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家) 다운 집, 공예다운 공예

당신의 삶과 취향이 있는 집. 그 안 당신을 닮은 물건들

by 홍지수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있나요?

건축가 조병수의 평창동 자택 '네 상자의 집' /사진제공=서울디자인재단





언론에서 단골로 나오는 뉴스 중 하나는 직장인의 월급과 부동산 오름 추이를 견주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웬만한 직장인 월급으로는 손이 닿지 않을 곳까지 슬금슬금 오르던 집값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급상승했다. 국민들의 대부분은 그 전에도 높던 집값이 2019년 이후부터는 가파르게 대한민국 어디 할 것 없이 평범하고 건실한 노동자의 저축으로는 도저히 접근 불가능한 고점을 향해 치솟는 것을 넋 놓고 볼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집 가진 자나 집 없는 자나 모두 웃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늘 뜨거운 감자이자 논란이었지만, 오늘의 ‘집’이 남다른 것은 지금이 유독 고통스러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인터넷이나 IT 발달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점점 개인화되고 자기만의 공간, 현실보다는 가상공간을 추구하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2019년 코로나가 엄습했다. 코로나가 극단적인 비대면과 칩거를 요구하다 보니 개인의 고립, 공동체의 붕괴는 더욱 깊어졌다.



코로나 시대, 격리된 채로 살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 가능할까?



코로나는 우리 시대의 집의 의미를 바꾸고 있다. 집에서 이제 거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조금 더 나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갖고 싶다는 사람들의 생각도 커졌다. 안전하게 지내고 싶고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이왕 오래 머물러야 한다면 아름다운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물,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누가 뭐라 할 수 있으랴. 문제는 집이 정주할 공간, 쉼과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부의 창출, 증식의 수단-부동산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지구 상 집이 필요한 동식물을 통틀어, 유독 인간만이 집을 실용성, 경제성을 따져 돈으로 계산한다. 집이란 빈자나 부자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공간이다. 물론 집을 짓거나 소유하려면 돈이 없으면 안 되지만 돈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집은 각자의 지향이나 형편에 따라 달리 사는 것이지, 비교 우위 논할 것이 아니다. 언제나 한국 사회는 ‘집=부동산’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건축가이자 이로재(履露霽) 대표 승효상은 2020년 한 지상파 라디오 인터뷰에서 “집은 부동산 즉,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라 문화이자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집은 사람이 정주하는 공간이다. 집은 사는 사람이 최소한의 자기를 표현하고 삶을 지속할 수 있으면 족하다. 떠돌이가 아닌 이상 인간은 집에 머물러야 하고 적어도 그 안에서는 안전해야 한다. 집은 재테크 아이템이 아니라 생존과 인간다움을 위한 공간이다.

집은 보호처지만 동시에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살림집을 보면, 그 속에 사는 사람의 삶, 취향이 보인다. 집 안의 가구나 작은 사물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대변한다. 새 물건이어도 집안에 들어가 일원이 되고 풍경이 되면, 주인과 닮는다. 공예품은 거주자의 동선과 필요에 따라 자리를 잡고 제 필요를 상실할 때까지 산다. 시절과 손때 묻은 채로 소유자와 함께 늙어간다. 이것은 집과 공예품이 사람의 삶을 공유하며 제 부여된 생(生)을 살고 존재하는 방식이다.






비대면 소비로는 채우지 못한 억눌렸던 소비 욕구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요즘 인터넷과 국경 없는 온라인 상거래의 발달로 정보는 넘치고 돈의 가치는 날로 떨어진다. 여기에 코로나가 가치 소비까지 부추기니 명품 소유가 흔하고 돈 씀씀이가 헤프다. 부와 고급 취향, 안목을 많이 가진 자일수록 타인과의 구별 짓기 욕망과 명예, 재화 소유 욕망은 커진다. 명품 대신 타인이 소유하거나 공유 불가한 희소, 희귀한 한정판 아이템을 찾는다. 이들이 패트런(patron) 효과를 만든다. 셀럽, 인플루언서, 슈퍼리치 등 부를 획득한 소비자들이 풍요가 가져다준 물적 편익에 만족하지 않고 진귀한 수공예품이나 예술작품 등을 수집하고, 예술작품, 음식 등에 대한 식견, 컬렉션을 자랑하기 위해 전시회, 이벤트를 열거나 참석하며, 취향의 차별화와 부와 식견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품을 경쟁적으로 구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KIAF의 전례 없는 흥행이 이를 증명한다. SNS와 유튜브뿐 아니라 언론, 미디어가 나서서 유행, 트렌드라는 미명 하에 사람을 띄우고 현상을 부추기고 바람을 넣는다. 이들의 위력이 온라인을 넘어 예술과 공예 작풍과 지형, 예술가들의 활동, 예술계의 풍토까지 바꾸고 있다. 연예인, 셀럽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집스타그램 태그를 달며 너 나할 것 없이 개인의 공간과 영역, 소유한 것을 보여주고 자랑한다. 그야말로 굳이 볼 필요 없고 보여줄 필요 없는 개인의 은밀하고 사적 영역까지 들여다보길 강권하고, 한 치 부끄럼도 감출 것도 없는 ‘무뢰한 시대’다.

마지막으로 건축가 정기용(2011년 작고)이 생전 했던 말이 생각난다. 평소 겉멋을 애써 추구하는 건축을 극히 싫어했던 그는 “집은 집다워야지 쇼룸 같고 갤러리 같으면 밖에서 긴장하던 인간의 몸과 정신이 쉬지 못해 안 된다.”라고 했다. 인간의 삶과 일상의 편의성을 존중하는 집이라야 ‘집다운 집’이듯, 인간다움을 위해 존재하는 보편적 사물이어야 ‘공예다운 공예’다. 예술이든 공예든, 디자인 상품이든 자랑의 대상 혹은 재테크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것은 본질과 존재 이유를 잃는다. 그 어느 때보다 겉멋이나 자산이 아닌 집다운 집이 필요한 시대, 공예에게도 같은 의문을 한다.■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고는 2022년 월간 도예 3월호에 실린 공예 칼럼 '소소 담화' 세 번째 글입니다.

'소소 담화'는 미술비평가인 저자가 공예 현장을 다니며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바를 독자들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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