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상쾌한 아침이다. 점심 즈음에는 여름의 뜨거운 공기가 아직 남아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가게 뒤편의 작은 산 덕분인지 여러 가지 풀냄새가 섞인 듯한 상쾌한 향기가 들어왔다.
오픈 한지 일주일. 주로 바로 앞 오피스텔이나 근처 빌라의 젊은 층이 주요 손님들이다. 잘 보이지도 않게 쏙 들어와 있는 복덕방 카페를 알았는지 상혁은 생각보다 바빴다. 낮엔 쉬는 휴일이나 비번인 사람들이 때 카페를 찾았고 저녁엔 대부분 집에 들어가기 아쉬운 몇몇이 잠시 시간을 보내다 갔다.
상혁은 매일 혼자 복덕방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며 손님이 언제 올지 기다리기만 하던 시간보다 지금은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사람구경은 할 수 있으니까.
“ 휘익~ 톡”
상혁은 오픈 전에 만들어둔 프렌치토스트용 달걀소스가 오늘은 남지 않길 기대하며 달걀 껍데기들과 버터 종이들을 깨끗이 모아서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오전시간 손님이 오기 전 상혁이 커피를 한 잔 막 마시려던 때 한 사람이 가게로 들어섰다. 그녀는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지 확인하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물었다.
“ 저.. 부동산 일도 함께 하신다고 했었죠?”
“ 네에. 이곳 본업이 복덕방인걸요. 카페는 부업이에요. 부업”
상혁은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는 그녀를 보고 지난번 여자손님 두 명 중에 한 명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이 카페를 오픈해서 이렇게 손님들도 오는군 이라며 그는 뿌듯해하는 중이었다. 방금 내린 커피가 담긴 자신의 잔을 내려두고 문 앞 표식을 잠시 부재중이라는 글자로 바꾼 후 손님을 커튼 뒤로 안내해 부동산 테이블에 앉았다.
“ 그럼 이사할 집과 그때 소개해주셨던 인생 이야기 할 시간도 갖고 싶어요.”
“ 그러시면.. 잠시 장소를 옮겨야 해서요.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그녀는 일단 집보다는 상담 쪽이 이곳에 온 급한 이유인 듯했다. 떨리는 듯한 목소리는 결심을 하고 왔기에 더 지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조급함 같은 것이 묻어났다고 할까.
상혁은 그녀를 응접실로 가는 길이 있는 커튼 뒤로 안내해 갔다. 책상 뒤쪽의 이어진 커튼은 공간은 잘 분리하고 있었다. 하얀 천 뒤로 난 좁은 복도를 지나가는 듯 일자로 걸어가자 주인장 응접실로 통하는 문이 나왔다.
“ 똑, 똑, 똑”
문을 열기 전 왠지 이렇게 문을 두드리는 노크를 하지 않으면 무언가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상혁은 언젠가부터 묵시적으로 그 문을 세 번 두드리고 어떤 응답은 없는지 잠시 기다린 후에 응접실로 들어서곤 했다.
“ 와.. 멋지네요 “
“ 이 쪽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아마 그녀는 지난번 친구와 왔던 것처럼 이곳이 타로점을 봐주는 정도로 생각하고 온 것 같았다. 뭐 상혁 자신도 그래서 처음 왔을 때 흥미롭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지없이 주인장이 있는 서재의 문을 두드리고 응접실 옆 주방에서 상혁이 차를 타서 응접실로 나오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 손님이 오셨나 보네.”
“ 네. 곧 이사하신대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도 있고요.”
차를 내오던 상혁이 주인장에게 상황을 말했다. 그는 분명 이유가 서재에서 나오는 걸 봤는데 내내 밖에만 있다 온 사람 마냥 그녀에게선 바람 냄새가 가득했다. 이건 소금기 있는 바다? 게다가 주인장의 머리카락이 한참이나 날렸던 듯이 꽤 삐쳐 나와 있었다. 상혁의 다리 사이로 스윽하고 지나간 고담이도 물통으로 직행해 정신없이 목을 축이느라 바빴다. 밖에서 운동을 하고 온 게 분명했다.
…
“ 그런 거예요. 지금은 커서 가끔 연락하고 만나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예요”
“ 그렇군요. 가장 친한 친구지만 몇 년간 친구는 하소연만 하고 손님은 그걸 다 들어주느라 힘든 상황이고요”
꽤 오랫동안의 이야기를 한 그녀지만 아직도 할 말이 남은 듯했다.
