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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엄마 아닌 '나'의 여행 #3

by 숨 쉬는 돌


크로아티아 정보는 없는 크로아티아 여행기




마트에서 사 온 훈제 고기가 짜면 짠 대로, 밥이 타면 탄 대로 우리는 즐거웠다. 작은 와인 한 병이 맛있으면 한 병 더 사 올걸 하고 웃었고, 맛이 없으면 한 병만 사길 잘했다 하면서 잔을 비웠다.


한국의 내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며 느꼈던 것은 아마도 부담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좀 더 맛있게, 좀 더 건강하게 가족들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지나쳐서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부로서의, 엄마로서의 짐을 조금 내려놓고 온전히 '내'가 즐거울 궁리만 하면 되는 여행이란 정말 꿀 맛이었다. 마음대로 걷고 앉고 먹을 수 있다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나의 에너지는 가득 채워졌다. 육아를 하며 마지막 한 방울 기력까지 소진되는 느낌을 반복해서 느껴왔던 내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자기가 좋아서, 그것도 시험관 시술까지 할 정도로 원해서 낳아놓고 뭐 그리 힘들다고 징징거리냐고. 한 동네의 모두가 친구고 친구네 집이어서 동네 육아를 하던 우리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우리 아이들은 한 집 육아를 한다. 아이가 몇 이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부모의 몫이다. 부모로 부족한 상황은 조부모님들의 희생으로 충당하기도 한다. 그도 아니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게 된다.


육아에 대한 공동 부담은 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정부는 그저 아이를 낳으면 지자체별로 얼마를 주겠다거나, 한 달에 십만 원 정도의 양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직접 받아본 사람으로서의 의견을 보태보자면 물론 안 받는 것 보다야 낫다. 하지만 일시적이고 작은 경제적인 도움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대, 야간(저녁시간) 돌보미, 초등학교 돌보미 서비스 확대 등 말이다.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며 가장 놀랐던 것은 맞벌이 가정 중 돌봄반을 모집하는데 신청인원이 초과되면 추첨을 하는 것이다. 추첨에서 떨어진 가정은 당장 일주일 안에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간단한 대안은 사.교.육.


출산율이 낮은데 돈을 좀 줄 테니 낳아보렴, 하는 직설적이고 성의 없는 대안 말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복지를 제공하려면 아직 멀었다 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가능한 이야기이길 기대해 본다.




다시 크로아티아의 길을 걸어보자면,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이름도 어려운 두브로브니크. 큰길을 중심으로 양쪽 산으로 집들이 늘어져있어 옆에서 보면 V자 형태다. 평면도만 보고 양쪽 끝의 숙소를 구했다가는 경치는 좋겠지만 숙소로 가는 길이 너무 고될 수도 있다. 우리는 메인 길에서 골목으로 살짝만 들어가면 나오는 작은 펍의 이층 집을 골랐다. 일 층의 펍에서 소음이 좀 있긴 했지만 두브로브니크는 두 다리를 고단하게 만들기에 충분히 멋진 도시였므로 머리만 닿으면 잠들 수 있었다.


유명 관광지에 이렇게나 근접한 곳에 얻은 숙소는 처음이었는데 아주 괜찮은 선택이었다. 두브로브니크의 성곽의 풍경에 취해 걷다 보면 발바닥이 따가웠고, 6월의 여름은 뜨거웠다. 오후에 아이스크림 하나 사들고 숙소로 쏙 들어가 더위도 식히고 낮잠도 자고 나서 다시 나와보면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 구경을 하고 와서 와인 한 잔을 해도 집이 코 앞이니 원하는 만큼 유유자적. 평소 유명 관광지도 별로 즐기지 않고 더더구나 숙소는 한적한 곳을 좋아하던 나인데, 다른 방법의 여행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아래로 길쭉한 모양인 크로아티아에서는 대부분의 여행객이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시작해서 아래쪽 두브로브니크로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두브로브니크가 여행의 정점이 될 만큼 멋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렴한 비행기 값을 이유로 반대의 일정을 계획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흐바르 섬에 들어갔다가 배를 타고 중부지역인 스플랜트로 가기. 거기서부터는 대중교통이 쉽지 않아 차를 렌트해서 자그레브까지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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