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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수 Aug 11. 2022

인생은 바다를 건너는 일과 같아서

이은, <나의 바다>, 2021

[자연, 나의 눈에는 달리 보이고]_예술이나 삶이나 어쩌면 자신의 바다를 홀로 건너는 일인지도



물은 액체에서 기체로 다시 고체로 모습을 달리하며 땅과 식물의 몸을 관통하고 흐르는 것이 본성이다. 이를 보며 성인들은 정형화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바꿔 적응하고 대응하는 물의 형태를 군자의 덕(德)에 비유했다. 굽이 흘러온 물이 종당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숙명을 맞듯 자신도 종당 큰 바다가 되어 너른 포용의 생으로 귀결하길 기원했다. 동양에서 물을 순환적 우주관과 세계관의 상징으로 ‘뿌리 은유(Root Metaphor)’의 상징이다.

물이 모여 이룬 바다는 몸소 오랜 시절 사계절의 시간과 변화를 땅과 나무의 혈관을 구비 도달한 자들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다. 도처를 거치고 흘러 모인 물은 또 다른 존재들을 끌어 안는다. 종당 바다로 향한다. 그 속에서 물은 다른 것들과 함께 출렁이고 반짝거리며 태초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이은, 나의 바다, 2021, 아트스페이스3 갤러리 <산수도>


이은(Lee Eun)작가는 오랜 시간 ‘나의 바다’ 작업을 해왔다. 그녀는 캔버스 광목천 위에 붓으로 바다를 그리는 대신 흙판을 밀고 잘라 바다의 결을 일으킨다. 같은 두께로 흙을 밀고 철자를 대고 같은 간격으로 자르는 일은 지난하다. 재미없는 것, 새롭지 않은 것을  달가워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만, 예술가들은 예사 사람들에 비해 유독 천성적으로 이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무엇을 만들기 위해선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노동을 해야 하고 그것은 때로 반복적이고 몸에 고인 에너지를 모두 고갈 낼만큼 고된 일이기도 하다. 이은 작가는 작업은 마치 작업실 바깥에서 엉켰던 마음을 엉킨 실 풀 듯 천천히 풀어 내는 일, 풍랑일 듯 요동치는 마음의 파고를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일과 같다고 한다. 작가의 태도가 명상  혹은 선(善) 수행의 속성을 띄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작업은 극히 현실적인 업인 동시에 삶이다. 작가가 오랜 시간 흙과 자, 칼에 의지해 도자 편(片)을 만들고 그 표면 위에 안료를 원하는 붓질, 농도 나오기까지 지속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남의 손에 맞기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만 하는 것은 ‘창작’ 그것이 오직 작업이라는 항해로 스스로 건너야 할 ‘나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바다에 떠 있는 섬은 보기에 따라 하늘에 떠 있는 반짝이는 별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너와 나처럼.



나는 <나의 바다>를 처음 보았을 때, 오랫동안 그림 그리던 이가 왜 물 머금은 붓이 아니라 흙으로 바다를 표현하는 걸까 궁금했었다. 흙과 물은 인류가 자연에 투사시켜온 가장 오랜 모성적 상징이자 근원적 물질이다. 그러나 물은 흙보다 더욱 막막하고 광활한 풍경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더욱 강한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준다. 바다는 늘 정주하지 않고 동요한다. 그것은 쉼 없이 생성하는 살아있는 존재이자 그 어떤 단일한 속성으로 귀결되지 못하는 존재다. 규정되지 않고 고정되지 않는다는 데 바다의 매력이 있다. 미술사에는 무수히 많은 바다 이미지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바다를 그리고 그에 담긴 삶의 은유를 포착하려는 것은 바다가 생성과 소멸을 끝없이 반복하는 푸른 유동의 풍경이며, 그 어떤 자연보다 그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는 인생의 덧없음과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는데 유용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작가가 흙의 질감, 미색 화장토의 매끄러움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푸른 코발트색 붓질로 그리지 않고 구워낸 바다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그녀의 코발트 빛 바다 앞에서 각자 한 번쯤은 갔을 강원도 강릉, 속초 바다나 그도 아니면 해외여행으로 간 여행지 쪽빛 바다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은의 바다는 특정 장소, 풍경, 때를 포착하고 대상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20대에 작업을 시작해 이제 환갑 즈음에 이른 작가가 자신이 온전히 전업 작가로 산 시간들 그리고 한 인간으로 살아온 시간들의 반추다. 너른 바다 앞에 상념을 투사하듯 그녀는 자신이 켜켜이 자르고 붙여 만든 긴 바다 앞에서 누구든 자신의 인생을 대면한다. 그것은 물리적 바다인 동시에, 자의적인 바다다.




