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쓸모를 다했더라도 영속하도록 고쳐주는 솜씨, 그런 가치의 지향
공예가의 창작은 인류의 삶 속에 지속 가능한 문화를 만드는 중요한 행위다. 하지만 그 역시 지구의 속살과 그 위를 흐르는 지류를 소비하는 생산 행위다. 공예는 ‘생산’이자 ‘산업’이다. 지금 한국 공예의 문제는 지나치게 공예를 예술로만, 문화로만 여긴다는 점이다. 공예를 예술화, 고급화하고 정치 사회적 캐치프레이즈 도구로 이용하려는 시도들이 공예를 낯설고 어렵게 만든다. 공예가 사물이 아닌 예술을 비롯한 다른 것들과 닮아갈수록 공예의 실체와 본분, 존재할 이유는 모호해진다.
이 현상은 공예가들이 스스로 사물 생산자,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예술가로만 여기게 한다. 공예가가 예술가로만 생각하면, 공예품은 순수예술처럼 한 개인의 자기표현, 재기 발휘의 결과물이 된다. 공예가가 예술가처럼 소비자의 니즈보다 자신의 선호, 개념, 주장을 우선하는 순간, 공예의 ‘상호성’ 즉 쌍방향 소통의 장점과 저력은 상실된다. 고급화와 시장 확대 그리고 공예가 예술에 준하는 위계를 갖추려면 공예가 지금보다 예술화, 고급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공예가 ‘공예 다움(공예성)’을 버리고 추종해온 일들이 현대공예의 위상과 지위 향상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굳이 재환기할 필요가 있을까?
이럴 때일수록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공예가 ‘사물’이요, 공예가가 ‘사물 생산자’라는 점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유용한 물건을 좋은 솜씨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공예가의 역할을 만족할 수 없다. 흔히 공예는 사회적 소통으로 낳은 산물이기에 공예/공예가를 수식하는 ‘좋은’ 혹은 ‘훌륭한’이라는 형용사 안에는 매우 복잡한 의미와 사회적, 윤리적 요구가 담겨있다. 공예가가 작업장에서 행하는 ‘창작’에만 집중하고 공예가가 공예가의 품을 떠나 정작 공예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역할하다 소멸할 ‘제2의 생’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공예가는 아이를 세상에 낳아놓고도 책임지지 않고 방치한 무심한 어미가 되는 셈이다.
조혜진, 사물의 영속, 2022, 찢어진 바구니에 대나무 엮기
이것은 좋은 공예품이 가져야 할 ‘지속가능성(substantiality)’과도 연결된다. 지속가능성은 오늘날 전 지구적인 최대 화두이다. 지구 상 어떤 물건, 존재도 지속 가능한 세계, 지속 가능한 가능한 발전, 지속 가능한 미래를 거스를 수 없다. 공예가가 좋은 재료로 새로운 창작을 하는 것 이외에 미래 지속 가능한 공예 창작, 소비로 관심과 활동을 넓혀야 할 이유다.
첫째, 공예에서 재료와 기술은 중요하다. 그것이 미와 기능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공예가들이 해외에서 다양한 재료와 도구, 기계 등을 수입해서 사용하는 일이 새삼스럽지 않지만, 여러 이유로 개발하지 못했던 지역의 재료와 기술을 활용할 방안은 없는지 고민할 때가 왔다. 먼 거리에서 무엇을 들여와 유통할 때는 그에 응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이산화탄소(CO2) 배출 또한 발생할 우려가 커진다. 세계 곳곳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고 자원 재활용과 이산화탄소 배출 삭감을 ESG경영이 확산되는 만큼 공예가들의 생산도 예외가 아니다.
둘째, 공예가는 기존의 생산과정에서 버려지는 슬러지나 재료를 재활용하고 판매과정에서 필요한 포장재 사용과 수거 등을 새로운 창작에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근 벤투 디자인(Bentu Design)이 중국 차오저우(Chaozhou) 시에서 나온 도자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가구 프로젝트 ‘렉(WRECK), 디자이너 김하늘이 '마스크 쓰레기'를 이용해 만든 의자 ’ 스택 앤 스택(stack and stack)',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과 정미선 래코드가 아름지기로부터 기증받은 한복을 재활용해 만든 한복 작업 등은 단발성 프로젝트였더라도 주목할 만한 사례들이다.
셋째, 물건을 사용하다 보면 어느 부속의 노후나 마모로 인해 사용성을 다하는 경우가 있다. 손상/손실된 부분만 보완, 교체하면 다시 사물의 기능을 회복, 연장시킬 수 있음에도 방법을 찾지 못해 버려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안타깝다 유행이 지나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여기엔 공예품이든 기계 생산품이든 예외가 없다. 최근 디자이너 임태희가 노후화로 폐기될 초등학교 책걸상을 재활용해 새로운 기능을 붙여 재창조한 가구 프로젝트 <The Revitalized>가 주목받았다. 이영현(chogokri)이 낡고 버려진 35개의 의자들을 재활용한 소생 프로젝트 <소싯적 2021>등도 해당된다. 이들은 버려진 것을 외면하지 않는 창작자의 시선과 솜씨로 사물의 특성과 장기, 가능성을 되살린 유의미한 친환경적 창작 모델들이다.
이제껏 공예분야에서 친환경은 좋은 재료를 쓰고, 아껴 쓰고, 창작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을 줄이는 것에만 맞춰졌다. 그러나 기존 공예품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효용을 다한 공예품에 새로운 유용을 부여하는 것도 새로운 재료, 기법을 탐색하는 것만큼이나 공예가의 창작 시야와 영역을 넓히는 새로운 창작 유형이다. 공예의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현실이다. 시대의 위기가 공예에게 열어준 새로운 창작 패러다임이자 새로운 시장이다. 이처럼 새 것을 만드는 데 주안하기 보다 공예가의 손이 정작 닿아야할 미시를 들여다보길 청하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고 보듬는 태도가 어느덧 인간을 대하는 것과 하등 다름이 없어서다. ■ 홍지수_미술평론/ 전시 기획자/ 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