 더 힘을 주는 트렌드라고 한다. 그러나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스스로의 호기심, 성찰, 세계에 대한 시선 등은 대입 논술이나 자기소개서에서나 잠깐 필요한 장식물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그런 배움을 진심으로 쓸모없다고 여겨왔고, 그것이 오늘날 교육의 모습이다.
사실 리버럴 아츠 교육은 새로운 것도, 해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교양이라는 말 자체가 liberal arts의 번역이다. 문제는, 그 의미를 다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지금 대학 교양과목은 어떤가. 졸업을 위한 요식행위이거나, 전공 진입 전의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 거기엔 삶의 태도, 생각의 깊이, 세계를 대하는 윤리 따위는 없다. 학문이 아니라 학점이 있을 뿐이다.
리버럴 아츠 교육은 아주 천천히 탐색하는 시간을 준다.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질문하고, 흔들리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관심과 능력을 조금씩 구체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늦게 결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입시, 등록금, 취업, 집안의 기대 등 모든 것이 "빨리빨리"를 외친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보다 뭘 할 수밖에 없었는지만 기억한 채 성인이 된다.
리버럴 아츠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종종 비판받는다. 실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으로 취업에 불리하다는 의견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교육은 과연 실용적인가? 대학 졸업장을 받고도 자소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현실은 무엇인가? 사실, 실용적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어떤 교육이 인간을 깊이 이해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함께 일할 수 있게 만든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설용적이다. 리버럴 아츠가 말하는 것은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묻는 교육이다.
빠르게 가르쳐서 빨리 써먹는 교육이 과연 정답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며 앞으로의 배움의 방향에 대해 더욱 고민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