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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24. 2024

조수수업 1 - 불이야! 불!



상혁의 예상대로 카페의 매출이 늘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구조와 특이한 내장재들이 주는 시간의 안락함 때문일까. 상혁이 보기에도 구석에 콕 박혀 있고 싶은 꽤 괜찮은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인생복덕방 옆에 아예 깔끔하게 카페 간판을 추가로 달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중 뜬금없는 자각이 그의 마음에서 고개를 들었다. 


‘ 어.. 이 느낌.. 뭐지?’ 


요즘은 뭔가를 하기로 마음먹고 행동하면 왠지 잘되는 느낌. 무언가가 저절로 되어가는 느낌. 


분명 이전에도 열심히 노력이라는 걸 해왔다.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은 순간과 시간 동안. 어떤 점수 이상은 나와야 했고 어떤 기준 이상은 만족시켜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커트라인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저 마음 끌리는 데로 해보고 싶은 대로 시도하는 것인데 이상한 무언가가 올라온 것이다. 그 노력의 시간 동안 거의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 몸속에서 훅하니 올라오자 상혁은 신선하다 못해 생소함에 몸을 떨었다.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매번 쫓기며 달리던 그 꿈도 꾸지 않고 있다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 따르릉”

“ 거기가 인생상담도 한다는 부동산인가요?” 


전화기 너머로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전달됐다. 

일단 맞다는 설명을 하고 간략한 내용 설명을 받자 이 남자는 상황이 어지간히 급한지 당일 오후 시간으로 상담을 잡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보통 때의 상혁이라면 가능성을 주인장에게 물어봤겠지만 오늘 아침 꽤 지쳐있는 이유를 떠올리고는 모든 일정이 다음 주에 가능하다는 말을 전했다. 


젠틀했지만 그의 말투는 무척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목소리 같았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인물이 그려지며 익숙한 듯 알 것 같은 느낌. 할 수 만 있다면 거르고 싶은 타입의 사람이었다. 한 주 뒤 같은 요일로 예약을 잡고 그날 출발 전 미리 연락 달라는 말을 끝으로 그 목소리가 굵은 남자와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오전부터 상혁의 마음은 분주했다. 복덕방의 첫 번째 손님과 매물을 보고 그중에서 골라 계약서까지 작성하기로 했던 날이기 때문이었다. 몇몇의 매물을 내놓은 집주인이나 세입자들한테 집을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해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남의 집을 보러 간다는 건 초짜인 상혁에게 아직 어색한 일인 것은 분명했다. 부동산 중개 보조원을 교육하는 사이트를 돌며 기본 에티켓 등을 찾아봤지만 뭐든 실전만 한 것이 없다.



“ 어서 오세요.” 


첫 번째 손님이 약속한 시간에 맞춰 부동산에 왔다. 두 번째 방문이다. 미묘하지만 그녀는 종전의 우물쭈물하던 모습과는 달리 조금 더 단호해진 모습이었다. 강렬한 눈빛 혹은 꾹 다문 입술 때문인 걸까. 뭔가 조금은 전체적인 느낌이 달라져 있었다. 다만 문제는 서너 개의 집들을 둘러보는 동안 그녀는 뭔가 뚱해 있는 듯 집을 주의 깊게 보는 것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혁은 그녀가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을 지낼 집을 구하는 일에 집중해 주길 바랐지만 그녀에겐 뭔가 더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괜찮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마지막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얼굴이 풀리며 화사하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햇빛이 잘 드는 구조가 잘 나온 투 룸 빌라로 대로변 옆에 위치해서 상혁이 보기에도 가장 마음에 들 만한 선택이었다. 집주인이 들어오는 사람마다 다 잘돼서 나가는 좋은 집이라고 자랑하는 소리가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복덕방으로 돌아와 계약서를 작성하자마자 사장님의 복. 덕. 방으로 가서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무언가 참고 참았던 부분을 어서 이야기해야 하는 다급함마저 느껴져 상혁은 서류정리만 남은 책상을 두고 그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 점점 참을 수가 없어요.. 미워서요. 제가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지독히요. 그러니까… 시도 때도 없이.. 회사에서도 분명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어느샌가 예전에 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더라고요. 어린 내가 거기 있고 저를 면박 주는 엄마가 보여요. 아무것도 모르는 조그만 저에게 말이죠. 역해질 만큼 화가 올라와요. 생각도 안 나던 그런 일들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니. 그동안.. 저는 어떻게 이런 감정을 그저 덮어둘 수 있었던 걸까요?”


그녀는 첫 번째로 이야기를 하고 간 후 내내 자신의 변화를 들여다 보라는 말을 새겨 들었던 듯했다. 평생 뚱뚱하다며 스스로도 거의 포기 상태였던 그녀의 몸과 다이어트 방법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해 준 사람의 말이어서 일까. 