이은, 나의 바다, 59x343x6cm 16ea, 2021, 아트스페이스3 <산수도>



왜 ‘바다’인가 그녀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부산 출신이며 파란색 작은 쪽 타일이 붙은 목욕탕집 막내딸이라고 했다. 부산이 바다를 면해있어도 바닷가 근처에 산 것은 아니었기에 바다에 나가 놀던 특별한 기억은 없다 했다. 오히려 목욕탕 탕 속에 들어가 고개를  속에 넣어 바라보던 은 푸른 네모 타일의 크기와 두께만큼 조각난 이미지였다고 했다. 그 이후 가족과 함께 타지로 떠나온 작가에게 바다는 자신의 삶의 리얼리티가 시작된 곳이자 현재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의지의 풍경이 되었다고 했다.     

화랑가를 다니다 보면 흔히 보게 되는 것이 바다 그림이다. 그러나 나는 이은의 바다가 바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것이 바다로 지칭하기에 모호하고 중의적이며 작가의 태생과 내면에서 발아시킨 극히 자의적인 화면이라 좋아한다. 나는 바다요라고 강요하듯 포말이는 파도, 진한 푸른색 안료로 덕지덕지 덧바른 그런 바다 그림은 유치하고 지루하다. 이은의 바다는 제목 이외에는 어떤 이미지 정보도 없고 작가의 말마따나 바다를 지칭하고 있는 것도 아님에도, 나는 이은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바람에 의해 몸을 일으키고 장애물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빛에 의해 제 색을 잃고 반짝이는 바다의 풍경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순간  역시 나의 바다를 건넌다.


이은, 나의 바다, 2021, 세부(detail), 도자+캔버스



작가는 거친 흙을 바탕 삼고 시원한 수직의 붓질을 통해 강하게 너울 일고 치솟아 오르는 바다를 재현했다. 젖은 흙을 밀어 얇고 널찍한 판을 만든 후 자와 칼로 되도록 단순하고 균일하게 잘라낸다. 종과 횡이 교차한 절단 과정이 끝나면 어느새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짤막한 흙의 마디들이 작업대 위에 수북이 쌓인다. 작가는 그것을 하나씩 살피고 판에 누여 흙의 젖은 몸을 말린다. 그러나 흙의 마디들은 자와 칼이 강제로 부여한 반듯하고 동일한 크기와 형태를 그대로 수용하려 하지 않는 게 자기 본성이다. 본디 자연으로부터 온 그들은 공기의 수분과 불의 온도 그리고 시간의 경과를 따라 제 몸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몸을 뒤틀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 기꺼이 자연에 투항하고 귀속한다. 다시 개별적이고 유일한 것으로 회귀한다. 800도 초벌한 딱딱한 분홍빛 살결들을 물로 닦고 자신의 손바닥 위에 하나씩 올려놓고서 바닥을 재외 한 5면을 푸른색 코발트 붓질로 채운다. 그냥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마치 바람과 빛이 청색 바다의 수면 위를 긁는 것처럼 일필휘지로 흙의 표면을 내리그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고온의 불에 넣어 기다렸다가 모양과 일그러진 각도, 색을 일일이 맞춰 화면을 재구성한다. 이 시간은 이은에게 흙 작업은 몸의 힘을 빼고 어느 순간 머리보다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지극한 집중의 시간이다.      



“시작도 끝도 없다. 삶은 그저 불완전하거나 온전한 시간들을 반복할 뿐.
흙에 손을 얹어본다. 불의 기운을 기다린다. 기억의 파편을 이어 본다.
이미지가 남겨진다. 나는 지금 바다를 건너는 중..."

   - 작가노트 중에서, 2021 -


                                                     
이은, 나의 바다-기억, 2017, 도자+캔버스, 이도갤러리



   편을 일일이 고르고 형태와 색의 어울림을 찾아 결을 맞추다 보면 푸른색을 머금은 조각들이 몸을 부딪히며 청명한 소리를 낸다. 작가는 그 소리가 바람이 바다를 흔들고 휘도는 소리요, 자기 몸속의 뼈가 세월을 오래 사느라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 같다고도 했다.

이은의 <나의 바다>는 그저 반복적 행위와 단일한 색채의 결로 이뤄진 단색화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추상의 영역에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서 태어난 자가 유년 보았던, 들었던 파도의 일렁임과 부서짐, 수면 위를 파드득 날던 바닷새의 울음, 비릿한 바다 내음으로 가득한 익숙하고 원초적 풍경을 색채와 물질의 결속에서 찾아내 풍경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미술은 작가의 태생과 결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태생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일은 단지 한 개인이 거쳐온 과거의 기억을 들추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그것은 노동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과정과 결과물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기 구도 행위에 더 가깝다. 결국 작업은 작가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토양 위에서 평생 매달리고 고분분투 할만한 소재와 방법을 찾는  여정이다. 또힌 작업 세상에 존재하는 평이한 것들을 자신만의 시각과 방법으로 물질화시키고 유일무이한 대상으로 치환하여 종당 그 속에서 다른 이는 할 수 없는 것, 세상 속세의 것이 줄 수 없는 특별한 안식과 카타르시스를 이끌어 내는 일로 귀결되는가 싶다. 마치 망망대해를 횡단하는 배의 긴 항해처럼.  ■홍지수_미술평론,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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