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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19. 2024

두 번째 손님 3 - 씨앗 설정



그녀는 곰곰이 따져보았다. 사실 그녀에게 매일매일은 다양한 고민들과 걱정의 연속이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치열하면 치열했지 부족하지 않았다. 가족문제로 또 회사생활로 만만치 않게 고민의 나날들을 보내온 인생이었는데 자신의 찻잔만 비어있다니 이제 보니 이곳 사장이 한  말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 제 잔도 비어있지 않아요. 아니 꽉 차있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도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을 하면서 제 찻잔을 채웠는걸요. 제가 비어있는 빈 잔이라는 건 다시 보니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많은 문제들로 감정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고요. 경제적인 문제, 가족관계, 학업, 진로고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나 걱정이 똑같이 있어왔는걸요” 


눈앞에 있는 주인장이 아까 흘러넘치도록 따라놓았던 국화잔에 냅킨을 받치고는 조심스럽게 마시더니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맞아요. 가득히 차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찻잔 속 내용물이 손님이 진심으로 원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담은 내용들인가요?”


“ 네?? 그럼요. 저는 당연히 저의..” 


당연하다고 곧장 대답하려던 그녀는 그 순간 어려서부터 자신이 했던 수많은 고민들이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부터 늘 재정적인 문제로 다퉜던 부모님, 그들의 끝없이 격앙된 불화와 동생의 건강, 친척들까지 엮여 있는 재정적 어려움까지 이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지게 해 줄지 고민하는 것만이 어린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게 떠올라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 어.. 그럼. 그동안 내 것이라고 모두 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이것들은..’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릴 때의 최초 기억은  3~4살 때 즈음으로 얼굴이 공원 흙바닥 같은 곳에 처박혀 뒹굴었던 기억이었다. 장소는 알 수 없고 그저 고성이 오가고 그때 아빠가 다짜고짜 엄마를 때려서 자신을 안고 있던 엄마가 넘어지면서 자신은 흙냄새가 가득한 바닥으로 얼굴을 부딪혔던 것 같다. 그게 마치 환상처럼 혹은 환영의 한 자락처럼 느껴져서 실제였는지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진한 흙갈색의 바닥이 슬로우 모션처럼 자신에게로 다가왔던 장면들과 그 흙의 냄새는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 성장해서 제법 말귀를 알아듣고부터는 동생들을 잘 돌보지 않는다거나 피곤한 엄마가 낮잠을 자는데 동생들이 떠들도록 두었다거나, 학교에 갈 연필을 깎아두지 않았다거나,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지금으로서는 사소한 이유로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매를 맞아야만 했다. 

가족 살림을 거의 혼자 건사하고 있던 그녀의 엄마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 그런 상태가 심한 날엔 그 집 첫째 딸인 자신이 조그만 실수라도 할까 치면 가차 없이 매를 맞아야 했다. 마치 꼬투리를 잡으려고 일부러 작은 문제라도 찾으려는 듯.. 폭풍 전 고요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저 조그만 무엇이라도 걸리면 구타가 이어졌기 때문에 그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고 눈치껏 움직이거나 최대한 동생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있으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좀 더 체격도 커지고 듣는 이야기도 잘 이해할 수 있고부터는 엄마는 그녀에게 틈만 나면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아빠와 시댁 식구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부족하고 무지했다는 자신의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의 한 서린 이야기를 고등학생을 졸업하고 떨어져 대학에 가기 전까지 듣고 또 들었다. 

특히 그녀의 엄마가 핏대를 세우며 악에 받쳐 강조했던 부분은 아빠네 식구들의 무능함과 무식함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악의 원천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는다는. 듣고 있는 내내 엄마의 마음을 공감했지만 왜 그런 사람이랑 욕을 하면서도 같이 산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걸 정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면서 자랐다. 그녀에게 인간사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 같았다. 


