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가들에게 '재료'는 무엇인가? 그들은 재료를 어떻게 다루는가? 공예가들은 재료 그리고 물과 불을 운용해 매체의 정체성을 궁구하고 유용한 사물을 만드는 자들이다. 나아가 재료에서 구한 형태, 색, 질감 등을 자신의 언어로 삼아 자신의 삶과 세계의 면면을 반추하고 질문한다. 순수 예술가들도 흙, 금속, 나무를 조형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공예가와 순수 예술가가 같은 재료를 가지고 작업한 결과물의 차이는 극명하다. 실용(實用) 유무 혹은 얼마나 미적 가치가 우월한가의 정도가 다른 것이 아닌, 둘의 차이는 작가가 재료를 응대하는 생각과, 태도, 작업 목적의 다름에 있다. 순수 예술가들에게 재료는 자신들이 표현하고 주장하자 것에 따라 다른 것으로 언제나 대체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예가들에게 재료는 타 재료와 대체 불가능한 대전제이자 생각의 출발이다. 지금은 혼성의 시대이니만큼 공예가들은 타 재료를 사용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재료로 제작 가능한 형태를 먼저 떠올린 다음, 그것을 확장하여 타 재료, 타매체를 끌어들이고 확장한다. 공예가들에게 재료는 단순한 조형 재료 그 이상이다. 창발의 구심이고 사유의 방식이며, 삶, 때로는 온전한 그 자신이다.
수많은 존재들의 사멸과 생성이 쌓여 공예가에게 주어진 재료 '흙'.
공예가들이 어떤 재료를 선택하고 어떻게 다루는 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헤아릴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예가들이 재료와 함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문지르고 주무르며 두드리는 행위를 거듭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예가와 재료의 유대는 마냥 깊어지고 공예가의 재료에 대한 이해와 관계는 더욱 두터워진다. 그 관계의 시간 속에서 공예가의 감각과 기량은 더욱 예리해지고 숙련된다. 시간이 오래될수록 공예가의 몸도 재료와 도구, 제작기법에 맞게 특화된다. 공예가의 손, 팔, 다리, 뒤태만 봐도 그가 어떤 재료를 어떤 도구로 어떻게 다루는지 알 수 있다.
재료가 공예가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아마 공예가들은 그런 순간이 더 많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재료는 공예가가 예상했던 것, 그들의 솜씨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을 내어주기도 한다. 그 짧은 경험 때문에 공예가들은 위로를 받고 흥이 난다. 공예가들은 자신이 선택한 재료, 도구와 함께 치열하게 뒹굴고 애증하며 산다. 공예가는 재료를 통해 모종의 단계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금속'은 공예가의 손과 도구의 닿음을 제 피부로 각인하듯 기억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각자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 장점은 살리고 못하는 것, 부족한 것은 보완하며 살아간다. 공예가의 재료 역시 완벽한 것이 없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일 수록 완벽하지 않다. 색과 무늬가 좋아 골라 작업실에 와서 잘라보니 옹이가 깊숙히 자리잡아 당초 용도에 부합하지 않을 때도 있다. 버릴 것은 없다. 결국 공예가는 곁에 두었다가 그 재료가 지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솜씨로 보완해 제 쓸모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궁리할 미션이 생기는 것 뿐.
공예가들의 재료를 작업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재료, 기법을 선택하여 주 무기로 사용하는지도 작가의 성정, 이력에 달렸다. 자기 성정에 맞는 재료, 도구, 방식을 찾아간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재료든 작가의 의지가 아니라 제 성질을 이해하고 간파하는 것이 시작이다. 마치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여 살아가듯이 말이다.
모든 재료는 각자 잘하는 바가 있다. 각자의 방식, 성질이 있다. 금속은 강하돼 불 앞에서는 한없이 연약해진다. 그 때문에 금속공예가는 금속을 불로 달궈 구부리고 휘어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 나무는 고유의 결과 방향이 있어 조각도도 그에 따라 움직이길 요구한다. 죽은 것인데도 살아있는 것처럼 날씨와 계절에 몸을 줄였다 늘였다 한다. 그래서 목공예가는 나무가 움직일 여지를 꼭 남겨야 한다. 흙은 도예가가 자신의 하고자 하는 바를 물질로 현전 시키기 위해 필히 겪어야 할 성장과 부침을 모두 기억하고 고스란히 안으로 품는 재주가 있다. 그 덕분에 도예가는 쉽게 형태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공예 재료든 그들은 공예가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보다 자신에게 먼저 적응하고 이해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적당한 기술을 능숙하게 체화하길 요구한다. 그다음에야 우리에게 볼 만한 것, 쓸 만한 것을 내어준다. 결국 공예가는 재료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선, 겸양과 숙달, 인내의 시간을 필히 보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는 없다. 우리는 공예품을 보며 형태 그리고 표면에 무언가에 의해 긁히고 문지르고 누른 선연한 자국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겹겹 쌓인 다양한 자국의 층위에서 공예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재료와 함께 치열하게 보냈는지를, 그들의 부침과 고민을 가늠할 수 있다. 그 자국들은 도구나 손으로 문지른다 해서 혹은 안료, 유약, 오일, 옻 등으로 표면을 뒤덮는다 하여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표면을 누르고 문지를수록 자국은 기물의 표피 안으로 스며들어간다. 압력만큼 저항하듯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재료는 공예가의 생각, 솜씨, 시간과 행위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나무'는 제 성장의 역사를 몸 안에 품고 켜켜히 쌓았다. 공예가는 결을 존중해야 한다.'
이것을 익히 아는 공예가들은 재료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나는 수많은 공예가들의 작업장에 방문할 때마다 그들이 자신의 재료를 함부로 방치하거나 다루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작가들은 재료에서 자신만의 미감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손과 도구의 끝으로 재료의 무름 혹은 서걱거림, 단단함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세심히 다룬다. 자기가 추구하는 것, 도출하려는 것을 욕심부리기 보다 최대한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려 하한다. 늘 자신이 선택한 재료를 편애하며 갈망한다. 재료에 자신의 자취를, 솜씨를 다양한 방법으로 올리고 그리고 매몰하고 덮으면서 자신이 만들어내고 싶은 형태, 말하고자 하는 바,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를 갈구한다. 희망한다. 그 과정은 바깥에서 보기에는 지난해 보이고 의미 없는 행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재료와 공예가가 나누는 보이지 않는 무엇이야말로 공예가를 매일 꿈꾸게 하고, 가슴 뛰게 하며, 다시 작업장에 서 있게 한다. 공예가와 재료와 맺는 특수한 관계와 교감이야말로 공예품을 사용해야할 유용함 이외에 우리가 공예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기는 중요한 요소다.■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