“ 네. 그 친구는 매번 울면서 연락해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곧 울면서 정말 자존감이 바닥일 때만 연락하죠. 저는 연락이 오면 힘든 거 들어주고 그 친구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이야기해 줘요. 정말 너는 예쁘고 멋지고 능력 있는 애라고, 너의 가족이, 세상이 그걸 몰라주는 거라고. 그 어디에서도 너 같은 친구를 본 적이 없다고..
사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 친구는 저에게 마치 하얀 천사 같은 아이였어요. 제가 많이 좋아하고 아끼는 단짝이었고요. 그때 저는 불화가 많은 집안 형편에 그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상황이라 친구도 별로 없는 그저 좀 우울한 아이였는데 그런 저에게 그 애는 마치 천사처럼 보였거든요. 밝게 웃고 있는 환한 천사요.
그때부터였어요. 전 그 친구가 힘들다고 하고 아프다고 하면 온 마음을 다해서 곁에 있어주곤 했어요. 함께 있어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괜찮다고 위로해 주곤 했었어요. 그 친구가 진심으로 소중했으니까요.”
“그랬군요.”
차를 마시면서 마치 맛을 음미하는 건지 이야기를 음미하는 건지 모르게 주인장 이유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도 넘은 어느 날부턴가 제가 앵무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마치 주기적으로 이 친구의 바닥난 자존감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좋은 점을 읊어주는 앵무새 말이에요.
더군다나 본인이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고 좀 견딜만할 때에는 바쁜 건지 도통 연락도 안되고, 제가 정말 가끔 연락하면 그 친구는 매번 바쁘거든요. 전화도 성의 없이 받거나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고 하고 급하게 끊죠. 그런 다음엔 연락이 없고… 도대체 이 친구에게 나는 뭐였던가, 지난 시절은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하면서 고민하게 돼요”
“ 음 그렇게 느낀 어떤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었을 것 같은데.. 기억나는 게 있나요?”
“.. 대학생이 되고 첫 해에 제가 많이 아팠었어요. 그래서 입원을 오래 했었는데 크게 친하지 않던 고등학교 친구들까지 병문안을 와줘서 정말 고맙고 기뻤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 내내 제일 친한 친구인 그 애는 끝까지 오지 않았어요.
친구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성격은 아니예요. 하지만 제일 친한 친구인데 하는 실망도 있고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걱정도 돼서 퇴원 직전에 전화했더니 다이어트 중이라 기운이 없어서 제 얼굴 보러 못 오는 거라고 했어요.”
말을 하다가 말고 본인도 그런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어갔다.
“ 음.. 또 한 번은 오래간만에 시내 큰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안 나타나고 전화 연락도 안 돼서 4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집에 온 적이 있어요. 물론 제가 바보 같이 기다린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친구가 교통사고라도 났을까 봐 종종 거리다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더라고요.
집에 와서도 계속 연락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결국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전화 연결이 됐어요. 알고 지내던 어떤 남자애가 지방에서 자기 좋다고 고백하려 왔다고 그 애 때문에 저와의 약속에 갈 수 없었다고. 적당히 기다리다가 집에 가지 그랬냐는 말이었죠. 전화나 문자는 집에 놓고 와서 못 받은 거였다고요. 뭘 그렇게 걱정했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그런 말투였지만 그땐 저도 정말 화가 많이 났었죠. “
“ 으음.. 그랬군요 “
이유는 이제 조용히 차를 마시며 거의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 그때 즈음부터 이 친구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는 않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도 이 친구가 힘든 건 제가 못 보겠더라고요. 그 친구가 잘 되길 바랐죠. 그나마 대학생 때는 괜찮은 거였어요. 다만 저에게 몇 번 못해준 거 그거면 뭐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냈으니까요.
그 애가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계속 반복했어요. 하지만 그 애 집에서는 딸이 사다 주는 가전이며 용돈이며 이런 거 저런 거 다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결국 매번 그 친구가 그만두는 걸 반대했어요. 그 정도 힘든 걸 못 견디면 안 된다. 넌 견딜 수 있다면서 그 친구가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을 종용했죠. 주로 친구의 어머니가 믿는 종교에서 신에게 계시를 받은 듯이 말씀하시면서요. 꿈속에서 말씀하셨다고..
그 친구는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가족에게 특히 부모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고,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다고 계속 저에게 그 속상함을 이야기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정년 퇴직하시면서는 그 애 엄마가 불안해지셨는지 그 친구 보고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매일 전화한다고 더 힘들어했고요.