언젠가는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간 엄마를 위해서 그녀를 대신해 아빠와 대적해야 했다. 시위하듯 가출했던 엄마는 아빠 상태를 전화로 물어보며 아빠와 집의 상태를 보고 받았다. 아빠는 경제력이 별로 없고 우유부단했지만 자식을 때리지는 않았다. 그런 아빠에게 분노의 소리를 지르며 불쌍하게 집 나간 엄마를 변호하고 구해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사춘기였다.


시간이 지나 가족 형편이 괜찮아지고 좀 나아지나 했는데 동생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 온통 가족의 걱정은 동생의 건강문제만이 고민이 되었다. 그녀 생각 속에도 늘 동생의 안부와 건강 걱정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대학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가면서 그녀가 동생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녀는 동생이 괜찮은지 이제 부모님 대신 늘 신경 써야 했다. 


진로를 정할 때도 직장을 정할 때도 그녀가 고려했던 건 한 가지였다. 취업이 잘되는 전공과 연봉이 괜찮은 회사. 그저 어려서부터 어려웠던 엄마를 도와야겠다는 것과 동생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녀가 해온 생각들의 거의 모든 것이었다.

단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부분이라면 가족이 자신이었고 자신이 가족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었던가. 그게 당연한 나의 의무이며 존재방식 아니었던가? 


그저 착하다는 것. 누군가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것. 착한 첫째 언니, 엄마에겐 듬직한 맏 딸, 동네 사람들에겐 공부 잘하는 착한 딸, 친척들에겐,, 또또 생각나는 모든 것은 엄마가, 아빠가, 사람들이, 누군가가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일상적인 생각이나 걱정, 고민, 노력에 자신이란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는 걸.. 사실 나 자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무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걸


이 이상한 가게의 주인장에게 질문을 듣고 나서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그녀 자신만은 모른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



긴 침묵이 흘렀다. 


주변의 침묵 때문에 그녀의 몸에서 목구멍으로 올라온 뜨거운 무언가가 그대로 노출되어서 한번 들썩이기 시작한 어깨와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인지 코인지도 모르는 액체가 계속해서 흘러서 나오는 걸 애써 깊게 눌러쓴 야구모자로 가려보려 대답도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지났다. 


조용히 휴지를 건네받은 그녀는 목구멍에 걸려있던 뜨거운 것이 조금은 작아져서 이젠 말을 해 볼 수 있겠다고 느껴질 때까지 식은 국화차를 마시고 또 마셨다. 그러나 그 뜨거운 것은 전혀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 음.. 그러니까.. 저는 가족이 행복하면 제가 행복해질 거라고, 동생이 더 건강해지면 가족이 모두 마음도 건강해질 거라고 제가 취직이 잘되는 학과와 학교 그리고 직장에 가서 돈을 잘 벌면 부모님도 덜 싸우고 동생들도 잘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했던 모든 고민은 그들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 줄지 하는 거였습니다. 그게 저 자신 그 자체라고 느끼며 살아왔었군요.” 


“..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들의 고민을 모두 자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군요”  


“ …”


간결한 답변 뒤에 음률은 없는데도 이번에는 한층 부드러운 자장가를 불러주듯 혹은 옛날이야기를 읽어주듯이 편안하게 읊조려지는 이야기로 마치 빠져드는 것 같았다. 


“ 아기들이 이곳에 올 때 그들은 모두 빛의 존재로 옵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고 완벽하죠. 아기들은 원래 그 자체로 존중받았다면 좀 더 좋았을 텐데. 그들이 현실 세계에 대해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까지도 말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부모들이 이미 각자의 문제로 많은 다툼과 격랑 속에 있으면서 아기를 만날 때 자신의 그런 감정 상황을 자신도 모르게 가져갑니다. 부모도 스스로의 감정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아기는 놀랍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들이 표정들이 하나하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요. 부모가 누구일지라도 그들도 그저 미숙한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아기는 그걸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거부당했다고 받아들이죠. 빛의 존재인 자신이 무언가 부족해서 그들이 그런 지친 표정을 짓고 물어뜯고 싸우며 때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기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째서 부모(최초의 세계)로부터 이런 파동이 감지되는지에 대해서 나름의 해석을 합니다. 최초로 접한 세상과 자신과의 관계를 스스로 해석하는 거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해석을 할 때 온전히 부모와 자신, 이 둘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기들 대부분은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같은 해석을 하게 되곤 합니다.


