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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ODA Sep 19. 2024

두 번째 손님 2 - 빈 잔



"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왔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충분히 알았어요. 아무래도 잘 이해를 해보는 게 좋을 테니.. 어디 보자 뭐가 좋을까.. 아.. 이거면 되겠네요” 


주인장은 상혁이 여분으로 마실 수 있도록 두고 간 국화차가 들어있는 유리주전자를 들어 올려 자신의 잔에 채우며 말했다.


“ 졸졸졸~” 


손목을 이용한 우아한 동작이었다. 다만 문제는 멈추지 않았다는 것. 거의 비워졌던 잔을 채우더니 급기야 너무 많이 담아서 넘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앗..  차를 너무 많이 따른 것 같아요... 넘쳐서…” 


앉아 있던 손님은 순간 당황한 듯 무언가 닦을 것을 찾느라 테이블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했다. 


“ 맞아요. 그거예요.” 


주인장이 나무 테이블에 주전자를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맞은 편의 손님을 바라보는 눈이 반짝였다. 


“ 만약 사람을 찻잔, 혹은 어떤. 그릇으로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혹은 고민하는 것, 행복해하는 것 또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그러니까 자신에 대한 일로서 찻잔이 거의 차있죠. 거의 대부분 그렇고 또 당연하다고 볼 수 있어요” 


“ …” 


손님은 고개를 조용히 끄떡였다.


“ 그런데 그거 알아요?” 


주인장 이유가 손님의 눈을 깊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이렇게 완전히 흘러넘치고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에겐 다른 것이, 주변이 보이지 않는 거죠. 오직 자신의 상태만이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고민이라거나, 걱정이라거나, 욕망하거나 이런 생각과 감정들로 이미 넘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그들이 그런 흘러넘치는 감정과 상황을 누군가에게는 쏟아내고 가벼워질 수 있는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빈 잔을 만났을 때에요. 그게 누구냐 하면 바로 경청자. 그러니까 손님의 잔처럼 비어있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고 싶어 해요. 빈 잔이 나타나면 누구라도 자신의 깊은 이야기까지 하고 싶어 집니다."


" 네? 빈잔이요?"


" 네. 빈 잔이요. 그들이 긍정적인 이야기를 공유하면 좋겠지만 보통의 경우 가장 쏟아내고 싶은 것은 슬픔, 불안, 분노, 절망, 시기, 질투 이런 것들일 때가 대부분이죠. 긍정적인 감정은 취해서 붕 떠 있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걸로 대부분 사라지게 되지만 아까의 반대 방향의 감정들은 보통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안쪽의 차를 쏟아낸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과 감정의 내용물들이 전이되는 과정은 경청자의 잔이 비어있고 빈 잔의 경청자가 상대방의 ‘파동’ 즉, 힘듦을 이해해 주고 ‘공명’해줄 때 그런 누적된 에너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올 수 있게 돼요. 


마치 그 공명의 주파수를 타고 내부의 내용들이 전이되어 이동합니다. 그 광경은 때론 아름답기도 하고 신기해 보이기도 해요” 


이유는 마치 어떤 이미지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등을 소파에 기대며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 수위나 무엇이 차있는지 인지하고 다른 사람의 욕망까지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적절히 그 사람들과 발전적인 관계 혹은 정리해야 할 관계 등도 본능적으로 선별하죠. 서로 다른 두 그룹을 상상해 보세요. 


첫 번째 그룹은 일상생활의 카페 같은 장소에서 매우 자주 보이곤 해요. 대화는 하는데 문맥도 맞지 않고 서로 자신이 하고 싶은 자랑이든 험담 이든 각자 할 말만 합니다. 이전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자르고 어떤 타이밍과 찬스만 생기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죠. 그러다 또 다른 사람이 중간에 자르고 이야기하고.. 자기 할 말만 합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자신을 자랑하거나, 험담, 일방적인 분노의 표출, 질투, 억울함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현상이 발생해요. 


이 그룹이 대화하는 동안 언성은 점점 높아지고, 서로 격앙되기도 하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도 돌아서면 그들의 잔의 내용은 이상하리 만치 순환하지 않아요. 이런 경우 대화를 하고 돌아가서는 더욱더 이전과 비슷한 감정의 다른 장르들이 생겨난다고 할까요.


그들 간에는 생각과 감정 혹은 자신들을 새롭게 만들어줄 어떤 좋은 정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그것을 전달받거나 공유하는 데는 한계가 발생합니다. 늘 같은 내용의 대화만을 하게 되고 말 그대로 관계는 지루해져요. 


반면 다른 그룹을 생각해 보면 대화하는 동안에는 서로 각자의 잔의 내용물을 조금씩은 비우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을 상상하면서 듣게 되는 경우엔 상대방의 이야기가 자신에게도 흘러들어와 자신의 것과 섞이고 이윽고 다른 향의 차가 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덤으로 얻게 됩니다. 


