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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 약병

가족력

by 윤 슬

머리맡엔 약통이 4개나 놓여있다.

눈을 뜨자마자 구운계란 한알을 먹고 4알의 약을 먹는다.

혈압약 .고지혈약.아스피린


마지막 시험관시술을 하며 혈압측정을 할 때마다 높게 혈압이 측정되었고, "전엔 이런 적 한 번도 없는데 이상하네, 제가 긴장을 많이 했나 봐요, 혈압 늘 정상이었어요"

엄마아빠 가족력이 있음에도 나랑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백의혈압이겠지 긴장 많이 해서 그럴 거야'라고 생각했다.

표준체중이기도 했고, 땀 흘리며 유산소 운동도 하고 있으니, 폭식도 기름진 음식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49살이 되며 건강검진을 받으며 잰 혈압 "혈압이 높으신데요!" " 제가 급하게 걸어와서 그런가 봐요 좀 쉬었다 다시 재볼게요" 쉬었다 다시 재봐도 혈압은 높게 나왔다.

근래 두통도 있었고 가끔 심장이 덜컹하며 리듬이 어긋나는 느낌도 있었던 거 같았다.

식단과 운동으로 혈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혈압계를 구비하고, 수시로 혈압측정을 해봤는데, 3개월이 지나도 혈압이 더 오르면 올랐지, 내려갈 생각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종합병원 심장내과를 예약했다.

심장내과에 진료를 보니 24시간 홀터검사 24시간 혈압계를 착용하고 평균 통계를 내봐야 한다 했다.

가뜩이나 예민한데 몸에 주렁주렁 기계를 달고나니 더 긴장되고 심장은 유난히 더 뛰는 거 같았다.

역시나 혈압은 높게 나왔고, 혈압약처방을 받게 되었다.

24시홀터심전도 활동혈압검사

아빠는 고혈압, 당뇨, 뇌경색 진단을 받은 만성질환자이며, 엄마는 협심증 이력, 고혈압, 뇌동맥류 수술 이력이 있다. 최근에 언니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고 대장내시경에서 선종을 제거했다. 여동생은 나보다 먼저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다.

가족력, 노력해도 바꾸기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다.


내 인생 최고 몸무게는 이십 대 초반에 63킬로까지 나간 적이 있다. 먹는 대로 찌는 스타일이다. 고등학교 때 공부한다고 앉아만 있었고 , 빵 과자도 좋아했다. 그 나이 때 먹는걸 마다할 아이들이 어디 있었으랴,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까먹고 쉬는 시간엔 매점런을 하던 나이 아니었겠는가, 뼈대는 얇고 먹는 대로 살이 찌니 60킬로가 육박해, 이십 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임신을 하고 입덧으로 8킬로가 빠졌고 출산하고 육아에 시달리며 자동다이어트가 되었다. 환경이 힘드니 입맛은 떨어지고 먹는 낙도 없어지니 오십 킬로 초반이 되었고 그때부터 소식을 하게 되었다. 미용을 하면서 불규칙한 식습관이며 잦은 음주로 위염. 식도염을 달고 살았고 공깃밥반공기도 먹질 못했고 라면은 반개, 김빕도 한 줄 먹기가 버거워졌다.

체중은 52-3킬로를 유지했고, 살이 쪘던 모습의 기억과, 몸이 최고무게로 돌아가려는 법칙을 알고 있어서, 살찌는 음식들을 먹고 나면 죄책감을 느꼈었고, 위가 부대끼면 구토를 해서 속을 비워야 편한 상태가 되는 거 같았다. 그 시절이야 미적인 부분 때문에 체중을 줄이고 예쁜 옷들은 사이즈가 작은 게 예뻤기에 그랬었다면, 오십이 넘어가면서부턴 외적인 것보단 건강 때문에 체중증가가 안되게 신경 쓰는 것 같다.


50이 되면서 가족력으로 걱정되는 부분을 알아보고 싶었다. 국가건강검진 중 연초에 일찍 수검받으면 초음파 한 곳을 해준다 해서 경동맥 초음파를 했는데 약간의 경동맥비후 소견이 나왔다. 의사는 약을 먹는 건 나의 선택이라고 애매한 이야기를 했고, 나도 혈압약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잦은 두통에 겁이 났었고 엄마아빠의 가족력때문에 뇌 mri를 찍어보게 되었다.

걱정했던 뇌동맥류는 없지만 모세혈관이 막혀있는 흔적이 4-5곳이나 점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너무 충격적이었으나, 의사는 지나간 거고 혈관이 너무 가늘어서 겉으로 마비나 어떤 증상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찍어보기 전에 모르고 그냥 사는 사람도 많다고 체중관리 운동 술담배 안 하면 괜찮을 거라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올 확률이 다른 사람의 몇 배 이상 높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약처방을 해주지 않았고, 의사가 어련히 알아서 해줄까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음주를 많이 했던 시절 몇 번의 블랙아웃을 경험했었고 계속 폭음을 하여 블랙아웃경험이 늘어나면 알콜성치매가 온다는 이야기도 너무 무서웠어서 술을 자제하게 되었다. 극심한 두통이 와서 눕지도 못하고 하루를 끙끙대다 병원 간 적이 한번 있어서, 혹시나 그때 혈관이 막혔으려나 막연하게 생각을 했다. 그때도 약일주일 먹어보고도 두통이 계속되면 머리사진을 찍어보자 했지만 며칠 만에 멀쩡해져서 병원을 다시 가지 않았었다.