아기들마다 해석의 방법은 달라서 같은 부모라도 결과의 방향도 양상도 다르지만 이 최초의 세계와 자신을 이해했던 방식은 아이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서 모든 것(성격- 세계관)을 만드는 씨앗이 됩니다.”


주인장 이유는 손님들이 오면 항상 사인을 받는 초대장 같은 카드를 가져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구나. 나는 중요하지 않구나’ 


“ 손님이 아기 때 해석했던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해석했던 씨앗의 느낌입니다. 손님처럼 해석하는 잠재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어요. 이 잠재의식의 씨앗은 자라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죠.”


“ …. 제 성격이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자랐다는 건가요?”  


“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중에 이런 해석을 한 아기는 어머니의 욕구를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대응하는 놀라운 능력이 더해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이 나아지게 할지 그로써 사랑을 얻을 수 있게 될지 무의식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만들게 되죠. 자신은 중요하지 않다고 해석했기 때문에 자신보다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타인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주려고 하는 거죠. 


카드 위에 글로 쓰여있지만 머리로 이해하면 안 돼요. 느낌으로 이해해 보면 자신의 내면에 이것과 비슷한 느낌이 어딘가 매우 깊숙한 곳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예요. 이 이것은 언어를 배우기도 전의 에너지 상태의 파동과 같아요. 최초의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언어보다도 이전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말랑하고 부드러운 아기는 몸에 주변의 파동과 자신의 해석을 느낌으로 기억하는 거죠. 마치 각인되듯 말이에요. 


이 아기들은 부모의 요구에 적응하는 능력을 점점 키워갑니다. 날이 갈수록 완벽하게 자기 자신조차 알아채지 못한 채 부여된 의무를 가장 잘 수행하게 되는데 그것은 커서도 계속돼요.  


어머니에겐 신뢰할 만하고 위로도 해주는 조력자가 되고, 가족의 여러 가지 일에 조언을 구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 뿐 아니라, 형제에 대한 책임까지도 짊어지게 됩니다. 결국에는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무의식적 요구와 신호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특별한 감각 체계까지 발달시키게 되는 거죠.”


“아.…”  


“ 손님도 그 아기들 중에 한 명이었어요. 이 세상에 이제 갓 도착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심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탐험하고 알아보기도 전에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투쟁을 어떻게 하면 좋아지게 해 줄지 고민하는 아기 천사 말이죠. 


그러다 보니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 (온전하게 스스로를 탐험하며 만들어지는 자신) 보다 부모와 동생들 그리고 친구들을 혹은 힘든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고 때론 그들이 찾아야 할 해결책을 대신 찾게 되는 그런 책임까지 짊어지는 모습이 된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무의식적으로는 자신보다 중요한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 주길 바라면서요. 


즉, 머리로는 자신이 힘들다는 걸 알지만 무의식은 늘 누군가에게 공감하며 어려움을 공감해 준 자신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길 바라죠. 그래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감정을 잔뜩 넘겨줄 사람들을 자신도 모르고 찾게 되고 불러 모으게 되는 겁니다.”


“ 그럴 수가.. 전혀 몰랐어요… 그렇지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녀는 이제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충격을 어떻게든 감당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 엄마의 슬픈 마음을 온몸으로 공감했을 때 엄마의 표정이 나아지는 걸 본 아기가 엄마의 기쁨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죠. 그렇게 해야만 사랑받는구나 하고 체득한 거니까요. 자신의 찻잔을 자신으로 채우는 대신 상대방 즉 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가족들, 친구들, 모르는 타인들까지도 담을 수 있는 빈 잔이 되기로 한 거죠. 그들의 걱정과 불안, 힘듦을 늘 대신 담아주는..” 


 “.. 으.. 흑..” 


꽤 긴 이야기였다. 그러나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을 이야기해 주는 옛날이야기.. 간신히 그쳤던 울음이 다시 오래도록 이어졌다. 