그들이 이런 대화를 마무리하고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갔을 때 다양하게 섞인 아이디어들과 생각, 감정들은 단편으로 머물지 않고 잠자는 동안 다른 아이디어들로 발전한다거나 하는 새로움의 씨앗을 심은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죠. 


물론 경우에 따라선 자신의 잔을 무의식적으로 기꺼이 모두 비우고  상대방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주는 손님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깊숙이 눌러쓴 모자 사이로 이유를 보고 있던 그녀가 그제야 무언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찻잔이나 그릇이라고 시각적인 설명이 들어가서이기도 했지만 왜 사람들이 그녀에게만 어떤 단체 모임 후에 꼭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다며 따로 연락해 오거나 했던 일들이 정말 많았던 걸 생각해 보면 더욱 고개가 끄떡여졌다.


심리상담사인지 타로점을 봐주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토록 고민해 온 것이 사실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힘들었겠지만 자신이 이상하거나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조와 상태가 그런 현상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해 주는 것. 이해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특이한 복덕방에 특이한 사장님이네.’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처럼 같이 울어주고 토닥여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해주는 표현들은 객관적이면서도 독특한 방법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 무의식적으로 그냥 알 수 있습니다. 찻잔이 꽉 차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경청자를 만나게 되면 바로 알아보게 되죠. 그건 매우 자동적이고 본능적인 느낌이에요. 


중요한 건 그들을 나쁘다고 비난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그런 행동조차 잘 모릅니다. 단지 그저 그 상대방에게 연락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라고 느끼니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과 상황만으로도 자신이 이 세계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객관적인 관점에서 때론 그것이 너무 어이없어 보이지만 그러나 그들에겐 그 고통이 실제의 현실입니다. 고통이 그들 스스로 만들어 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겐 현실이죠.


물론 왠지 만나면 기분이 편해진다는 걸 알아서 주기적으로 불러내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면 일단 만남을 일시적으로 거부하거나 할 권리도 경청자에게 있음을 알아야 거절이 가능합니다.”


손님은 고개를 꽤 강하게 끄떡였다. 강한 긍정이었다. 친구들이 자신을 찾아주는 것이 왠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 같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해서 오히려 좋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힘들어서도 거절하지 못해 계속 끌려 다니는 상황인 경우가 더 많았다. 친구들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약 이런 상황을 어떤 사람은 소위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하기도 했으니까.


매번 인간관계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될 때마다 자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됐다. 그런데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오리무중이다. 자기는 최대한 자제해서 그저 친구들 이야기만 들어주고 마음이 쓰이면 고개만 끄덕이는 건데도 결국엔 비슷해졌다. 다들 슬프고 힘들 때만 울며 전화하고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은 점점 지쳐가는 익숙한 상황.


계속해서 그런 패턴이 발생하는 원인과 자신이 어떻게 해야 이런 힘듦을 벗어서 좀 더 발전적인 인간관계, 아니 적어도 친구들에게 불려 가듯 만나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다가 오는 것을 하지 않게 될 수 있을까, 좀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경험해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원적인 부분까지도 건드리고 있었다. 나의 쓸모는 슬플 때 만인가? 


“손님의 경우는 거절이 대단히 어려웠을 거예요. 오히려 자신에게 말을 걸어줄, 무게를 덜어내고자 하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으니까요 ” 


이유의 마지막 말은 순간 잘못들었다고 판단했는지 손님은 의아하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 .. 네? 제가 찾고 있었다고요? 그럴 리가요.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스스로 그런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니.. 꽤 오래전부터는 그냥 모임에 앉아 있기만 했는걸요. 매번 친구들이 찾아와 대부분 똑같아지는 게 속상해서 최대한 반응을 자제한 거예요.”


누군가 자신에게 또 하소연하러 부를까 봐, 울면서 전화할까 봐  그녀가 취하고 있던 나름의 자기 방어였다. 자신이 그런 친구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는 말이 순간 너무 억울하게 다가왔는지 그녀는 약간 발끈하며 말했다. 


“ 음.. 속상하겠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게 가장 정확해요. 마치 다른 사람들에겐 그러지 않던 사람들도 손님에게만은 깊은 속내를 털어놓고 자신의 깊은 걱정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손님은 매우 집중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이고 진심으로 위로를 건넸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게 잘못이라는 게 아니에요.” 


“ 제가 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지금 무언가 잘못된 걸 느껴요. 그래도 제가 결코 원해서 그들과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이렇게 힘이 드는데 스스로 어떻게 그들을 불러들이겠어요?” 


“ 맞아요. 당연히 억울하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런데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그러니까 잘 살펴봐야 할 부분은 손님의 잔이 왜 비어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순간 여자는 질문에 허를 찔린 것 같아 할 말을 잃었다. 


‘ 아.. 그러게.. 내 잔만 왜 비어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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