3개월 만의 정기진료, 혈압약을 타는 심장내과 선생님께, 뇌 mri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생각난 김에 경동맥 초음파 결과도 이야기했더니, "이상하네, 이런 경우엔 아스피린 처방이 있어야 하는데" 라며 아스피린과 고지혈증을 약을 예방차원으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순식간에 약이 3알로 늘어났다. 급격하게 우울해지면서 관리를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구나 싶었고, 앞으로 평생을 약을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친구들 중에 사십 대 초반부터 혈압약을 먹는다고 하면, 과체중인 사람만 혈압이 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본태성고혈압 은 노화와 함께 가족력이 있으면 생긴다고 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 것을, 마음보다 몸은 항상 먼저 나이 들어가고 신호를 보내니, 마음과 몸의 발란스를 맞추는 게 쉽진 않은 것 같다.

칠십 대 팔십 대가 되어도 마음은 이십대라고 말하시는 어르신들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을...


어느 티브프로에서 본인의 혈압을 알고 계신가요? 하면서 서울시청광장 앞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이벤트를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 정상이에요, 하고 혈압을 재보니, 의외로 높게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력이 있어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혈관질환인데, 혈관건강의 기본척도가 혈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가 이다. 심근경색, 심장마비, 뇌경색, 뇌출혈 요즘은 식생활 환경요인 스트레스 등으로 젊은 사람들 삼십 대 사십 대에서도 돌연사가 많다고 한다. 엄마의 뇌동맥류 수술 후 중환자실의 환자분들 중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던 적이 있었다. 나의 명이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주위를 봐도 80세를 거뜬히 넘기시고 있고, 100세 시대 '무병장수' 하며 잘 사는 방법은 자신의 몸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4살 어린 남편은 건강 자만증이 있다."난 원래 건강해, 앞으로도 아프지 않을 거야" 하며, 짜고 매운 것을, 좋아하고, 고기를 술, 담배, 과자, 빵 군것질도 좋아한다. "당신은 관리한다고 하는데도 약을 먹고 있잖아!' 라며 핀잔을 준다. "당신 그런 식으로 계속 관리 안 하면, 머지않아 당신도 약을 먹게 될 거야" 이야기하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아니나 달라 최근 한 건강검진에어 빨간 글자가 세 곳이나 있었다.

"이거 봐, 병원 가서 검사해 봐" 며칠을 얘기해도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병원을 왜가"

"당신 몸 당신이 좀 알아서 챙기면 안 돼" 결국 병원을 끌고 갔고, 단백뇨수치 200까지 정상인데 569 나왔고 미세혈뇨검출 정밀피검사재검에 2주간 약을 먹어보고 신장초음파를 해보고 , 다음 검사 시에도 혈뇨가 검출되면 방광내시경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금연을 꼭 해야 한다고 하는데 댓구도 하지 않는다.

검사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이렇게 계속 지내시면, 신장이 더 망가질 수도 있다는 말에 그제야 좀 놀라는 남편... 신사구체염 의심이고, 상태를 계속 지켜보는데 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3차 병원을 보낼 거라고...

아침저녁으로 혈압을 체크해야 하고, 식단을 하라고 한다, 회사에서 먹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고, 저녁에는 샐러드를 만들어 준다. 남편, 스타일이 아니라고 샐러드 진짜 맛없다고 해도 어쩌겠냐 몸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면 하는 수 없는 것을 "이제 알겠지? 평소 먹고 싶은걸 맘대로 먹으려면, 운동을 하고 관리해야 하는 걸"

다음 주 남편의 검사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오길 바라야지,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서로 얼마나 힘든지


희귀병, 불치병 큰 병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앓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고혈압, 당뇨는 나이를 먹으면 관리하기 나름인 질병이다.

약을 꾸준히 먹고, 건강한 음식을, 운동을 꾸준히 하며 머리맡의 약병들은 영양제려니 하고 매일 먹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갱년기가 오고 있어서 인지 혈압조절이 잘 안돼서 약의 용량이 더 세졌고, 운동을 하고 식사량에 큰 차이가 없는데도 조금씩 살도 오른고 있다. 162가 넘었던 키는 161이 간신히 될라 말랑하고 몸무게도 2킬로가량 늘고 있어서 좀 더 신경을 써야곘다고 생각하고 있다.


건강검진 미루지 말고 제때제때 받으세요. 몸에 이상한 곳이 생기면 바로 병원진료받으세요

아프면서 오래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곤욕스러울까요, 요즘 어르신들이 외치신다는 구호 아시나요?

"구구팔팔일이삼사"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하루이틀만 아프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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