… 


“ 모든 사람이 손님과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해석과 각도는 조금씩 다르지만요. 아기들 누구라도 사랑과 인정을 바라요. 당연하답니다. 이 우주에서 사랑이 없다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자주 아니 매일 깜박하며 잊고 있는 게 있답니다. ”


“…”


“ 결국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시작은 자기 자신이에요.” 


“ 들어봤던 말이지만…이런 의미인지는 몰랐습니다”  


“ 스스로가 자신을 많이 사랑해 주세요. 아마 지금은 자신, 스스로라는 개념도 잘 느껴지지 않아서 무엇이 자신인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요. 


필요하다면 당분간 이기적이 되세요. 스스로를 챙기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은 손님이 예전과 달라졌다며 비난할 겁니다.” 


“ 비난이요?” 


“ 갑자기 변한 것 같다, 차가운 사람이 된 것 같다, 이기적이 된 것 같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라는 등. 상대방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을 중심에 소중히 두기 시작하면 초기에 듣게 될 말들입니다.”


“ 아..” 


“ 신경 쓰지 마세요.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님이 들어주던 감정 시중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당신을 아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곧 다른 대안을 찾습니다. 


만약 당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이라면 이런 시기가 지나도 다시 만날 수 있어요.

거절해도 손님이 안전하다는 것, 괜찮다는 것을 알아가는 경험을 하는 게 특히 탐험 초반에 중요해요. 물론 처음엔 어렵겠지만 처음이라 그렇습니다. 연습할수록 달라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혹은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정중하게 거절할 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자신을 먼저 존중하는 연습을 하는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가족이라도 각각의 개인이며 그들의 현실은 그들 내면의 반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들 각자 스스로 선택해서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손님이 걱정해 준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이 법칙은 거의 절대적이죠. 그들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를 손님이 고민해 주기보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너무 진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손님이 자신을 존중하다 보면 다른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도 잡히게 될 거예요.


그러면 언젠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잔의 비워진 부분도 보여주고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손님 자신으로 잔이 좀 더 채워지면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나타나게 될 겁니다. 일방적이지 않은 서로 따뜻하게 오가는 교감 말이에요.


자신으로 살아가세요.” 


말을 마친 주인장은 아직도 울음의 끝이 남아 코를 훌쩍거리는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듯 잠깐만 이라는 말을 하더니 손가락을 이마의 중앙에 살포시 대고는 말했다. 


“ 이제 눈을 감고 느껴지는 걸 말해볼까요” 


신기하게도 하얀 모레와 파란 바다의 해변이 나타났다. 그녀는 주인장이 말해준 데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마치 이 시원한 바다에 자신이 직접 온 것 같은 느낌과 발의 촉감, 게다가 바다와 소금기 어린 모래 냄새, 시원한 바람까지 마치 실제처럼 생생했다. 


“ 아 신기해요. 제가 해변에 와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해변 마음에 쏙 들어요. 힘들 때면 항상 이런 곳으로 여행 가서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곳에 온 것만 같아요” 


“ 음.. 그런 여행 가고 싶은 장소라면 어릴 적 꼬마였을 때의 손님을 초대해 보면 좋아할 것 같은데, 어떨 것 같아요?” 


“ 아.. 그럼 좋겠는데 제가 저를 초대하면 올까요? 그런 것도 가능한지 신기한…앗 잠깐만요, 정말 누가 와있는데요. 제가 좋아하던 바지에 티를 입은… 6~7살 때 즈음의 저 인 것 같아요” 


“  그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물어봐도 좋아요” 


“  아.. 좀 어리둥절한 것 같아요. 제가 누구인지 궁금하대요. 그리고 여기에 저랑만 있는 이유를 궁금해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음.. 그럼 자신을 소개해 볼래요? 미래에서 온 자기 자신이라고 소개해도 되고 소개하고 싶은 방법으로요” 


 한 동안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은 미소를 띤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 제가 소개를.. 미래에서 온 너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럼 자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네라고 물어요. 그럴 것 같지만 실은 궁금한 게 많아서 같이 놀고 싶어서 왔다고 했더니 그럼 같이 놀자고 해요. 사실 요즘 엄마가 많이 우울하고 무섭게 혼내서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거의 놀지 못했다고 하면서요”


“ 그랬군요. 그럼 꼬마친구랑 한참 재미나게 놀다가 일어날까요? “


“ 아.. 그렇구나 응 응.. 넌 뭘 할 때 가장 재밌어? ~~ 응.. 응..” 


