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YODA Oct 01. 2024

세 번째 손님 5 - 괴물이 잠들었던 이유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손님의 목소리는 약간 가벼운 톤으로 바뀌어있었다. 불과 지난주에 이야기를 하고 갔는데 뭐가 달라질 게 있기라도 한 건가. 그는 약간 흥분한 듯했다. 물론 상혁의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약속했던 대로 지난주 토요일, 저희 어머니가 계신 본가에 다녀왔습니다." 


가게에 다시 왔을 때에도 서둘러서 주인장을 만나고 싶어 했다. 내어 준 국화차도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상혁이 아직 함께 있어도 주인장에게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는 이내 마른 침을 한 번 삼키더니 그간의 일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점심을 먹고 식구들이랑 평소처럼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펑펑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게다가 몸이 덜덜덜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데.. 어릴 때 어머니한테 맞고서도 울지를 못하고 늘 꾹꾹 삼켰던 제가 그렇게 소리 내서 울어보긴 태어나 처음이었습니다. 갑자기 너무 속상하고 힘들었던 게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주체가 되질 않았어요.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 것처럼요”


“ 아~ 그런 일이 ”


이유는 순간 짧은 감탄사와 함께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 다 커서 늙어가는 아들이 몇 시간이고 내내 목청이 터져라 울고 몸을 벌벌 떨어 대니 가족들이 어안이 벙벙해서는.. 모두들 놀랐습니다. 사실 가장 당황스러웠던건 저였으니까요. 제가 그 정도였는데 다른 식구들은 어땠겠습니까. 어머니도 깜짝 놀라서 물으시더군요. 당신 아들이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는지 걱정하신 거 같아요. 한참을 마치 딴 사람이 된거마냥 울다가 약간 진정되고서 여기 와서 사장님이랑 이야기한 것들, 그동안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서 매번 별거 아닌 일로 맞았던 기억이 사실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고요. 그때도 힘들었지만 이렇게 나이 들고 저는 그래도 살아지는데 애가 어디서 맞고 올까 봐 너무 두렵다고요. 그게 제 어릴 적 모습 같다고요.” 


“ 그러셨군요.. 보통 부모님과는 누적된 감정이 얽힌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데 현명하게 대화를 하셨네요.”


“ 사실 저희 어머니.. 젊어서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면서 힘들어하셨어요. 무심하고 냉랭한 제 아버지랑 사시면서 고민이 많으셨죠. 무섭고 엄한 외할아버지께서 억지로 시집보내셨다고 했었죠. 두려워서 거절도 못하고 그렇게 시작됐는데 못살겠다고 도망치고 싶을 때 제가 생겼다고 해요. 그래서 헤어지지도 못했다고.. 그것 때문에 저를 원망하셨데요. 계속 우울해하거나 아니면 화를 내는 상태만 주로 기억이 나거든요. 혹은 집안 일만 하시거나요.


그리곤 언젠가부터 저를 때리셨죠.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상처를 준 줄 몰랐대요. 그냥 좀 훈계한 거라고 생각했다니. 완전히 다른 기억을 갖고 살았다는데 더 놀랐습니다. 그동안은 본인 힘드셨던 거랑 저 때문에 떠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원망과 참고 산 세월만 생각하셨데요. 


그렇게 심하게 멍이 들도록 때렸던 것도 잘 기억을 못 하고요. 저는 어릴 적에 뺨이 부어서 밥 먹을 때마다 볼이 씹혀 잘 먹지도 못했는데요.” 


덩치가 큰 중년의 남자는 잠시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는지 말을 멈추고 입을 꾹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 한편으로 이렇게 기억도 못하는 사람한테 내가 여태 무얼 기대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힘든 것만 알았지 자식 힘든 건 전혀 몰랐다니. 속상함이나 미움보다 어이가 없고 너무 허탈했습니다. 그런 어머님께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그래도 노력을 하고 또 하고 했거든요. 

뭐 기억은 못했지만 그랬다면 미안하다고는 하셨어요. 그것도 꼭 이해를 하셔서… 제 마음을 이해하셔서 한 말은 아닌 것 같지만요. 다 큰 아들이 그렇게 우는 걸 보니 정신병자가 되는 것보단 낫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 눈물이 날 만큼 많이 힘드셨겠어요.” 


“ 그렇게 몇 시간을 컥컥 대며 울고 이틀이 지난 일요일도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 거예요. 그러다 월요일엔 눈물은 그쳤는데 계속 기침을 해서.. 다음날이 되면 병원에라도 가야지 했는데 신기하게 화요일 아침이 됐을 때 그 기침도 멈추더군요. 그리곤 지금은 예전보단 훨씬 편안해졌습니다. 


제가 내내 그렇게 난리를 치는 동안 아들까지 비슷한 증상이 있어서 여차하면 응급실을 가려고 했는데 거의 비슷한 시간에 몸이 나았어요. 이건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 이후론 좀 마음이 편합니다. 아들하고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하고요.”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 제가 다급하게 온 것은 그때 전화로 토요일 오후 2시 이후로 본가에서 어머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느냐고 사장님이 이야기했던 게 우연은 아닌 것 같아 물어보러 온 겁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요?”


