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장님.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2주일 내내 낮시간 동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데 손님이 없다니.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말했다.’
상혁은 지루하다 못해 이제는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은 이 복덕방의 매출 상황을 주인장에게 이야기했다. 첫 손님 이후로 다른 계약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무리 건물주라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첫 손님과의 약속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예상 이사 날짜는 한 달 반 이후라 그때 복비가 들어오는데 그럼 이번 달 실적은 제로로 보아야 하는 건가 라며 상혁의 마음속은 울어버릴 지경이었다.
상혁이 해준 따끈한 볶음밥이 올려진 접시에서 숟가락을 뜨는 주인장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맛있게 입을 오물거릴 뿐이었다.
“ 음. 그래?? ”
“ 매출이 안 나오면 인센티브도 없고 저도 계속 한량처럼 지내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카페를 겸업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요 근처엔 맛있거나 특색 있는 카페가 없거든요.
카페 손님 중에 인생상담에 관심 있는 사람도 올 거고 그중에 이사하면서 집을 알아봐야 할 사람도 있을 거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을 것 같아서요.”
상혁은 그동안 내내 손님이 없는 이 난국을 타계해 보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 근처 카페는 커피가 맛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북적댄다는 것에 생각이 꽂혔다. 카페 알바를 했던 적도 있으니 오히려 지금의 의미 없이 넓은 복덕방 사무실을 특색 있는 카페로 병행해 함께 한다면 손님들이 더 오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 뭐 공간이 꽤 넓은 편이긴 해도 주방을 따로 설치할 수는 없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원룸 주방을 오픈해서 사용한다면 모를까”
“ 그건 각오하고 있어요. 제 주방 한쪽에 커피머신을 하나가 들어갈 정도는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좀 작은 걸 들여놓을까 해요. 매대는 문 앞쪽에서 데스크를 조금 놓고 서빙하는 방식으로 하려고 하고요”
“ 흠. 사람들이 여기를 많이 다녀가서 좋을 게 없을 텐데 괜찮겠어? 더군다나 혼자 일하면서 집을 보여 줄 수도 없을 거고. 물론 음식은 잘 만드니까 맛이 없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왠지 모르게 볶음밥을 좀 더 맛있게 음미해 먹으며 주인장이 말했다.
“ 그건 복덕방에 오는 분들이랑 협의해서 집 보는 날짜랑 상담 날짜를 함께 조율해 잡으면 될 거예요. 카페가 한가한 시간에 복덕방 물건들 정리할 거고요.”
“ 흠.. 열의가 왜 이리 대단한 거지?”
…
복덕방이 쉬는 일요일 포함 2주 동안, 상혁은 포스기와 커피머신, 메뉴판을 작게 적어놓고 카페 분위기를 좀 더 낼 수 있는 소품을 배치했다. 모두 주인장의 창고에 남아서 처박혀 있던 나머지 물건들을 가져다가 놓은 것뿐인데 신기하게 카페처럼 분위기가 좋아졌다. 왠지 모르게 주인장의 응접실과 비슷한 느낌이 들면서 그것보다는 약간 모던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 되었다. 상혁이 보기엔 동네 사람이 자주 가는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다섯 개의 테이블을 세팅하였는데 3개는 창고에 있던 앤티크한 탁자였고 나머지는 상혁이 중고로 쓸만한 걸 저렴하게 사 온 것들로 채워두었다. 의자도 모두 중고제품이지만 그럴듯하게 분위기를 맞추고 있었다.
부동산 복덕방 데스크와 뒤편 주인장의 집으로 가는 문 쪽은 앞면에 커다란 흰 커튼을 달아서 카페공간에선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카페에서 복덕방으로 혹은 복.덕.방으로 가려면 잠시 커튼을 열어 들어가면 되는데 살짝 열면 간결한 데스크와 따뜻한 조명이 있고 그곳에서 부동산 물건이나 상담을 진행하면 된다.
커튼을 반쯤 열어두면 주인장 집 응접실로 가는 문만 보이지 않고 복덕방 테이블이 오픈되면서 제법 분위기 있는 사무실 느낌이 났다.
고민 끝에 내놓은 메뉴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떼 딱 세 종류의 커피와 디저트는 프랜치 토스트 한 가지. 이렇게 음료 세 가지, 디저트 한 가지가 끝이었지만 왠지 상혁은 이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들을 잔뜩 내놓아봐야 자신이 혼자서 그런 메뉴를 좁은 주방에서 모두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부동산 일도 해야 하는데 거기다 환청까지 계속 들린다면 혼자 힘으로 그 많은 메뉴를 준비하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아주 기본적인 메뉴들이었지만 상혁이 대학생 때부터 종종 해본 카페 아르바이트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메뉴니까 자신 있었다.
…
의외로 구석에 박혀 오픈한 카페 겸 복덕방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근처 카페의 커피가 맛이 없긴 없나 보다. 매출은 첫날 오픈치고 나쁜 것은 아니었다.
복덕방 앞에는 입간판을 나무로 만들어 카페를 겸업으로 하는 것을 표시해 두었는데 인생상담도 가능하다는 구절이, 복덕방 부동산 중개와 가능하다는 것이 손님들에겐 전달되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손님들 대부분은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생겨 가보자는 마음으로 온 걸 테니까.
“ 와 여기 이런 카페가 생겼네. 메뉴가 이것뿐인가 봐”
“ 프렌치토스트도 먹어볼까?”
아주 간단한 메뉴판에 잠시 당황했던 손님들은 그래도 무얼 먹을지 꽤 숙고해서 선택하는 것 같았다. 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프렌치토스트를 선택하곤 적당한 자리에 자리 잡았다.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이 근처의 원룸에서 지내는 듯했다.
“ 어머 여기 카페 이름이 인생 복덕방이래. 이름자체가 복고인데? ㅋㅋ. 복덕빵도 파는 거 아냐? ”
“ 음. 인생상담도 해준다는데.. 뭐지 사주나 타로 점이라도 봐주는 건가?”
상혁이 열린 문 안쪽에서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만드는 동안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 이것이 바로 내가 카페도 함께 하게 된 이유지.. 자연스러운 마케팅..’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온 상혁은 메뉴를 서빙해 주면서 간단하지만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 커피 나왔습니다. 저흰 부동산 복덕방 겸 카페도 함께 하고 있거든요. 인생 상담도 해드리니까 궁금한 게 있으시면 이야기해 주세요. 이사 계획이 있으시거나 고민이 있으실 때 찾아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 카페인데 부동산이라고? 아니 특이한 복덕방이라고 해야 하나. 참 너 곧 집 옮길 거라고 하지 않았어?”
“ 와~ 이 토스트 생각보다 맛있는데. 먹어봐”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던 친구는 맞은편 친구가 물어보는 이사계획에 대답하는 대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토스트로 말을 돌렸다.
상혁은 주방으로 돌아서서 애써서 다른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본인도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한 잔 내려마셨다. 그래도 토스트는 맛있게 할 수 있는 게 기분 좋은 상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