주인장이 잠시 후 손가락을 이마에서 떼었을 때 손님은 이미 소파에 누워서 무어라 잠꼬대를 웅얼거리며 나름 행복한지 퉁퉁 부운 눈으로 미소를 짓고 잠들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와 즐겁게 대화를 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화들짝. 마치 깊은 잠에 빠져있던 것 같던 그녀는 순간 지금 여기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창문으로 보이는 밖은 늦은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넘어가려 하고 코너의 작은 테이블에 작은 등이 자는 동안 자신을 지켜준 것처럼 은은하게 켜져 있었다. 그녀는 이곳이 어디이고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는 중이었다. 


‘복덕방 카페에 왔었지. 이야기하다가 잠이 들어버리다니… 많이 울긴 울었나 보다. 민폐 끼쳤네. 민폐’


초면인 남의 집에서 오전 대낮부터 울다가 잠들어 버렸다는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이렇게 즐겁고 개운하게 잠을 잔 게 얼마만인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개운함이 민망함을 잊게 만들고 있었다. 어떤 꼬마와 재밌게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네도 타고, 커다란 수박을 먹고 원두막에서 잠도 자는 꿈이었는데 정말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덮고 있었던 듯한 얇지만 포근한 이불을 잘 개어두고 아까 들어왔던 쪽으로 문을 찾았다. 


‘ 여기 사장님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도 하고 해야 하는데… 아.. 문이.. 분명 이쪽으로 들어왔던 것 같은데..’ 


자신이 들어왔던 문을 찾아 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똑똑똑 세 번의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더니 상혁이 나타났다. 


“ 상담이 끝나셨나 보네요.  이쪽 문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카페가 있는 쪽의 테이블로 안내하지 않고 아까 커튼이 쳐져 있는 부동산 복덕방 테이블 자리로 그녀를 안내한 상혁은 잠시 기다리라는 눈짓을 보냈다. 아무래도 너무 울어서 부어있는 눈을 다른 손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듯해 상혁이 해준 배려였다. 실제로 많이 울었던 상태에서 낮잠도 자고 일어난 터라 손님의 눈은 정말 그야말로 퉁퉁 부어있는 상태였다.


잠시 나갔던 상혁이 곧이어 커튼 뒤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는 따끈하고 고소한 버터 냄새를 풍기는 노란 프렌치토스트와 편지 한 통, 명함이 올려진 쟁반과 함께였다.


“ 오랜 시간 이야기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배가 고플 것 같아서요. 저희 가게에서 하는 토스트예요.” 


“ 아. 고맙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배가 고팠어요. 참 그리고 상담해 주신 사장님께 고맙다는 말씀도 못 드렸지 뭐예요. 어느샌가 잠들어버렸던 것 같아요. 말씀 좀 전해주실래요. 정말 감사하다고요” 


“ 네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참 상담료는 앞 안내문에도 나와 있듯이 이사 가실 집 계약을 저희 부동산에서 하시게 되면 그 복비 안에 포함되어 추가비용이 없습니다. 다만 따로 상담을 원하시면 그때는 비용이 꽤 있어서 주로 이사하실 때 상담받으시길 추천드려요. 


원하시는 이사날짜와 집 형태, 금액을 명함에 있는 문자로 알려주시면 잘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친절하고 나지막한 설명이 조곤조곤 이어졌다. 깔끔한 설명이 끝나고 상혁이 커튼 뒤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프렌치토스트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마자 고소한 버터향과 달콤한 맛이 온몸 전체로 퍼지는 듯했다. 