제가 친구와 친구 엄마를 떼어낼 수도 상황을 다 해결해 줄 수도 없으니까. 그저 어머님 너무 하신다고 이야기 들어주고 울면 다독여 주고 위로해 주고 힘들겠다 이야기해 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죠.
제가 힘든 건.. 그 애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점점 그 애의 감정을 받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만 저의 일처럼 되면서 어느 순간 더 이상은 건강한 친구 사이라고 느끼지도 즐겁지도 않게 되었다는 거죠.
그 애를 보는 게 힘들 뿐 아니라 이젠 지쳤어요. 이런 오래된 패턴의.. 정체된 상태가요. 그 친구에겐 저라는 존재는 없고 자신의 불행만 있는 것 같아요. 그 불행에서 떠나라고 이야기해 주지만 전혀 소용이 없어요.”
“ 잘 알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친구분이 혹시 딱 그 분만 있나요? “
“ 네.. 네?.. 딱 그 친구만 있냐는 질문은..”
“ 혹시 비슷한 경우가 없는지 묻는 거예요. 지금 고등학교 친구는 가장 친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깊이 엮여 있을 수 있어요.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다른 친구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경우가 없었는지 궁금해서요. 이건 매우 중요한 질문이기도 해요”
주인장인 이유가 그 친구만 그러냐는 질문을 받은 순간 사실 그녀는 왠지 정곡을 찔린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하는 느낌. 사실 그것은 그녀가 애써 외면하고 스스로도 슬쩍 넘어가려 했던 것을 집어낸 질문일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가장 친한 친구여서 또 자신이 어릴 적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그 친구에 대해서 가장 많이 느낀 거긴 하지만 다른 시기에 만난 친구들 후배들에게도 이런 비슷한 경우의 일들이 발생하곤 했었다. 동시에 세 명의 친구들에게 지쳐 연락을 받지 않게 된 적도 있었다.
마치 자신의 얼굴 어딘가에 어려울 때 찾기 좋은 사람이라고 쓰여있기라도 한 건가? 라며 스스로를 조소했던 적이 있을 만큼. 그것은 일종의 공공연한 공식 같았다. 계속된 반복 속에서 가속도까지 더해서 대부분의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본인 스스로도 느껴질 만큼의 대인관계에서 느껴지는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 음.. 실은 요즘 그런 비슷한 일들이 제 인생에서 많았고 반복적이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친분이 쌓이면 처음엔 안 그러다가 아직은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고 생각한 아이들이 점점 연락을 해와요. 그것도 본인이 감정적으로 어려울 때에 만요. 대부분 울어요. 찾아와서 자기 하소연을 하고는 돌아갈 땐 마음이 편해졌다, 너밖에 없다, 고맙다, 너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렇게 말하곤 정작 제가 나중에 괜찮아졌는지 어떤지 안부 연락하거나 무언가 사소한 부분을 묻거나하면 시큰둥하거나 그걸 왜 자신한테 물어보는지 의아해해요. 예를 들면 프로젝트를 하다가 관련된 괜찮은 브랜드를 알고 있으면 소개해 줄 수 있는지 질문하는 수준인데도 그걸 왜 자신에게 물어봐? 라며 의아해하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죠. 저도 그때는 나름 그들의 조언이 필요하고 그리고 그 친구 전문분야라서 물어본 건데 반응은 늘 의외라는 식이예요.
무언가 본인들이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의 진실함이나 진지함은 사라져 있어요. 힘들 땐 절절하게 오가던 감정이 평상시엔 생뚱맞음과 생경함만 남아있는 거예요. 즐거운 시기에는 연락이 아예 없다가 그런 장본인들이 또 힘들다면서 찾아와요”
“ 그렇군요. 예상은 했지만…”
이유가 고개를 끄떡였다.
“ 혹시 타로나 사주라도 보게 되면 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무엇 때문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해요. 좀 더 근본적이고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런 부분까지는 바라지도 않고요.. 그저.. 앞으로의 친구들과는 좀 다른 관계라거나 다른 상황도 생길 수도 있거나 적어도 제가 앵무새로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하니까요”
그동안 자기 스스로도 계속해서 반복해 왔던 질문들을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고 고민을 말해 보는 게 거의 처음인 그녀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몇 년 동안 혼자 끙끙 앓아왔던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이래서 다들 자신에게 말하고 가면 편안해졌다는 건가 라며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도감 같은 한숨을 내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