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공예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장소의 출현
최근 공예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주요 문화 행사 키워드는 ‘집’이다.
지난 4월, 신사동 뒷골목 재건축을 앞둔 빌라 두 동을 전시 공간으로 삼아 이목을 끌었던 <메종 투 메종(Maison to maison)>전, 평창동 가나아트와 나인원 한남에서 열렸던 영국 작가 <에드먼드 드 바알_Edmund De Waal>의 초대전 그리고 5월 20일부터 시작한 <2022 <공예 주간> "우리 집으로 가자" 캐치플레이즈와 결을 같이했던 참여 전시들까지. 올해 공예계 행사,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단연코 ‘집’-일상 공간이 많았다. 그만큼 미술계, 공예계뿐 아니라 유행과 자본에 민감한 미디어, 유통업계까지도 ‘집’과 '공예'를 매개로 기사, 상품과 이슈를 만들고 관련 시장을 확대하는 마케팅 시도들이 빈번하고 활발하다는 뜻이다.
최근 화이트 큐브의 대명사인 박물관, 미술관조차 전시장 안에 일상 공간을 연출하는 일이 많아졌다. 상업 갤러리들도 예술과 비등하게 공예를 취급하고 있고 유명 패션 및 명품 브랜드에서도 공예를 키워드로 전시를 펼치고 일반 상업용 시설보다 한옥, 주택 등을 개조한 전시공간에서 팝업 행사를 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로에베(Loewe)가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로에베 공예상을 개최했고, 구찌(Gucci)가 이태원에 구찌 가옥을 열었으며, 루이비통이 송은에서 <오브제 노마드> 전을 연 것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
내가 20여년 공예계에 있는 동안, 요즘처럼 개인, 기업 할 것 없이 전례 없이 공예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크고 뜨거운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러나 가만히 곱씹어 보면, 사람들이 공예 그리고 그들의 상품을 반 모더니티적 장소를 선택해 전시, 팝업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근래 유행만은 아니다. 최근의 현상은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의 변화가 최근 더 크게 번지고 가시화된 것일 뿐이라 할까?
‘집’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전면에 등장한 이유에 대해, 2년여간 지속 중인 코로나19를 이유로 드는 분석이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등이 늘면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집으로 국한되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재발견, 재탐색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바깥에서의 만남이 어렵고 제제로 인적 교류의 장소가 바깥을 대신해 사적 공간인 집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때문에 바깥에서 보일 것에 투자하던 사람들이 다시금 사교와 비즈니스의 장소가 된 ‘집’을 꾸며야 할 필요가 많아진 것도 최근 그림, 공예품, 가구 수요가 급증한 이유 일 것이다. 여기에 억제된 현실에 대한 보복 소비 그리고 소유와 과시 욕망, 셀럽 문화가 SNS를 플랫폼 삼아 확산하면서, 젊은 층까지도 ‘숙박런’, ‘오픈런’으로 입수하는 명품보다는 일명 득템력(안목, 정성, 정보력, 재력)이 필요한 예술품, 공예품, 한정판 등으로 옮겨간 때문이라는 분석도 설득력 있다. 근년 온오프라인 미술 시장의 규모나 매출이 코로나 여파에도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상도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 분위기 속에서 최근에는 백화점, 호텔, 홈쇼핑, 온라인 쇼핑몰 등도 예술, 공예품 판매에 나서며 미술의 대중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집’ 그리고 ‘그 안에 둘 물건’에 대한 자본과 대중의 관심은 코로나 이후에는 시들해지거나 사라질까?
4월부터 정부가 ‘위드 코로나’ 정책을 펼치자 그간 거리두기 특수를 누리던 유통, 배달 전문업 등의 매출이 급격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거리두기’가 배달 문화를 정착시켰기 때문에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배달업의 전망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따라가는 것과 뜨는 것의 여부가 이손 바닥 뒤집듯 빠르고 쉽다. 코로나 이후의 공예계 전망에 대한 나의 입장은 후자 쪽이다. 왜냐하면, 공예는 다른 재화와는 달리 인간의 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보편적 사물’이면서 동시에 ‘취향’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개성과 표현을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이 대세다. 그 속에서 한 번이라도 자유롭고 개성 있는 공간, 좋은 물건을 사용하여 충족한 문화, 정서적 욕구를 채운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 수준을 낮춰 만족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건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자기 것,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의 소유 욕망은 커진다. 이 현상은 20세기 초 등장한 대도시의 미적 체험을 보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쓴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주목했던 바다. 그는 “수집가에게 중요한 것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사용가치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취향과 관련 있는 애호가적 가치이다. 이 가치에 따라 수집가는 사물을 소유한다.”라고 말했다. 벤야민은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는 애호가적 가치 그리고 이 가치에 따라 사물을 모으고 소유하는 자’를 수집가로 지칭했다. 벤야민이 인간을 수집가로 정의하기 오래전, 특히 르네상스 이후부터 왕, 귀족들은 집에 자신들이 모든 수집품과 애호품을 집에 모으고 전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 컬렉션은 제도권 컬렉션과 달리 반드시 물건의 종 또는 특정한 시대적 맥락 따라 연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중에는 사용가치나 물질적 가치가 모호한, 그저 내적 취향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포함된 것들도 있다. 집의 수장, 전시 기능이 모더니즘의 도래 이후 박물관, 미술관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따라서 집을 거주지로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기능적인 생각이다. 이는 모더니스트들이 공예를 기능하는 사물, 일상 사물로 보고 폄하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나아가 공예 역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보편적 사물’ 내지 ‘필수재’로만 정의하면, 인간이 실용이나 필요와 무관하게 자신의 인연과 취향으로 이뤄놓은 ‘집’이라는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사람이 편애하는 사물과 함께하는 놀이, 유희, 만족감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집’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물’을 이해하려면, 한 개인이 은밀하게 구축한 미적 질서 그리고 창조적 의미와 맞닿아 이해해야 한다.
지금 공예가들이 ‘집’에서 보아야 하고 그 안에서 작품, 전시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야할 것이 그저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에 대한 위로, 새로운 사물의 쓰임이나 새로운 유행의 제안일까? 어떤 물건이 사람들의 취향에 부합할 것인가, 어떤 공예 사물이 인간의 ‘집’을 아름답고 세련되게 보여줄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도 사물 제작자로서 공예가의 일이다. 그러나 전체는 아니다.
공예가들은 오랫동안 미술장 안에서 순수 예술이 누린 지위에 비해 공예의 처지가 불만족스럽고 개선 내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면 그들은 불만족스러운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근래 세계 공예계는 20세기 이후 모더니스트들의 성지인 백색 공간에서 그들의 연출 방법으로 공예는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한창 묻고 있다. ‘일상 공간’만큼 공예의 역사를 그리고 공예가 어떻게 인간과 동반하며 변화해왔는지를 그리고 나아가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탐구하기에 이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가 없다. 그런 사유와 시도가 내가 지금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도 한국공예 전시, 행사에서 가장 보고 싶고 기대하는 그것이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