맛있었다는 메모와 돈을 접시 밑에 두고 커튼을 둘러 나섰다. 늦은 오후의 카페는 두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는 걸 제외하고는 한가한 편이었다. 상혁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나서 카페를 나서는데 마치 시간을 점프한 듯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몇 걸음 걷다가 잠시 열어 본 봉투 속엔 직접 쓴 손 글씨의 글이 들어 있었다.


‘노트를 한 권 사서 어느 때든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적어보세요. 

감정, 생각, 느낌 그 어떤 것이라도 괜찮습니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체험하는 것… 그것을 적어나가다 보면 진짜의 자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깨닫게 될 거예요. 멀지 않아 자신에게 닿아있을 겁니다’




“ 달그락, 달그락” 


상혁은 아침부터 일어나 아침준비로 분주했다. 어제 오전에 시작해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주인장은 자연스럽게 저녁밥을 거른 때문이었다. 어제저녁 휴식하겠다는 말을 하고 2층에 올라가서는 내려오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고담이와 상혁이만 저녁을 먹었던 것이다. 주인장 먹깨비가 분명 배고플 텐데 상혁은 서둘러야 했다.


‘ 어제 시간이 길어져서 너무 피곤했던 건가..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아.. 그나저나 인생상담비를 복비에 포함한다고? 그땐 첫 손님이라 공짜라고 하더니 이런 매출은 어디서 더 키우지?.’


그녀에 대한 걱정반 매출걱정반.

원래 첫 손님에게 상담해 주고 결제를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첫 손님은 공짜라며 흔쾌히 복비만 받으라고 했었다. 그래서 상혁은 두 번째 손님부터는 윈윈 할 수 있도록 복덕방 매출 증진과 복.덕.방 상담비도 매출을 늘리는데 한몫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제 갑자기 두 번째 손님이 잠들고 주인장이 나와서는 상담비는 복비에 포함이라고 못을 박아 버린 것이다. 


‘ 이런 도대체 이 건물을 어떻게 유지하는 건지.. 아 주님 위에 건물주라고 했던가.. 갓물주라서 매출은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였어 ’


투덜거리면서도 어제저녁에는 약간 피곤해 보이던 게 걱정이 돼서 오늘은 몸보신이라도 될 만한 걸 아침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상혁이었다. 냉동실에 있던 잣을 큰 손으로 한 움큼 또 한 움큼 잔뜩 집어넣고는 핸드 블랜더로 갈고 냄비에 넣고 미리 해놓은 흰쌀밥을 넣고 다시 블랜더로 간 후 밍근한 불에서 보글보글 끓을 때까지 한참을 주의 깊게 저어주기 시작했다. 


‘.. 여기서도 잣죽을 끓이네’ 


잣죽이 보글보글 끓을 때 즈음, 늘어지는 하품 소리를 하면서 철재로 된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상혁은 마침 다 끓은 고소한 잣죽을 두 그릇 담아서 응접실로 나가던 참이었다. 


‘ 헉..’ 


매번 원피스를 입고 단정하고 꼿꼿하게 있던 주인장이 오늘은 셜록 홈즈가 입을 법한 파자마에 코트 같은 가운을 입고 슬리퍼를 끌며 고담이 밥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상혁은 순간 뭘 입어도 예쁘다는 생각과 어제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네라고 생각하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죽과 피클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아침 식사 나왔어요” 


애써서 아침식사의 존재감을 이야기하는 상혁이었다. 


“ 으하~ 아침밥이다.”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자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주인장이 기지개를 쭈욱 켜자 고담이도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밥을 먹다 말고 쳐다본다. 왠지 그녀도 눈이 부어있는 것 같았다. 물론 어제 그 손님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잣죽을 한 스푼 맛보곤 놀란 눈을 한 주인장이 계속 바쁘게 숟가락질을 했다. 역시 내가 끓인 잣죽은 일품이지.. 라며 왠지 뿌듯해지는 상혁이었다. 


“ 어제저녁도 건너뛰고… 배고팠죠?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요.”