‘헉! 그럼 토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서재방 5층에 갈 수 있을 거라더니! 그런 거였어?’ 


벽 너머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혁은 그 시간과 그 덩치 동물이 잠들어 있던 것과 뭔가가 확실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내면의 아이를 만나는 동안 이 남자도 무언가를 느낀 거다. 


“ 글쎄요. 제가 어머님이 계신 본가에 가 보시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 건 이번처럼 손님이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속 마음을 표현하고 쏟아낼 수 있다면 여러모로 괜찮았으리라 느꼈거든요. 이해받지는 못하셨더라도 마음은 솔직해졌으니 이제 점점 좋아지실 겁니다. 앞으로도. ”  


남자는 기대하던 신묘한 답변이 아니라 약간은 실망한듯 했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거대한 폭풍우가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그들은 몇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특히 노트를 써보라는 조언은 주인장은 빼먹지 않았다. 가장 궁금해하던 궁금증을 해결하진 못했지만 그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복.덕.방을 나섰다. 아들의 학교는 옮기지 않기로 했다며 이사는 좀 더 다른 형태로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정해지면 그때 문의하기로 했다. 아마 근시일이 될 거라고. 그런데 그가 나가자마자 확신에 찬 상혁이 주인장을 찾아 응접실로 왔다. 


“ 사장님. 토요일 오후 2시에 서재로 들어가자는 게 그래서 그랬던 거죠? 그런데 왜 그런 거죠?”


상혁이 와서 다짜고짜 묻자 희미하게 웃으면서 이유가 대답했다. 


“ 뭘?? ”

“ 알면서 그래요. 그런데 어째서 그 손님이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검은 표범 같은 게 잠잠하죠?”


“ 모든 걸 다 알았던 건 아니고 생각해 봐.”

“.. 생각해도 모르니까 물어본 거라고요” 


황당한 듯 정색을 하는 상혁을 보며 웃음이 나는지 이유는 풉 하고 웃음을 뿜더니 대답했다.  


“ 흠.. 그 손님. 어릴 적 자신은 슬픔과 두려움을 가득 지니고 있는데 정작 그런 감정과 가장 많이 연관된 당사자에겐 사과를 요청하지도 못하고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하라고 했었잖아. 계속 아들 주변 사람들이나 선생님들, 다른 아이들에게. 잘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과받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매번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다그치는 그 몬스터로 형상화된 내면의 반응 방식도 자신의 모친 앞에 가면 어린아이 때처럼 자연스럽게 굳어서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몸의 기억 혹은 무의식이라는 건 때론 무서우리 만큼 패턴화 돼 있거든.”


“ 아.. 그런 거였구나..”


“ 일단 성공적으로 5층에 가려면 어쩔 수 없었어. 어린 시절 내면의 아이가 현재로 동조화해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고 할까”


“ 그렇지만 토요일에 우린 죽다 살았잖아요”

“ ㅎㅎㅎ 그랬었나?”

“ 거참. 그 아이가 한참 울고서 나왔을 때 그 물컹한 감정 주머니가 완전히 쏟아져버려서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주머니들은 터져서 흘러가 버렸잖아요. 올라왔을 때 그 몬스터한테 잡아먹힐 뻔한 거 벌써 잊었어요?”

“ 그래도 뭐 잡아 먹히진 않아서 다행이네.”

“ 아.. 그렇게 태평해서 더 걱정이네요.”  

“ 뭐. 존재 방식의 차원이 다르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아” 

“ 헐..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것 같아요. 사장님은.”


깨어난 몬스터를 따돌리느라고 상혁은 고분 같은 나무 밑 둥을 나올 때 펼쳐 사용했던 우산을 던져주고 도망쳐 나와야 했다. 나뭇가지에 걸려서 커다랗게 부풀어있던 주머지들에서 쏟아지는 슬픔, 분노와 두려움이 비가 오듯 내려서 마침 자신이 우산을 가져온 게 천운이다 싶었던 상혁이었다. 


5층에서 주인장과 우산을 같이 쓰고 간신히 6층을 올라왔을 때 아니나 다를까 그 검은 몬스터가 먹이를 기다리듯 그 둘을 노려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몸집이 커진 데다가 눈빛도 날카로워져 상혁과 이유를 노려보고 있었다. 곧 잡아먹어버리겠다는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와 함께. 


모든 것이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던지를 토하듯 울고 나서 벌어진 변화였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괴물에게 접었던 우산을 확 펼치자 깜짝 놀란 몬스터가 주춤할 때 간신히 전력 질주해 간신히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7층으로 넘어오는 마지막 계단에서 몬스터의 발을 보고 상혁의 등골이 서늘하긴 했지만 말이다.


주인장 말로는 아마 우산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감정 찌꺼기를 핥아먹으면 괴물도 변할 거라고 했는데 더 슬프게 변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상혁의 마음은 오늘 그 손님을 보고 조금은 안심으로 바뀌었다.


‘ 그런데 그 우산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전 19화 세 번째 손님 4 -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