또 한편으론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자신이 그런 생각들, 즉 엄마의 두려움과 불안을 마치 하얀 스펀지가 색깔이 있는 물감을 빨아들이 듯 아무런 필터 없이 흡수해 버린 것인지 말이다. 


“ 분명 아빠가 잘못한 건 있지만 영원불변의 남녀관계라는 것이 이제 판타지 소설 속의 이야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세상 많은 커플이 사랑하고 그 사랑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식으니까요. 사랑했던 것이 잘못이 아니듯 사랑이 끝났다는 것도 잘못은 아니었던 거예요. 다만 마무리가 너무 아팠던 거죠…

머리로 알고는 있었지만 두려웠어요.. 엄마를 잃을까 봐. 무조건 엄마 편을 들어서라도 저를 버리지 않고 함께 있는 엄마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옳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최근 그녀에게 닥친 문제는 밑도 끝도 없는 엄청난 분노였다. 시간이나 장소불문 문득문득 그녀의 엄마 생각이 날 때면 또 엄마에 대한게 아닌데도 미친 듯이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귀가 멍해지면서 주변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업무 중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일을 하다가도 것 잡을 수 없이 커져 올라오는 이 감정이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올라와 온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머리는 터져버릴 것 같다고 했다.


“ 음.. 일단 축하해요. 그리고 지금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 네..? 축하라고요? ” 


“ 손님이 지금 느끼고 있는 그 느낌은 어릴 적에 느꼈어야 했던 감정입니다. 그 당시에 어린아이로 받아야 했던 주변의 강요나 혹은 불안의 말들, 부모의 불화에 대한 상황들에 어린아이가 본연의 자존과 두려움에 무시당했을 때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분노라는 감정이에요. 


보통은 분노를 나쁜 것으로 인식하지만 아이로서 느껴야 했던 건강한 분노까지 눌러버렸던 거예요. 그런 상황을 만든 아버지와 이후 엄마가 했던 억압들에 대한 한 인간으로 느끼는 건강한 감정 말이에요”


“ 분노가 건강하다고요?”


“ 네. 분노 자체를 느끼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예요. 특히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모습을 강요받았거나 자아를 눌러야만 했을 때 자기 보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올라오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입니다. 

다만 그동안은 스스로의 생존과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그것을 무의식 중에 회피해 전혀 느낄 수가 없었던 거예요. 몸은 그 에너지들을 꽁꽁 싸매고 있었을 겁니다. 그게 지금이라도 올라온 다는 건 모든 면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축하해야 할 일이지요”


“ …아.. 아무리 그래도… 저는 제 온몸의 세포가 떨려서 정신 차리기도 어려울 지경이에요. 저한테 이런 감정이 있었다는 것도 당황스럽고 도대체 어디서 올라오는 건지 끝이 없이 계속될 것 같아서 두렵기도 하고요. 솔직히 이러다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요.” 


“ 진심으로 이해해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그 엄청난 감정을.. 그것이 올라오면 누르지 말고 인정해야 해요. 물건을 다 부수라거나 자신이나 타인을 해를 가하면서 풀라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은 그래서 문제가 생기죠. 제가 꼭 권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이불이나 베개처럼 손님이 상처받지 않을 것들을 샌드백처럼 두들기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고요하게 있으면서 그 분노가 온몸을 전율하듯 통과해 지나가도록 깊이 인정해 주는 것이죠. 분노를 누르거나 그런 감정을 갖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하지 마세요. 이 기간은 반드시 꼭 필요합니다. 그 감정이 몸에 일어난다는 것을 … 내가.. 이토록 분노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힘들더라도 있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또 직시하며 통과시키라는 겁니다. 


똑바로 직시하세요. 이를 꽉 깨물 만큼의 그 분노를 말이죠. 대부분 분노가 특정 대상을 통해 떠오를 겁니다. 감정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보다 보면 처음에 눈앞의 특정 대상 때문으로 보이던 것이 결국은 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반응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 분노가 손님 내면의 무엇을 태우고 싶어 하는지 바라보세요. 분노를 제대로 인지하고 느끼고 보내준 사람만이 그다음에 있을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있어요.” 


“ 어려워요. 분노가 치밀면 소리부터 고함부터 지르고 싶은 걸요. 특히 온몸의 세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아요. 열이 받아서요. 엄마에겐 가지 않고 있지만 이런 상태에서 엄마를 보게 된다면 정말 소리를 지를 것 같아요. 나한테 왜 그랬냐고,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두 사람 문제를… 어른들 문제를 왜 나에게 그렇게 강요하듯 이야기해야 했냐고 말이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이런 말들을 할 것만 같아요”


“ 소리 지르고 싶으면 질러야죠. 그동안 많이 참아왔잖아요. 옛날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처럼요.  대나무 숲에 가서 소리 지르긴 어려우니 저는 이불킥도 하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라도 마음껏 소리 지르고 필요한 말 하고 싶은 말 다 해보는 걸 추천해요. 