“ 음.. 이 죽 맛있는데?! ”


“ 잣 죽을 좀 끓여봤어요. 먹기 좋을 거예요. 기력이 달릴 땐 이것 만한 게 없어요. 어젠 상담이 정말 길던데 괜찮아요?” 


“ 응. 나야 괜찮지” 


“ 그 여자 손님은 많이 우시던데 그거 알아요? 복덕방 오픈하고 온 손님은 두 명이 전부인데 모두 울고 갔어요. 우리 가게만 왔다 하면 말이죠” 


“ 맞아. 울지 않으면 더 힘들었을 거야. 여태껏 자신은 울고 싶은지 어떤지도 모를 만큼 다른 사람들 마음만을 담아주고 돌봐주려 노력하며 살았거든 어제 그 손님.. 그 눈물은 그런 자신을 위해서 꼭 필요한 표현이었어.”


잣죽이 뜨거웠는지 연신 호호 불어가며 먹는 주인장이었다. 


어제 두 번째 손님이 상담받는 동안에도 상혁에게 그 내용들이 마치 생중계되듯 계속 들려왔다. 덕분에 상혁은 더 이상 환청 같은 이 들림 현상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제는 손님이 상담을 받는 중에도 카페에서 다른 업무를 이것저것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이제 정말 일상적인 라디오 사연을 듣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던 것이다.


처음엔 도대체 이게 이런 최첨단의 과학의 시대에 가능하기는 한 건가, 이게 환청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나 개인의 주파수에 맞춘 무선 인이어라도 있는 건가? 하긴 골전도 이어폰도 있는데 혹시 내 뼈 주파수에 맞춰서 이야기가 들어오는 건가? 하며 오랜만에 자신의 공대베이스 두뇌를 굴려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중엔 어느덧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 전 어제 그런 이야기 처음 들어봤어요. 아직 아기들이라던가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선 생각도… 안 해본 상태라 그런 거겠지만. 아기가 빛으로 완벽하게 온다거나 그러다가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대해서 해석한다는 부분 말이에요. 아기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무의식(?)이란 게 그렇게 섬세하게 발달한다는 것도 처음 들었어요” 


상혁이 뭔가 생각난 듯 읊조리듯이 중얼거렸다. 


“ㅎㅎ. 아직 미혼이고 젊으니까 당연히 다 알 수는 없어. 뭐 그래도 혹시 있을 직원의 미래를 위해 이야기해 주자면.. 아기들은 이미 와있는 이들보다 훨씬 순수의 상태로 이곳에 온다고 할 수 있어. 그래서 첫 양육자, 주 양육자가 중요한 이유인데, 요 조그만 녀석들이 세상에 와서 겪는 첫 환경이기 때문이야. 


그런데 몸은 커져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됐지만.. 거의 모든 부모들도 어려서 온전한 사랑과 공감을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들이야. 그들도 아기 때부터 성장하면서 많은 상처를 갖고 있는 상태거든. 어린 시절부터 충족되지 못한 많은 어떤 마음, 욕구를 품은 채 살아왔다고 할까.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많은 부모들도 언제나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라고.


내면의 관점에선 아이들이 아이를 낳았다고 볼 수 있어.


적어도 부모 속 내면의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을 잘 느끼고 스스로 공감하고 솔직할 수 있는 상태라면 상대방이 누구든 적절하게 완급을 조절해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이상적인 경우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대부분의 부모는 언제나 자신 곁에 있어주면서 사랑을 주는 존재, 즉 이상적인 누군가를 찾으려고 해.


그리고 많은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어린 자식에게 그런 존재를 찾게 되지. 늘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니까.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모의 내면은 사랑을 자식에게 갈구하거나, 억압받으며 자랐던 사람 중에 일부는 그 받았던 억압의 분노를 자신의 아이에게 행사하고 혹은 자신의 아이가 그런 억압에 시달릴까 봐 두려워 그걸 걱정하지. 

부모들의 이런 무의식적인 욕구가 고부갈등이나, 많은 파생적인 현상들을 패턴을 통해 보여주게 되는데 아이가 자신을 신경 쓰는지 감시하듯 늘 체크하고, 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려고 하는 것을 막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부터, 온갖 애증의 드라마들이 발생시키는 거야. 