대부분의 억눌린 아이들은 제대로 화를 내어본 적이 드물어서 처음에 폭발이 일어나면 엄청날 거예요. 두려움 없이 분노를 제대로 느낄 방법을 찾고 자신의 몸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분노를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 사실은.. 엄마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마음을요. 다 표현하고 싶어요”


“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에요. 부모님들이 마음을 열 준비가, 자신을 진심으로 돌아볼 준비가 되어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없다고 생각하세요. 사과하거나 인정하지 않아요. 그들은 그들 나름의 착각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 착각이라고요?”


“ 네. ‘사랑해서’라는 착각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그들의 입장에선 그것이 사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손님에겐 와닿지 않겠지만 그들도 힘든 속에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대부분은 부모들은 그 방법밖에 모르는 거예요. 스스로를 더 객관화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불안에 사로잡힌 어른이 힘없는 아이에게 강요하고 속박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겠지만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건 해보지 않았던 사람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어떤 경우는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만큼의 일인 사람도 있어요.” 


“ 엄마는 절 사랑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모르겠어요. 저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저 엄마 곁에 있어줄.. 아무것도 모르는 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여요.” 


“ 신기하게도 감정에 따라 우리에게 상대방은 완전히 다르게 보여요. 자동으로 뇌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감정에 따라 뇌가 다른 관점의 논리를 만들어 내죠. 지금은 우선 자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에 집중해야 해요.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해지지 않고 그저 인정해 주는 것.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에 그 부분에만 집중하기에도 버거워요. 꽤 시일이 필요하고요.” 


“ 감정에 따라 제가 생각을 만든다니. 뭐가 뭔지.. 지금은 그저 엄마에게 화가 나고 그걸 다 쏟아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 제가 강요를 할 수도 해서도 안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추천은 시간을 갖는 거예요.  자식이 마음을 털어놓으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이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고도 비난받는다고 느낍니다. 자식인 너까지 왜 그러냐며 상처를 이야기하는 자녀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상황이 대부분이에요. 바로 자식을 비난하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만큼요. 


이런 상황에선 매몰차게라도 부모님과 거리를 두는 것이 맞습니다. 그들과 더 갈등의 골을 키우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거든요. 우선은 거리를 두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대화는 그 이후, 혹은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꼭 이야기하고 싶다면 결과는 내려놓고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첫 시도로서 되도록 차분히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지만요.” 


“.. 해볼게요. 어떤 순간엔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업무 중인데도 곤란할 정도예요. 그런데도 이 감정이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가끔 제 안에 있어요. 그래도 저를 키워줬는데 말이죠.. 이런 마음이.. 어떻게 네가 엄마에게 그러니..라는.” 


“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정말로 대단한 일이죠. 본질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물리적인 공간과 음식을 제공했다고 해서 그 아이를 자신의 감정 혹은 가치 판단을 모두 쏟아붓고 강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어요.  


일반적인 사회규범에서 아이는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게 착한 아이 혹은 바른 아이라고 말하죠. 특히 특정한 사회에선 더욱더 그렇죠. 아이가 부모의 가치관과 말을 전부 들어주는 것이 마치 미덕의 한 부분인 것처럼 이야기되어 왔어요. 부모가 선한 의지로 무언가를 계속 아이에게 바란다 하더라도 그것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분노할 것은 분노하고 다음은 그 이후에 생각하세요. 


감정은 자신이 세상에서 대해 해석하고 반응하는 방법이에요. 분노를 느낀다면 나는 그 상황에 대해 분노하도록 되어있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지난번과 달리 짧은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이번엔 울지 않고 응접실을 나섰다. 상혁이 카레를 들고 오다 연기로 꽉 찬 응접실을 발견한 게 바로 그녀가 상담을 마치고 간 저녁이었다. 


… 


검은 연기 사이로 주인장과 고담이를 찾아 알 수 없는 지하실로 내려온 상혁은 거대한 신전의 기둥 같아 보이는 지하 동굴을 대면한 채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장과 고담이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 이런 동굴과 연결된 지하실이 있는 복덕방이라니. 여긴 어디지? 도대체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황토진흙 같은 물질들은 여기에만 있는 특수 물질인 건가? 기둥인데 왜 흘러내리지? 이러다가 여기도 무너지는 거 아냐?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질문이 멈춘 건 누군가가 뒤에서 상혁의 오른쪽 팔을 확 붙잡았을 때였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뒤를 돌아보며 한 순간 한 순간 필름처럼 한컷 한컷 지나가는 것 같다. 상혁이 그 컷들 중에서 팔을 잡은 존재를 확인하려던 찰나 눈앞에 나타난 건 양철 깡통 머리 아니 정확히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것 같은 양철 깡통의 머리 부분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상혁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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