많은 부모가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함에도 말이야….”


“ 흠… 뭐.. 부모님들이야…”


상혁은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잠시 진지하게 미간을 좁히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 역시 아기의 입장에선 태어나자마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보다는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어떤 상태가 되면 사랑받을 거라는 느낌 속에서 자라게 돼. 거의 모든 인간이. 


부모가 나쁜 의도를 갖고 아기를 망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상대방의 무의식적 요구상황에 익숙해진 아기들은 자기 자신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다고 할까..

다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면 좀 위로가 될까? 모든 인간들이 이런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거친다고 하면 말이야. ” 


“ 음.. 그럴듯하게 들리네요.” 


상혁은 대충 얼버무리듯 수긍한다는 뉘앙스의 말과는 달리 꽤나 고개를 오래 또 깊이 끄덕이며 말했다. 


“ 중요한 건 아기 때 자신의 잠재의식을 발전시켜 가는 씨앗설정을 만들게 된다 혹은 선택한다고 볼 수 있어.” 


“ 씨앗 설정이요?” 


“ 응. 지난번에 질문했던 누가 어떻게 95%의 잠재의식을 만들고 세팅하는지 물었잖아” 


“ 아.. 그 질문은.. 씨앗이면 잠재의식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만큼 굉장히 중요한 거 아닌가요? 마치 식물로 치면 어떤 종류를 선택할 것인가를 말이죠.”. 


“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어떤 종류의 잠재의식을 갖게 될지 선택하는 거니까. 신기한 건 같은 부모에 똑같은 상황 이어도 아이들마다 다른 씨앗을 선택한다는 거야. 타고난 성향에 따라 각각 다른 씨앗설정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긴다고 생각돼. 아이의 성향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할까. 물론 태어난 순서에 따라 부모의 영향력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 아이의 성향에 따라서라….” 


“ 예를 들어 어제의 손님은 자신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다는 씨앗설정을 느꼈고 그로 인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갖게 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해 주면서 그들과 연결된 느낌을 갖고 싶었던 거야.  


아기 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가족에게서 고민 상담가 또는 문제 해결사로서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고 할 수 있어. 물론 이제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을지 계속할지 선택의 순간이 온 거지만..” 


“ 평생 영향을 끼치는 거군요.”


“ 누군가는 이걸 타고난 성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만큼 몸이 반응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체화되어서 그것 이외에 다른 길로 가는 걸 매우 어려워하게 돼. 평생 그 방법만 알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방법을 체화할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이 걸리는 문제야.


게다가 어제 손님의 경우처럼 수용적인 설정을 갖고 있는 경우엔 부모와 사회의 요구에 적응해서 자라다보면…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욕구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가상의 인격 그러니까 인형사의 요구에 따라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처럼 인위적인 행동에 스스로도 완전히 빠져들게 돼버려.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이 무언지도 모른 채 말이야.. 


살아있는 사람이 마리오네트가 되었을 때의 고통은…. 올가미에 매여서 줄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그 사람들의 고통 말이야. 그들이 껍데기뿐인 듯한 공허함과 무의미함 우울함을 겪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


원래의 자신이라는 본질과 태어난 후 부여받은 역할 사이의 갭.


나는 그것이 공허함의 이유라고 생각해.” 


“ 공허함의 이유라…” 


“ 그 아기들이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어렸을 때 자신이 버려야만 했던 그 외로운 감정들을 다시 느끼게 돼. 고통과 좌절까지 함께 오곤 하지. 그것도 매우 강력하게. 그런 고통이.. 그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고 파괴해 왔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 


 ‘… 그렇게까지 연결 돼 있다니.. ’ 


그녀는 마치 허공에다가 이야기하듯 멍하니 숟가락을 다시 휘저으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 체화된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지라도 옅어져 투명에 가까워지는 방법이 있다는 거야. 결국 자유로워지게 되는 방법 말이야. 그게 중요해” 


그녀는 마치 다짐하듯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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